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니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14:25
1. 다음 <헤롯의 이야기>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세례 요한을 참수한 헤롯에게 어느 날부터 심상치 않은 소문이 들려왔습니다(1). 능력자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2.참고/마14:3-4;막6:14-29;눅3:10,19,9:7-9).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고 광풍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헤롯은 이런 ‘능력’을 행하신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복수 당할까 봐 겁을 먹은 것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5). ‘완악’에 헤롯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능력이 나타났음에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 우리에게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먼저인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인지를 알게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롤 들음으로 믿음을 갖게 하신 것에 감사를 드리자.
2. 다음 <가장 큰 보화, 천국>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복 가운데 천국을 빼놓을 없습니다. 한 농부가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일하던 중 보화를 발견했습니다(마13:44). 농부는 돌아가서 집을 포함 돈이 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고 보물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마13:44). 은행이 없던 고대 사회에서는 귀중한 보물들을 땅속에 감추어 두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찾는 사람이 임자였기에 농부의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보물을 차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를 발견하셨습니까? 참된 보화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찾지 못합니다. 가장 귀한 보화인 ‘천국’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에게는 천국이 보화가 아닌 것입니다. 농부는 밭 농사를 하던 중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누구나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후는 그 어떤 일보다 천국이 가장 귀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신체 일부 아니 생명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친구의 자녀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뜻,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엡5:25). 천국이 어떤 곳이기에 하나님은 독생자를 죽게 하시기까지 하셨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수고를 마치고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히4:10). 예수님이 우리의 눈물을 친히 닦아 주십니다. 더 이상의 슬픔이 없고, 아픔도, 애통도 죽음도 없다는 뜻입니다(계21:4). 이 땅에서 겪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면서 증언한 하나님의 ‘보좌’ 그 ‘우편’에 계신 그토록 보고 싶은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계22:3-4.참고/행7:55;엡1:20). 사랑하는 주님과 우리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계22:1-2). 이 천국을 주시고자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보화인지를 알게 됩니다. 헤롯과 같이 완악하여서, 주님의 능력을 보고 영접하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보다 먼저인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천국이 얼마나 큰 보화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 그렇다면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고, 보화를 차지한 농부와 같이, 천국을 위해서라면, 그 천국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데 주저 하지 말아야 한다.
3. 다음 <오병이어>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눠주시니, 남자만 오천 명,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하면 2만 여 명이 베풀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12-21.참고/.막6:30-44;눅9:10-17;요6:1-14). 주님의 긍휼하심은 영생을 주시고, 치유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생계까지도 세심하게 살피시는 분입니다.
이후, 무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출애굽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매일 주시는 만나와 같이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참고/요6:15,31.참고/출16:4,15;시78:24;105:40;느9:15).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주신 것은, 너희들이 참된 양식을 얻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떡’으로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참고/요6:32-25). 그러나 무리는 그 예수님이 ‘생명의 떡’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알지 못한 것이지요(참고/요6:36). 예수님의 긍휼하심은 영생을 주시고, 치유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생계까지도 세심하게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적인 은혜와 육적인 은혜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구원도, 육적인 생활도, 주님이 주시는 것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오병이어 기적 후, 주님의 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6:60).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며 주님을 따랐습니다(요6:67-68).
헤롯과 같이 완악하여서, 주님의 능력을 보고도, 영접하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에게도 주님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헤롯도 무리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보다 먼저인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천국이 얼마나 큰 보화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고 보화를 차지한 농부와 같이 천국을 위해서라면, 그 천국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데 주저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 영적인 구원도, 육적인 생활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믿음으로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4. 다음 <물 위로 걸으시다>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에 참된 의미를 모르거, 여전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만을 찾는 무리를 헤쳐 보내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서, 가버나움을 떠나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도록 하셨습니다(22. 참고/막6:45;요6:1).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과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고, 깊은 기도 후,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었습니다(23). 제자들이 탄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항해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24). 그런데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고 하였습니다(24). ‘밤 사경’(새벽 4시)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25).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유령으로 보며 무서워 소리질렀습니다(26).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분이십니다(마8:23-27;막4:35-41;눅8:22-25). 그렇다면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은 주님에게는 큰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즉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7).
그 순간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며 간구했고, 예수님은 “Come on!" ‘오라’ 말씀하셨습니다(28-29).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게 되었습니다(29). 바다에 발을 내디뎠다는 자체가 믿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큰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을 갖게 되자, 몸이 바다로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30).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31-33.참고/막6:45-52;요6:15-21). 자신도 바다 위를 걷게다고 한 베드로의 용기는 결코 객기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으로 걷던 베드로에게 큰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그 순간 자신을 걷게 한 주님을 의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바다를 걷게하신 예수님이 바람을 몰아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미 예전에 주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광풍이 잔잔케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주님이 큰 바람을 물리치실 것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이 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합니다. - 우리가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바람’ 이 상징하는 두려움이 항상 엄습해 온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주변이 온통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로 보인다. 악한 영의 계략이다.
5. 다음 글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아람 왕이 신하들과 의논하면서, 이스라엘의 이러이러한 곳을 공격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사람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어 아람 군대가 이러이러한 곳에 진을 치니, 그곳을 지나가는 것을 삼가라고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전갈을 받은 이스라엘 왕은 부하들을 그곳에 보내어 엄하게 경고하도로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자, 아람 왕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신하들을 불러, 우리가 가운데 이스라엘과 왕과 내통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며, 추궁하였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왕이시여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왕께서 침실에서 은밀히 하시는 말씀까지도 다 알아서, 일일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줍니다고 고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사의 시종이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아람의 강한 군대가 말과 병거로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엘리사에게 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걱정하였다. 그런데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왕하6:16). 그러나 시종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우리를 지켜주는 군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기도하여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였습니다(왕하6:17).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천사들을 명하여 불말과 불병거를 이끌고 엘리사를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미신에 빠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변이 모두 대적자로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담대함을 얻고 대적자를 압도하는 천군 천사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헤롯과 같이 완악하여서, 주님의 능력을 보고도, 영접하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에게도 주님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헤롯도 무리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보다 먼저인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천국이 얼마나 큰 보화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고, 보화를 차지한 농부와 같이 천국을 위해서라면, 그 천국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데 주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합니까? 영적인 구원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요 육적인 생활도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으로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떠나지 않는 자는 ‘바람’이 상징하는 두려움이 오더라도, 그 두려움을 압도하는 천군 천사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영을 보면서, 사탄의 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으로 바라보고 두려움을 이기기를 축복한다. 성탄의 은총.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길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헤롯은 예수님을 통해 능력이 나타났음에도, 구원자로 영접하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먼저인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의 복으로 믿음을 갖게 하신 것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주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되게 하옵소서.
② 항상 주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셔서,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에
게 주신 천국이 얼마나 큰 보화인지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차지한 농부와 같이, 천국을 위해서라면, 그 천국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데 주저 하지 말게 하옵소서.
③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데 주저 않는 것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은 영생을 주시고, 치유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와 같이 생계까지도 세심하게 살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 이후, 육적인 공급만을 보고 떠난 무리와 같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인 구원도, 육적인 생활도, 주님이 주시는 것을 믿고, 주님께 아뢰고, 주님을 떠나지 않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④ 주님을 떠나지 않는 자로 믿음의 길에 광풍 같은 두려움이 오더라도, 그 두려움의 새력을 압도하는 천군 천사를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을 보고, 두려움을 주는 사탄의 영을 이기게 하옵소서.
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세상으로 내려오신 분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려고,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길을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지켜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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