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26 이재현목사 "일어나 함께 가자"(마26:46)

이재현목사 2025. 3. 23. 15:47

일어나 함께 가자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6:46 25.03.26. 주일예배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다(막14:1-2;눅22:1-2;요11:45-53)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막14:3-9;요 12:1-8) 6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유다가 배반하다(막14:10-11;눅22:3-6) 14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지막 만찬(막14:12-26;눅22:7-23;요 13:21-30;고전11:23-25) 17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다(막14:27-31;눅22:31-34;요13:36-38) 31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14:32-42;22:39-46)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잡히시다(막14:43-50;눅22:47-53;요18:3-12) 47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공회 앞에 서시다(막14:53-65;눅22:54-55,63-71;요18:13-14,19-24) 57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하다(막14:66-72;눅22:56-62;요18:15-18,25-27)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1-75)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다

 

예수님은 지금의 교회력으로 고난 주간 화요일 성전에서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 율법사,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그 분량이 마태복음 21장에서 23장까지 무려 3장에 달합니다. 그러나 “3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유월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고 하였습니다(3-5.참고/14:1-2;22:1-2;11:45-53). 주님께 종교지도자들은 주옥같은 하늘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예수를 죽이는데 의견을 도출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강조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15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3:14-15.참고/6:10;28:27;11:7,25). 우리는 보고 듣고 깨닫고 돌이켜 고침받은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9:18.참고/9:15),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1:28). 우리는 완악한 자로 상실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불쌍히 여김 받은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9:21.참고/45:9,64:8). 그러므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9:13-14). 우리는 미움 받는 자가 아니라, 사랑 받는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에게 좋은 일을 하는 성도

 

예수께서 말씀을 다 마치시고지금의 교회력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을 지나 목요일,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고 하셨습니다(1-2.참고/14:1-2;22:1-2;11:45-53). 그리고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지난 화요일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과 치열한 변론과 이틀 후 잡히시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셨습니다(6). 여기에 등장하는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이 누군가에 대해 많은 주장이 있습니다. 베다니라는 지명을 볼 때, 베다니에 살던 자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부르며, 공생애 기간 종종 들려 고된 사역에 쉼을 가지시고, 지극한 정성으로 준비해준 별미를 드시고 귀한 말씀을 전하신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부친이라고 합니다(참고/10:30;11:3,5). 그는 문둥병으로 일찍 죽었고, 자녀인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혹은 마르다의 남편이라고도 하고, 나사로의 친구라고도 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6-7). 이 여인이 대해서는 나사로의 여동생으로 자신의 집을 주님이 찾았었을 때마다,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라는 것이 중론입니다(10:39). 요한복음에는 비슷한 시기 같은 일을 행한 여인을 마리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2:1-3). 그런데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크게 나무라였습니다(8-9). 특히 제자 중 하나로서화를 참지 못하고 발끈하여, 일어선 자가 있었는데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마리아에게 호통을 쳤습니다(11:4-5.참고/14:8).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부은 향유는 처녀가 결혼 첫날밤 신랑을 맞이할 때, 몸에 붓는 것으로 신혼 용품과 같은 것이었는데, 장정 3000명 하루 품삯인 삼백데나리온’, 성인 남성 1년 연봉과 같은 값으로 매우 귀한 것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마치 그 가격이면, 빈촌에 사는 삼백 명을 도울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상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였습니다(11:6). 만약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지 않고, 회계인 자신에게 맡겼다면, 향유를 팔아 10/1이던, 3/1이던 착복을 할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실리 없는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10-12).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뒤로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쏟아부은 옥합의 가치를 모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팔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선택과 결행決行입니다. 그녀는 항상 있는 것과 한 번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난한 자는 언제든지 돌볼 수 있지만,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길을 가시는 주님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도둑으로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던 자로, 재리에 밝았습니다(11:6). 삼백 데나리온 값의 향유가 땅에 쏟아져버리자, 그동안도 못마땅했던 주님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더욱이 이틀이 지나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고 하신 말을 듣고 더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2). “14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14-16.참고/14:10-11;22:3-6). 가룟 유다의 결론은 스승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난 3년간 따라다니던 보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고 하셨습니다(2). 자신이 죽기 전 팔릴 것이라고 가룟 유다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하였고, 주께서 대답하여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구약에 십자가의 죽음이 예언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1-24). 병행 분문에는 예수님이 직접 떡 한 조각을 적셔다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유다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하였습니다(13:26-27). 예수님은 유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고 까지 하셨습니다(25.참고/13:27). 이때 그 외 제자들은 “28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고 하였습니다(13:28-29). 예수님은 다른 이들에게는 알지 못하도록 유다만 알아듣도록 재차 기회를 주셨음에도, 돌이키지 않고,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하셨습니다(13:30). ‘이라는 말씀을 통해 유다가 행한 일이 밤과 같은, 악하고 어두운 일임을 알게 합니다.

 

유다가 밤에 행한 일은 지금 교회력으로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과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47). ‘예수를 파는 자 (가룟 유다는)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예수니) 그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48). 그리고는 태연하게 예수께 나아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이전에 행하던 데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49). 그러한 가룟 유다에게 주님은 의연하게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50).

 

가롯 유다는 이후에 스승인 예수께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심문받은 후, ‘결박당하여, 끌려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하자, 절망한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27:1-5.참고/1:18-19). 가룟 유다가 스승을 팔았던 은 삼십소가 소를 받아서 죽였을 때 소 한 마리를 배상해 주는 액수에 불과합니다(21:32.참고/11:12,13). 소 한 마리 값에 인류의 구원자를 팔았습니다. 그 이유는 3년 동안 주를 따라다닌 것을 억울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의미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낙담한 것입니다. 그런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은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4). 우리가 교회를 섬김이 가정을 섬김이 영혼을 섬김이 억울하고 의미없고 낙담할 때, 기억해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만찬에서, 가룟 유다에게 깨달으라고, 떡 한 조각을 주셨을 때, 가롯 유다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하였습니다(13:26-27). 우리가 교회를 섬김이 가정을 섬김이, 영혼을 섬김이, 억울하고, 의미 없고, 낙담할 때가. 바로 사탄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억울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두려워하지 말(벧전3:14.참고/14:23;벧전2:20). 우리에게 의미 없는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11). 우리에게 낙담하게 하지 않게 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참고/10:22;18:1-8). 예수님은 마리아를 향하여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10).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하셨습니다(50.참고/13:27). 마리아는 주님에게 좋은 일이었고, 가룟 유다는 자기에게 좋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네가 좋은 일만을 생각하라는 사탄의 주는 생각을 물리치고, 주님을 좋게하라는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성령을 통해 우리의 성격이 다듬어져서 주님이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지 않고 육신 그대로 우리의 성격이 내게 좋은 일만을 쫓다가는 어떻게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룟 유다를 통해 교훈 삼아야 합니다. 주님이 좋은 일을 하는 성도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명한 일을 하는 성도

 

지금의 교회력으로 목요일은 이스라엘이 과거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끝내고 출애굽을 준비하던 날로, 양들을 도살하고,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효소가 없는 딱딱한 떡인 무교병을 준비하던 날입니다(12:3-7,15-20). ‘무교절의 첫날無酵節,Feast of Unleavened Bread은 바로 이날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유월절逾越節,Passover 축제 전날인 목요일입니다(17.참고/23:6-8). 이날 일몰 후부터, 유월절의 축제가 시작되고, 유월절의 식사가 시작됩니다(참고/14:17).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낼 장소를 제자들에게 명하시면서, ‘성안에 아무에게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하면 내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7-18). 성경학자들은 이 처소를 제공한 사람을, 칠십인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자, 복음서를 기록하였고,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친 청년인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Mary의 집으로 봅니다(14:51-52). 바나바의 친척 또는 남매지간으로도 알려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주님을 따랐던 신실한 여인이었습니다(참고/4:10). 훗날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던 마가의 다락방도 동일한 장소일 것으로 추측합니다(1:12-15,2:1-4,12:12).

 

마가의 어머나 마리아의 집에서,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 날이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 이제 성만찬이 시작되었습니다(19-20).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26-28). 병행 본문에 떡과 잔을 나누신 후,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22:19;고전11:24,25). 그래서 오늘까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9). 유월절 식사에서는 네 번의 포도주를 마시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네 번째 잔까지, 마심으로 모든 순서를 마치신 것입니다. 이제 구약의 유월절 예식이 마감되고, 신약의 구속사 예식이 새롭게 제정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신 고난의 잔으로 그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에 따라, 포도주를 마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내 아버지 나라라고 하신 새 것새 하늘과 새 땅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마시는 날인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성만찬을 마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찬미(찬송)하고 감람 산 (겟세마네동산)으로 나아갔습니다(30.참고/14:12-26;22:7-23;13:21-30;고전11:23-25). ‘예수께서는 조금 전 성찬과 찬양으로 한껏 고조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31-32.참고/13:7). 그러자 수 제자 베드로가 대답하여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하였지만,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이에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고 하였습니다(33-35.참고/14:27-31;22:31-34;13:36-38). 베드로는 객기 만은 아니었는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무장한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로 오자,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떨어 뜨렸습니다(51.참고/22:5018:10).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잡히시는 것 또한 예언을 이루심이라고 하셨습니다(52-54). 그리고 자신은 잡으러 온 무리에게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다시 한번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하시며, 반항 없이 스스로 잡히시자,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55-56.참고/14:43-50;22:47-53;18:3-12).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57). 종교 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의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참고/8:31-9:1;9:22-27).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17:22-23.참고/9:30-32;9:43-45).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20:17-19.참고/10:32-34;18:31-34). 이렇게 세 번 말씀하신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본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았다고 하였습니다(58). 아마도 베드로는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래도 염려가 되었는지, 먼발치에서라도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 집) 바깥 뜰에 앉았을 때입니다(69). ‘한 여종이 나아와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목격자가 등장했습니다(69). 순간 당황한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70). 베드로는 황급히 자리를 피하고자,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였습니다. 목격자 수가 늘어난 것입니다(71). 얼굴이 시뻘게진 베드로가이번에는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두 팔을 가로 지르며 강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72). 그러나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이제는 베드로의 목소리까지 들었다는 다수의 목격자가 가세하자, 사색이 된 베드로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큰 음성으로 저주하며 맹세하여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73-74). 그때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75.참고/14:66-72;22:56-62;18:15-18,25-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오래전부터 예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죽으시기 위해 잡히셔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를 막고자 칼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잡히시는 것도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같이, 주님의 예언에 반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는 것조차도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함에 주님은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인도에, 교훈에 따르지 않는다고, 택자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닭이 세 번 울자 심히 통곡하는 것과 같이 애통함은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돌아오는 것이지요.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다가도 예수의 사랑만 생각하면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오리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나는 참 기쁘다그러나 은혜를 저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인도에, 교훈에 따르는 자가 되면,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는 것조차 예언, 하나님의 명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예언에 반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명한 일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귀한 일을 하는 성도

 

예수께서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36-38).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39). 첫 번째 기도 후, 같이 기도할 것을 당부한 ‘40제자들을 찾아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재차 당부하셨습니다(40-41). 그리고 다시 (나아가사)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두 번째 기도를 올렸습니다(42). 이번에도 깨어 있으라’ ‘깨어 기도하라두 번이나 당부한 제자들을 찾아서,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여전히)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43). 이제 주님은 그들을 (깨우지 않고 그냥)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애절하게 간구하셨습니다(44). 예수님은 세 번째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사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고 하셨습니다(45.참고/14:32-42;22:39-46).

 

그리고 예수님은 잡히셨고, ‘대제사장들과 (종교심문을 담당하는)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려 했고,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였습니다(57,59-60). 그러던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예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고 증언하셨습니다(60-61). 성경을 통해 유추하건대 이 두 명의 증인은 공회에 매수된 자였거나 아니면, 윗사람의 비유를 맞출 목적으로 증인의 자리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 병행 본문에 “56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14:56-59). 심문의 주심인 ‘62대제사장 (가야바)가 일어서서 예수께 (그 사실을)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고 물엇지만 ‘63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거듭 답변을 촉구했습니다(62-63).

 

예수께서는 이전에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2:19).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비웃었습니다(2:20).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하였습니다(2:21). 예수님이 성전을 헐라 삼 일 만에 세우겠다는 것은,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진리를 모르는 대제사장에게 매수당한 자들이 그것을 성전을 무너뜨리려,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심문에서 침묵하시던 예수께서 내가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시자,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64).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를 인용하신 것으로, 예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것이고, 내가 다시 올 그날에 지금 나를 심문하는 너희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10:1).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64) 또한 구약의 말씀에 근거한 표현으로서 위엄과 영광으로 임하실 예수의 최고의 자기 계시입니다(참고/7:13,14).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과 사실상 동일시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예전에 예수님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 사함의 권세를 주장하신 것만큼이나, 불경스러운 것이고, 확실한 고소거리가 되었습니다(참고/9:2,26:28;2:5;5:20;5:31). ‘이에 (가야바)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고 목소리 높였습니다(65-65). 공회 모인 자들이 대답하여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하였고, 이어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예수님에게 폭력과 치욕과 조롱과 멸시와 능욕했습니다(참고/14:53-65;22:54-55,63-71;18:13-14,19-24).

 

공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폭력과 치욕과 조롱과 멸시와 능욕을 당하는데 함께 한 제자들이 있었나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56). 그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습니다(38,40-41). 그러나 주님의 당부에도 제자들은 깊이 잠들었고, 잡히실 때 모두 도망하였으며, 공회 심문에도 홀로 버려두었습니다(40,43,45).

 

그런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의아한 것은, 당부를 듣지 않은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다는 것입니다(46). 주님은 당부를 듣지 않은 제자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함께 가야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비록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하여지금은 깨어있지 못하더라도, 후에는 깨어나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당부를 해도,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하, 핑계하는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도요, 택자요,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그랬으나, 오늘부터는 우리의 마음이 원이 육신까지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4:11). 예수 믿은 우리의 육체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참고/3:21).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마음도 주님을 쫓고, 우리 육체도 주님을 쫓기를 소망합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피곤하셨다면, 주님은 지치고 피곤하지 않으셨습니까? 병행 분문에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22:44). 2천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인성을 가지신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하나님)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5:7). 얼마나 애절한 기도, 가슴에 사무치는 기도, 창자가 뒤틀리듯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극심한 통증의 기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이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올려드릴 수 있는 기도가, 우리의 육체가 되기를, 주님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가는 자, 주님이 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정리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다

 

예수님은 지금의 교회력으로 고난 주간 화요일 성전에서,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 율법사,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셨습니다(마21-23장). 예수님께 종교지도자들은 주옥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서로 의논하여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였습니다(3-4.참고/막14:1-2;눅22:1-2;요11:45-53). 주님 말씀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4-16.참고/사6:10;행28:27;롬11:7,25). 보고 듣고 깨닫고 돌이켜 고침받은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완악한 자로 상실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불쌍히 여김 받은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롬1:28,9:15,18) 미움 받는 자가 아니라, 사랑 받는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롬9:13-14,21.참고/사45:9,64:8).

 

주님이 좋은 일을 하는 성도

 

지금의 교회력으로 수요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고 하셨습니다(1-2.참고/막14:1-2;눅22:1-2;요11:45-53). 그리고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지난 화요일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과 치열한 변론과 이틀 후 잡히시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셨습니다(6). 그곳에 ‘한 여자 (마리아)가 (찾아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6-7.참고/눅10:39;요12:1-3). 그런데 ‘제자들이 분개하여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며,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며, 나무라였습니다(8-9). 특히 가룟 유다는 그 값이 삼백 데나리온인 것을 언급하면서, 가난한 자 삼백 명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참고/요11:4-5;막14:8).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였습니다(요11:6).

 

이것을 모르실리 없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10-12).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뒤로하신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선택과 결행決行입니다. 마리아는 주님 말씀처럼 가난한 자는 언제든지 돌볼 수 있지만,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재리에 밝은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가 땅에 쏟아져버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더욱이 ‘이틀이 지나면 십자가’ 죽으신다는 말을 듣고, 더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2). 가룟 유다의 결론은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스승을 파는 것이었습니다(14-16.참고/막14:10-11;눅22:3-6). 그렇게 해서라도 지난 3년간 따라다니던 보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기 전 팔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하였고, 주께서 ‘대답하여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구약에 십자가의 죽음이 예언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1-24). 예수님은 유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그러나 ‘유다가 대답하여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고 까지 하셨습니다(25.참고/요13:27). 이때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에게는 알지 못하도록 유다만 알아듣도록 재차 기회를 주셨음에도, 돌이키지 않고,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하셨습니다(요13:28-30).

 

지금 교회력으로 목요일 저녁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에게 기룟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47). ‘예수를 파는 자 (가룟 유다는)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예수니) 그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48). 그리고는 태연하게 ‘예수께 나아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이전에 행하던 데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49). 그러한 가룟 유다에게 주님은 의연하게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50). 이후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심문받은 후, ‘결박’당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하자, 절망한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마27:1-5.참고/행1:18-19).

 

가룟 유다는 소 한 마리 값에 불과한 은 삼십에 인류의 구원자를 팔았습니다(출21:32.참고/슥11:12,13). 그 이유는 3년 동안 주를 따라다닌 것을 억울하고, 의미없고, 낙담히 여긴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만찬에서, 깨달으라고, 떡 한 조각을 주셨을 때, 가롯 유다가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하였습니다(요13:26-27). 우리가 교회를 섬김이 가정을 섬김이, 영혼을 섬김이, 억울하고, 의미 없고, 낙담할 때가. 바로 사탄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억울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두려워하지 말’라(벧전3:14.참고/겔14:23;벧전2:20). 의미 없는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11). 우리에게 낙담하게 하지 않게 하십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참고/잠10:22;눅18:1-8).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였지만, 가룟 유다에게는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10.참고/요13:27). 마리아는 주님에게 좋은 일이었고, 가룟 유다는 자기에게 좋은 일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성령을 통해 우리의 성격이 다듬어져서 주님이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지 않고 육신 그대로 우리의 성격이 내게 좋은 일만을 쫓다가는 어떻게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룟 유다를 통해 교훈 삼아야 합니다. 주님이 좋은 일을 하는 성도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명한 일을 하는 성도

 

지금의 교회력으로 목요일은 ‘무교절의 첫날’로 유월절 축제 전야로 이때부터 우월절 식사가 시작됩니다(17.참고/레23:6-8;막14:17). 예수님은 ‘유월절’을 보낼 장소를 제자들에게 명하시면서, ‘성안에 아무에게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면 내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7-18).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성만찬이 시작되었습니다(19-20.참고/막14:51-52)행1:12-15,2:1-4,12:12;/골4:10).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그리고 이후에도,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눅22:19;고전11:24,25). 그래서 오늘까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율법에 따라 모든 순서를 마치셨고, 이제는 구약의 예식이 마감되고, 신약의 예식이 새롭게 제정되어, 더는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내 아버지 나라’라고 하신 ‘새 것’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마시는 날’인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29).

 

성만찬을 마친 제자들이 ‘찬미(찬송)하고 감람 산 (겟세마네동산)으로 나아’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30-32.참고/슥13:7;막14:12-26;눅22:7-23;요 13:21-30;고전11:23-25). 그러자 수 제자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하였지만, ‘예수께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에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고 하였습니다(33-35.참고/막14:27-31;눅22:31-34;요13:36-38). 베드로는 객기 만은 아니었는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무장한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로 오자,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렸습니다(51.참고/눅22:50요18:10).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로 흥한 자는 탈로 망한다고 하시며, 이 또한 성경을 이루는 것이라 하시고, 아무런 반항 없이 스스로 잡히시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52-56.참고/막14:43-50;눅22:47-53;요18:3-12).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57). 종교 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의 세 차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것입니다(마16:21,17:22-23,20:17-19.참고/막8:31-9:1,30-32,10:32-34;눅9:22-27,43하-45,18:31-34). 예수님이 잡히시는 장면을 베드로는 멀찍이서 지켜보았습니다(58). 그런데 한 여종, 다른 여종, 다수의 증인들이 대제사장 집에 뜰에 앉아있는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와 한 패라고 하자, 베드로는 부인하고, 맹세하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했습니다(69-74). 그때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26:1-75.참고/막14:66-72;눅22:56-62;요18:15-18,25-27)

 

예수님은 내가 잡히시는 것도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를 막고자 칼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은 두 번이나 네가 오늘 밤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베드로는 두 번 모두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함에 주님은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인도에, 교훈에 따르지 않는다고, 택자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닭이 세 번 울자 심히 통곡하는 것과 같이 애통함은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돌아오는 것이지요.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다가도 예수의 사랑만 생각하면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오리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나는 참 기쁘다” 그러나 은혜를 저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인도에, 교훈에 따르는 자가 되면,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는 것조차 예언, 하나님의 명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예언에 반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명한 일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귀한 일을 하는 성도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36-38). 그리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39). 그러나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재차 당부했습니다(40-41). 그리고 ‘다시’ ‘두 번째 기도’를 올렸습니다(42). 이번에도 제자들에게 ‘다시 오사 보신즉 (여전히) 자니 이는 눈이 피곤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43). 이제 주님은 ‘그들을 (깨우지 않고 그냥) 두시고 세 번째’도 동일하게 애절하게 간구하셨습니다(44).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사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고 하셨습니다(45.참고/막14:32-42;눅22:39-46).

 

그리고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공회로 끌고가 종교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을 비롯한 조교지도자들이 모여 예수를 죽일 거짓 증거를 찾고자했지만, 찾지 못하자, 두 사람을 매수하여 증언토록하였는데, 예수님이 예전에 성전을 헐고 삼 일만에 세우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57,60-61.참고/막14:56-59). 이것은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한 것인데 영적 진리를 모른 그들이 테러를 일으키려했다고 고발한 것입니다(62-63.참고/요2:18-20). 대제사장이 답변을 재촉하자, 침묵하시던 ‘예수께서 내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시자,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62-64). 이 말씀은 구약을 인용하신 것으로, 예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것이고, 내가 다시 올 그날에 지금 나를 심문하는 너희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예수의 최고의 자기 계시입니다(참고/시110:1;단7:13,14).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실상 동일시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불경스러운 것이고, 확실한 고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가야바)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고 목소리 높였습니다(65-65.참고/마9:2,26:28;막2:5;눅5:20;행5:31). 공회 모인 자들이 ‘대답하여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하였고, 이어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고,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며, 예수님에게 폭력과 치욕과 조롱과 멸시와 능욕을 가한 것입니다(참고/막14:53-65;눅22:54-55,63-71;요18:13-14,19-24).

 

그러나 이 자리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56).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기 이전에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38,40-41). 그러나 주님의 당부에도 제자들은 깊이 잠들었고, 잡히실 때 모두 도망하였으며, 공회 심문에 홀로 버려두었습니다(40,43,45). 그런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의아한 것은, 당부를 듣지 않은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다는 것입니다(46). 그 이유는 함께 가야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비록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하여’ 지금은 깨어있지 못하더라도, 후에는 깨어나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41).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깨어 있으라 재차 삼차 당부를 해도,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하’며, 핑계하는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그랬으나, 오늘부터는 우리의 마음이 원이 육신까지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 예수 믿은 우리의 육체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참고/빌3:21).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마음도, 육체도 주님을 쫓기를 소망합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잠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셨다면, 주님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하나님)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드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창자가 뒤틀리듯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극심한 통증의 기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는 우리의 육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가는 자, 주님이 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결론

 

주님이 좋은 일을 하고, 주님이 명한 일을 하고, 주님이 귀한 일을 하는 성도에 복을 주십니다. 어떤 복을 주십니까?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13.참고/14:3-9;12:1-8). 이 복입니다. 예수 이름과 함께 증거되는 이름입니다. 그에게 이 땅에서는 주님의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로 예수 이름이 나타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구름을 타고영광으로 오시는 자리에서는 그분의 영광을 입고 예수 이름이 나타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복을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① 우리가 교회와 가정과 영혼을 섬김이, 억울하고, 의미 없고, 낙담할 때, 사탄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물리칠 수 있게 하옵소서. 내게만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성령님 생각으로 주님 좋을 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옵소서.

② 예수님은 잡히시는 것조차도 예언, 하나님의 명을 이루시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아 같이 주님의 예언에 반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다가도 예수의 사랑만 생각하면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오리. 그러나 그와 같이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인도에, 교훈에 따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명한 일을 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③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실 것을 아시고도,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깨어있지 못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 약하나, 나중에는 께어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간구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는 우리 육체도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하는 자, 주님의 귀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④ 주님이 좋은 일을 하고, 주님이 명한 일을 하고, 주님이 귀한 일을 하는 성도에게 마리아와 같이 예수 이름과 함께 증거되는 이름이 되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는 주님의 위로와 은혜와 응답과 인도와 역사로 예수 이름이 나타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하늘 구름을 타고영광으로 오실 때는 그분 영광을 입고, 예수 이름이 나타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