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28 이재현목사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이재현목사 2025. 4. 6. 19:55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8:20 25.04.06. 주일예배

 

살아나시다(막16:1-8;눅24:1-12;요20:1-10)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경비병의 보고 11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제자들에게 할 일을 분부하시다(막16:14-18;눅24:36-49;요20:19-23;행 1:6-8)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7:1-66)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44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선고했습니다.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결말을 볼 때, 아니 1987년 제9차 개헌이후 출범한 제6공화국 체제에서, 여덟 분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그중 두 분은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되었고, 세 분은 내란과 뇌물 수수로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당했으며, 한 분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없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공의는 없습니다. 완전한 공의는 다시 오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실 때에만 성취됩니다(참고/11:4-5;19:11-13). 그러면 국가의 헌법을 거부해도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2:13). 하나님은 국가의 질서를 위해 순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각자의 신념과 판단과 지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 할지라도, 신앙, 예배, 믿음이 외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이후에 있을 제21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의 안보, 경제, 외교와 한국교회의 복음, 선교, 진리 사수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시고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우상, 주술, 악령의 어둠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민의 나라가 되기를 힘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난주일 십자가 앞에 섰던 세 사람을 통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뜻하지 않게 로마 병사에 끌려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나중에 회심하였고, 30년이 지난 후, 자신만 아니라, 아내와 자녀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로서, 초대교회를 세우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27:27-32.참고/15:21;16:13). 우리가 교회를 섬기며 억지 동참으로 여겨질 때도,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찬양드리고, 봉사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억지의 은혜입니다.

 

로마 군대 백부장은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임에도,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했습니다(27:56). 상관인 총독의 재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백부장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못 박는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왜 강포를 행하느냐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며, 드리는 용서의 기도를 들었습니다(23:34). 백부장은 지난날 수많은 전쟁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로부터 한 번도 듣지 못한 거룩한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영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1:12).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영접의 은혜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이자 주님의 제자이었지만,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 사회에서 자신의 부를 잃을까 봐 드러내놓고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빌라도에게 주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27:57-60.참고/15:42-47;23:50-56;19:38-42). 십자가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이 쌓아온 부를 잃을까 제자임을 숨겨왔음에도, 품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자기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을 주께 드리면서, 회개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 이후 부자였던 그는 자신의 소유를 주님을 위해 드리는데 아낌없이 내어 드리는 제자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결단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이들과 같이 항상 십자가 앞에 서서, 억지의 은혜, 영접의 은혜, 결단의 은혜로, 날마다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 주님을 증언하다

 

예수님이 죽으신 그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무덤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27:51-52). 팔레스타인의 무덤들은 대개 천연 동굴이나, 바위를 쪼개어 만든 인조동굴에 유해를 안치安置하고, 그 출구에 큰 돌을 굴려놓아 봉함으로써, 의식적 부정을 방지하고, 야수에게 시체가 도난당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에 있는 무덤들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즉 죽은 자들이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27:52).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을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분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모든 죽은 자들이 살아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하였습니다(27:53). 여기서 거룩한 성이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은 당시 예루살렘에 국한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2천 여 년 전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의 땅인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이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성도인 죽은 조상들이 살아나 예수님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날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은 부활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기간에 죽었던 야이로의 딸’ ‘과부의 아들’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9:18-26;5:41-43;7:14,8:40-56;11:43-44). 그들이 부활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생한 것입니다. 부활은 죽을 육체인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입니다(고전15:53). 영생체가 되는 것입니다(참고/3:21). 부활의 첫 열매는 에수님이시고 그 전후로 아직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고전15:23).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열고 살아난 자들은 소생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 예수님을 메시아, 구원자로 자신의 가족들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는 것은 예수님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전파했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부활했음을 증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음부(지옥)에서 메시아임을 선포하시다

 

이런 궁금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삼 일동안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사도신경에 우리 말로는 장사된지 사흘 만에, ‘사흘 만에라고 번역된 라틴어는 떼르치아 디에’tertia die떼르치아’tertia세 번째’, ‘디에’die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날에가 가정 정확한 번역입니다. 삼 일이라고 하면 마치 72시간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만 이틀, 48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영어 번역문에도 ‘the third day’, 사흘째 되는 날로 정확히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72시간이 아니더라도, 금요일 오후에 죽으시고, 주일 새벽 부활하셔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까지, 대략 48 시간 동안 주님은 무엇을 하셨을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예배 가운데 고백하는 사도신경 공인원문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라틴어 데스첸디뜨 아드 인페르나,’descendit ad inferna,에서 데스첸디뜨’descendit내려가다’, ‘아드’ad는 영어 ‘to’에 해당하는 …로’, 그리고 인페르나,’inferna,지옥, 음부를 의미합니다. ‘He descended into hell’음부에 내려가셨으며혹은 지옥에 내려가셨으며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구가 사도신경에 들어간 이유는, 조금 뒤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만, 초대교인들에게 질문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은 돌아가셨는데, 그때 예수님의 영은 무엇을 하셨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영까지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고 하지 않습니까?(23:46)

 

또 교회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구가 사도신경 원문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이 구절은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하늘에 계신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의 육체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영은 음부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시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상과 천하 그리고 음부, 이 모든 세계가 그분의 통치 영역 속에 들어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어 음부에 내려가시지 않았다면 그곳은 예수님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는 곳일 텐데, 그래서야 예수님께서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유일한 구원자인 하나님이 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음부로 내려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교회가 13백 년 동안 이 구절을 고백해 온 근거는 무엇입니까?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5-11) 여기에서 하늘에 있는 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하나님나라에 이른 사람들, ‘땅에 있는 자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은 지옥에 간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들 모두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의 통치가 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음부에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육체는 돌아가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은 살아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벧전3:19) 이 구절은 유념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천주교가 연옥purgatory을 주장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죽어서 지옥에 가있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복음 선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주장하며, 만든 교리가 연옥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9:27). 본문의 선포하다는 헬라어로 복음을 선포하다유앙겔리조’‘εαγγελίζω가 아니라, ‘에케륔센’ἐκήρυξεν로 일방적으로 선언한다는 뜻의 케륏소κηρύσσω입니다. 지옥, 어두운 구덩이에 갇혀있는 영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고 승리하였노라고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지옥hell, 히브리어로 스올שְׁאוֹל,Sheol, 헬라어로 하데스δης,Hades, 개역성경은 음부’grave로 번역했니다(32:22;10:21-22;2:2;16:18;16:19-31;2:27,31;1:18,6:8,20:1314)에서, 하신 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39-4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 있다가 나온 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부활의 표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 중,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합니다(벧전4:6). 여기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신약성경에서 전형적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사용하는 유앙겔리조’‘εαγγελίζω가는 맞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헬라어 유앙게리세스εηγγελίσθη는 시제가 과거에 일어난 행동을 묘사하는 부정과거수동태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개신교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가 주장하는 죽은 자들도 예수님에게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는 주장은 성경적 해석이 아닙니다. 성경을 볼 때 앞뒤 문맥을 보지 않고, 성경의 어느 한 구절 취해서, 자신의 입맛대로 말씀을 고립시키면, 그것이 사람을 잡는 이단 교리가 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임박한 재림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고 믿었는데, 문제는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회 때 데살로니가서를 배운 것과 같이 그레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4:13).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이미 죽은 사람들 중에서 복음을 듣고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죽은 자들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그리스도인들인데, 이들은 육체로는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서 복음을 믿었던 사람도 믿지 않고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다가 죽은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데, 표준새번역에서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면 우리가 신앙을 그리스도인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있습니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거기에 있는 영들에게도 심판을 선포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증언을 근거로 750년에 사도신경 공인원문이 확정된 이래 교회는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시고’descended into hell라고 신앙을 고백해 왔습니다. 이 고백을 통해 이미 언급했듯이 천상과 천하뿐만 아니라 땅 아래 지옥에까지 예수님의 권세가 미치고, 예수님께서 그 모든 곳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너희들이 멸망 받은 것은 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셨다는 점입니다. 오늘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도다고 하신 후(19:30), ‘영혼이 떠나시니라고 하셨습니다(27:50). 운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종교지도자들은 그 후에도, 크게 염려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부활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음을 확인했지만, ‘그 이튿날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기억하노니’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였고,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고 하였습니다(27:62-66). 그런데 안식 후 첫 날주일 새벽 무덤 주변에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그 천사의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무덤을 지키던 자들 (경비병들)이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4).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11-15). 주님은 부활하셨고, 부활한 주님의 증인 가운데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이 때 여인들이 등장을 하는데요(11).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섬기었습니다(8:1-3).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던 여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23:27). “55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고 하였습니다(27:55-56).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많은 여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홀로 보내드릴 수 없었기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함께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고하였습니다(19:25).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여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안장했을 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27:60-61).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와 살로메가 예수께 바르기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16:1;23:55-56).

 

그리고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 (주일)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1). 그런데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2). 그 천사의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3-4).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말을 듣고,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하였습니다(5-8). 병행 본문에는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요한)에게 달려가서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전하자, ‘베드로와 그 (요한이)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무덤에 이르러’ ‘5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20:2-4).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20:6-7).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사도 요한)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고 하였습니다(20:8). 그러나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 ‘두 제자() (낙담한 체)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20:9-10).

 

그러나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무덤 앞에 섰던 사람이 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주님을 뵙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20:11). 그리고 뒤로 돌이켜한 분을 보게 됩니다(20:14). 누구시겠어요.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20:14). 이에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말하는 순간,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선생님 이라고 말했습니다)’(20:15-16). 지난 3년 여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항상 자신을 불러 주시던 따뜻한 음성 그대로였고, 막달라 마리아는 그제야 주님인 것을 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평안하냐물으시고,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9-10.참고/16:1-8;24:1-12;20:1-10).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한걸음)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소리쳤습니다(20:18).

 

부활의 첫 번째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고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영광을 얻게 된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습니다(8:2).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악귀를 쫓아내심과악귀로 인한 심신의 중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8:2). 마귀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몸도 맘도 영도 강건해졌습니다. 그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을 치유하신 주님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녀에게 이제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던 막달라 마리아만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섬기었다고 했습니다(8:3). 이것은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이고, 열거되지 않은 다른 많은 여인도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를 따랐습니다. 그 증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게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자,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많은 여인, ‘여자의 큰 무리가 따랐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27:55-56).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안식 후 첫날, 주일에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와 살로메였습니다(16:1;23:55-56). 이 여인들 가운데도, 빈 무덤을 보고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무덤 앞에서 울며 주님을 찾았던 것은 막달라 마리아였고, 그녀에게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상고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났다면 끝까지 함께해야 함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알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비견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 많은 여인-주님 저는 큰 죄인입니다.

한 사람은 죄 많은 여인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 가운데 바리새인 시몬이 어떤 마음에 들었는지, ‘예수께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였고, 주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찾아 왔습니다(7:36-37,40).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어떤 죄인 지는 알 수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죄를 다 아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 은둔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서지도 못하고)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보고 마음에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혀를 끌끌 찼습니다(7:38-39). 동네 사람도 다 아는 죄인을 예수님은 모른다고 한심하다고 여긴 것입니다다.

 

이를 모르실 일 없는 예수께서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 하나는 오백 나리온을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7:41-46).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에게 유대인이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풍습인 발을 씻을 물을 내주지도, 머리에 감람유을 붓지도, 입맞춤도 않았지만, 여인은 내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었다며,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식사를 대접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 많은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탕감을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느니라고 하시며,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평안히 가라하셨습니다(7:47-48,50).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에게 너는 종교지도자라는 자만을 갖고 나에게 선심 쓰듯이 음식을 대접했지만, 죄 많은 여인이 자신의 전부를 담은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여인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 치료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주님을 기다린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같이 큰 죄인을 만나 주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얼마나 내가 큰 죄인인가를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주님이 가장 고상한 분입니다.

주님을 만났다면 끝까지 함께 한 또 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 학파 가말리엘 문하생이고, 최대 종파인 철저한 바리새파이며, 랍비 교육을 받은 율법에 정통한 자로서, 유대교를 광신적으로 신봉했으며, 당시 세계 공영어인 헬라어에 능통했고, 전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소유했습니다(참고/16:7,17:22,22:3,6,26:4-5;1:14;3:6).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3:8).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그러한 것들은 버려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3:8). 그리고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하였습니다(딤후4:7-8). 자신의 생명을 주님게 드렸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주님의 결말까지 인내하겠습니다.

주님을 만났다면 끝까지 함께 한 또 다른 한 사람은 야고보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야고보 사도가 아니라, 야고보 장로로 예수님의 젖동생을 가리킵니다(참고/12:17;1:1). 예수님이 삼십 세쯤사역을 시작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야고보는 적어도 예수님과 20년 이상을 살았을 것입니다(3:23). 그럼에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그 가르침을 좇지 않고 오히려 다른 형제들과 함께 예수님의 활동을 제재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참고/3:21,31;7: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그분의 승천을 목격한 후 신실한 주의 제자가 되었습니다(고후15:7). 그 후 예루살렘 교회의 중추적인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참고/12:17,15:12-21;1:19,2:9,12). 야고보는 서신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기록하였습니다(1:1). 예수님과 한집안에서 20년이 넘게 지냈지만, 그 기간을 포함 그가 주님을 만나기까지 30이 넘게 걸렸습니다. 형제이지만 불신했던 자신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가 되기까지 기다려주신 주님을 만난 야고보는 기다림의 사람이 되었으며, 기다림의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5:7-8,11).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증인과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

 

안식 후 첫날 (주일) 저녁 때에 제자들이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잡혀갈까 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있던)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습니다(20:19). 그러나 부활하시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예수께서닫힌 문 안으로 들어 오사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안부를 전하셨습니다(20:19). “이 말씀을 하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하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20:20.참고/27:35;15:25;23:33;19:18,34).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성경에 기록만 11번 나타나셨습니다(1:3.참고/16:9;20:1,14-18;28:1-10;16:1-2;24:34;고전15:3-5; 6:12;24:13-35;24:35-40;20:19-24;1:13;20:26-29;21:1-23;28:16-20;16:14-18;고전15:6;고전15:7;6:3;16:19-20;1:1-12;24:50-53).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기도 하셨습니다(고전15:6). 그럼에도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16-17). 그러나 이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The Great Commission’ 대사명을 맡기십니다.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8-20.참고/16:14-18;24:36-49;20:19-23;1:6-8).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될 때,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만났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고자 할 때,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 가를 아는 것입니다. 둘째, 그런 큰 죄인을 건져주신 구원자가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셋째,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볼 때까지 기다림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큰 죄입니다. 그런 저를 건져주신 주님이 제게 가장 고상한 분입니다.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보기까지 인내하겠습니다.” 이것이 부활 증인의 기도입니다. 그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고, 막달라 마리아 같이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되어서,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리

 

죽은 자가 살아나 주님을 증언하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신 그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하였습니다(27:51-53).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을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이 왜 일어 난 것은, 죽은 성도들이 살아서, 자신의 후손과 가족에게 예수님이 기다리던 메시아이고, 죽음을 이기신 분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야이로의 딸’ ‘과부의 아들’ ‘나사로와 같이 소생한 것이고, 주님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9:18-26;5:41-43;7:14,8:40-56;11:43-44). 부활은 죽을 육체인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입니다(고전15:53). 영생체가 되는 것입니다(참고/3:21).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시고 그 전후로 아직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고전15:2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는 것은, 예수님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전파했음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이 음부에서 선포하시다

 

이런 궁금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삼 일동안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먼저 삼일이란 72 시간을 말하는데 주님은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신 후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48시간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죽으신 후 사흘 때 되던 날 ‘the third day’이 맞습니다. 사도신경 공인원문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He descended into hell’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문구가 있는데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초대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은 돌아가셨는데, 그때 영은 무엇을 하셨을까 하는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주님이 영은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23:46). 또 하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의문에 대한 답도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음부로 내려가신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육체는 돌아가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지만, 그분이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기 위함입니다(벧전3:18-19). 이와 같이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셔서 거기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벧전4:6). 예수님께서 천상과 천하뿐만 아니라 땅 아래 지옥에까지 권세가 미치고, 주관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이 분명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옥에 있는 모든 자들도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보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곳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들이 멸망 받은 것은 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셨다는 점입니다. 오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대한 경종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대제사장들은 목적대로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고도, 주님이 생전에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염려하여, 총독에게 경비병을 더욱 보강하여, 무덤을 굳게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27:62-66).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주일 새벽에 무덤 주변에 큰 지진이나고, 형상이 번개 같고 옷은 눈 같이 흰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자, 경비병들이 무서워 죽은 자들처럼 되었고, 몇이 성에 들어가 이 사실을 대제사장에 고하니, 그들이 돈을 주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유해를 도둑질하여 갔다고 일렀으니, 이 말이 오늘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2-4,11-15). 주님은 부활하셨고, 부활한 주님의 증인 가운데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때 여인들이 등장을 하는데요(11).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여인들로, 자신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다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였습니다(8:1-3,23:27). 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이들로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27:55-56). 주님이 십자가 현장에까지, 그녀들은 서 있었습니다(19:25).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여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안장했을 때에도, 무덤에 있었습니다(27:60-61). 그리고 죽으신 주님을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16:1;23:55-56).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 (주일)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1). 그런데 천사가 큰 돌을 옮기고 빈 무덤인 것을 보게 됩니다(2). 천사는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말을 듣고,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하였습니다(5-8). 그녀들에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때까지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알지 못하고 낙담한 체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20:2-10).

 

그러나 모두가 떠난 뒤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홀로 무덤 앞에 섰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주님을 뵙고 싶었기 때문입니다(20:21). 그녀에게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20:4). 그러나 동산지기로 알고 있던 그녀에게 마리아야부르는 소리르 듣고, 랍오니라고 화답하며, 주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10:15-16). 지난 3년 여 동안 자신을 불렀던 따뜻한 음성 그대로 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평안하냐물으시고,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9-10.참고/16:1-8;24:1-12;20:1-10).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한걸음)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소리쳤습니다(20:18).

 

부활의 첫 번째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고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일곱 귀신에 사로잡여, 피폐한 삶을 살았었습니다(8:2).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악귀를 쫓아내심과중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8:2) 그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부던 막달라 마리아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많은 여인도 있었습니다(8:3.참고/27:55-56).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안식 후 첫날, 주일에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와 살로메였습니다(16:1;23:55-56). 이 여인들 가운데도, 빈 무덤을 보고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무덤 앞에서 울며 주님을 찾았던 것은 막달라 마리아였고, 그녀에게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상고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났다면, 끝까지 함께해야 함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알게 됩니다.

 

주님 저는 큰 죄인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 가운데 바리새인 시몬이 어떤 마음에 들었는지, ‘예수께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였고, 주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찾아 왔습니다(7:36-37,40). 그녀는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서지도 못하고)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보고 마음에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한심하게 였습니다(7:38-39).

 

예수님은 시몬에게 오백 데니리온과 오십 데니리온을 각 각 빚진 자 비유로 말씀하시며,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풍습인 발을 씻을 물을 내주지도,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도, 입맞춤도 않았지만, 여인은 내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었다며,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식사를 대접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 많은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탕감을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느니라고 하시며,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평안히 가라하셨습니다(7:41-47-48,50).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에게 너는 종교지도자라는 자만을 갖고 나에게 선심 쓰듯이 음식을 대접했지만, 죄 많은 여인이 자신의 전부를 담은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얼마나 내가 큰 죄인인가를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고상한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 학파이며, 율법에 정통했고,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참고/16:7,17:22,22:3,6,26:4-5;1:14;3:6).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3:8). 그리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후4:7-8).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결말까지 인내하겠습니다. 고보 장로는 예수님의 젖동생입니(참고/12:17;1:1). 주님과 한 집 안에서 20년 이상을 살았지만, 다른 형제들과 함께 예수님의 활동을 제재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3:23.참고/3:21,31;7: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그분의 승천을 목격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중추적인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참고/12:17,15:12-21;1:19,2:9,12;고후15:7). 야고보는 예수의 종이라고 말할 때가지 30이 넘게 걸렸습니다(1:1). 형제이지만 불신했던 자신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가 되기까지 기다려주신 주님을 만난 야고보는 기다림의 사람이 되었으며, 기다림의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형제들아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5:7-8,11). 우리는 주님을 만난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증인과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

 

안식 후 첫 날 저녁인 주일 밤에 부활의 주님이 자신들도 잡힐까 봐 두려워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의 안부를 전하며,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리신 허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부고 기뻐하였습니다(20:19-20.참고/27:35;15:25;23:33;19:18,34).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성경에 기록만 11번 나타나셨습니다(1:3).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기도 하셨습니다(고전15:6). 그럼에도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16-17). 그러나 이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The Great Commission’ 대사명을 맡기십니다.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8-20.참고/16:14-18;24:36-49;20:19-23;1:6-8).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될 때,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만났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 가를 아는 것입니다. 둘째 그런 큰 죄인을 건져주신 구원자가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셋째 인내로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큰 죄입니다. 그런 저를 건져주신 주님이 제게 가장 고상한 분입니다.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보기까지 인내하겠습니다.” 이것이 부활 증인의 기도입니다. 그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고, 막달라 마리아 같이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되어서,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다같이 기도합니다.

 

①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도 다른 여인들도, 빈 무덤을 보고 모두 떠났지만, 그리운 주님을 보아야 했기에 떠날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부활의 주님은 나타나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난 자로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할 수 있게 하옵소서.

 

② 주님을 만난 자로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 인가를 깨닫고 엎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자아와 욕심과 주장을 버려버리게 하옵소서.

 

③ 주님을 만난 자로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 큰 죄인인 저를 건져주신 주님을 가장 고상하게 받들게 하옵소서.

 

④ 주님을 만난 자로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볼 때까지 인내하게 하옵소서.

 

⑤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과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나는 큰 죄입니다. 그런 저를 건져주신 주님이 제게 가장 고상한 분입니다.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보기까지 인내하겠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 기도를 날마다 올려 드리며, 날마다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성도들이 무덤을 열고 살아나서, 예루살렘에가서 예수님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증언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 등 사자死者를 통해서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분임을 보이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음부에 내려가셔서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메시아 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믿지 않는 자들이 처할 운명을 보면서, 살아있는 지금 복음을 듣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