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유업을 받을 자"(갈 4:4-7) 이재현목사(25.08.03)

이재현목사 2025. 8. 10. 20:21

유업을 받을자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갈라디아서 4:4-7 2025.08.03. 主日禮拜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4-7)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우리는 지난 두주 동안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함에 대해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재물로 대표되는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소망을 정한데로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신입니다. 우상입니다. 그렇기 맘모니즘Mammonism, 재물 신을 섬기면 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한때 제계 2위까지 올라섰던 대기업 총수의 예를 통해 말씀했듯이, 그 모든 것은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맘모니즘 부의 신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면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재물로 모든 것이 평가되고, 재물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재물이 생사까지 좌우한다고 여기기는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너희 세상의 부자들아 교만하지도 말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전하라는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각오를 새기고 새기고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소망을 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복되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분이 기리시는 양입니다. 그럼으로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데 전력을 다하십시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세상에도 유일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만들어진 유일함이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유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기에 주권자가 성립됩니다. 그분은 만드신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3.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든 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임기가 없는 영원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영토의 국경이 없는 무한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권한을 아들 예수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대한민국 오대양육대주에 그 지경을 넓히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4.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 인도된 어떠한 영혼이던, 하나님을 만나고, 경외하며, 헌신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헌신을 다해 한 영혼을 살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 5.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인간은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악한 행위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악한 행위를 그치라 하나님께 나오라는 명령을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항상 나를 보고 계심을 알고, 어둠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세상의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빛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주권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왕이십니다.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이 말씀을 꼭 붙들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6:16)

 

나의 도움은 하나님

 

두 주전에도 일맥 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내 삶의 도움의 출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데 한 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은인도 있습니다. 삶의 전환을 가져다 준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졸지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항상 그늘이 되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며, 나의 도움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내가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1. 졸지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항상 그늘이 되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은 첫 번째로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원수만 아니라 때로는 도움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도 실족하게 됩니다. 내가 필요할 때 도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사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도,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자는 실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나를 배반한 사람까지도 실족하여 실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지, 사랑을 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판 가롯 유다에게 마지막 만찬자리까지, 발을 씻기시고, 떡을 떼 주며, 잔을 건넸습니다.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 본을 보이셨습니다. 배반한자가 변한 것이지, 배반하자로 인해 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야 내 영혼과 육체가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됩니다. 즉 내가 살기 위해서도 실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실족하여 실망하지 않는 은혜를 축복합니다.

 

2. 졸지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항상 그늘이 되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은 두 번째로 상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대립을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특히 믿음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물리적이 아니더라고, 영적인 충돌로 겪는 상함과 해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낮의 해가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이 해치지 않게 하겠다. 우리를 항상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너를 지킬 것이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고, 성경을 인용하며, 시험했습니다. 불신자들이 성도의 곤경을 보고,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 있냐, 믿음이 없는 자들이 믿는 우리를 믿음을 가지고 너머 뜨리려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하나님만 바라라입니다. 그러면 대적자들이 나의 약점을 트집으로 상하게 하고, 나의 허점을 파고들어 해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상함을 당하지 않고, 해함을 받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3. 졸지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항상 그늘이 되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은 세 번째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예수님이 물리쳤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얼마 동안만 떠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세상에서 놓인 그 자체가 우리는 환난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이 땅에서, 사는 삶은 고단이요. 종국에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마저, 모두 자신을 버리고, 홀로 잡히시어, 끌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 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 모든 환난에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환난도 우리를 꺼꾸러뜨릴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축복합니다.

 

졸지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항상 그늘이 되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도,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상하지 않게 하십니다. 모든 환난을 면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율법 아래에 나신 예수님

 

금주도 그 연속성Continuity 안에서 말씀을 이어가려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설교를 귀담아들을 때,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가, 누리게 될 복을 받는 시간이 되실 것입니다.

 

본문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라고 말씀합니다(4:4). 헬라어에서는 때를 나타낼 때, 두 가지를 사용하는데요. 하나는 크로노스Κρόνος,kronos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카이로스καιρός,Kairos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이 특별히 계획하신 일을 이루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본문의 는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때가 차매누구를 보내셨어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 한 후, 구원자를 보내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십니다(3:15). 이 언약 이 때가 차매’, 4천 여 년 후, 지금으로 부터는 2천 여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카이로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구원자를 보내주시기로 한 계획이 실현된 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카이로스에서, 오신 예수님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고 본문에 말씀합니다(4:4).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2:18).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7:12). ‘율법’Law은 하나님의 의의로움, 하나님의 지뜻하심, 하나님의 선선하심을 일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또 다른 표현인 율법은 하나님의 의와 지와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의와 뜻과 선을 알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속량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우리 인간과 똑같이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죄인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인간과 똑같이 죄인이라면,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서 오셨다는 말이고요. 사람이 되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임을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4:5). 율법 아래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죄인 아닙니까? 이렇게 율법 아래 죄인인 모든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죄인인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다른 인간과 같이 율법 아래에서 난 것이 분명하나, 예수님은 여자에게서 나신 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정모혈父精母血. 아비 부父, 자세할 정精, 어미 모母, 피 혈血, 부정모혈로 태어 났습니다. 부모의 정신과 육체를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뜻이고요. 부정모혈의 영적인 뜻은 저와 여러분은 부모로부터 죄를 물려받았습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 후로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모혈로 태어나신 분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몸에 성령을 통해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인간과 같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비상한 방법으로 여자의 몸에서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러므로 그 분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으나, 죄인이 아니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속량하신 것입니다. 속량은 헬라어로 아폴뤼트로시스’ajpoluvtrwsi,ἀπολτρωσις입니다. 그 뜻은 구조, 해방입니다. 영어로 구함을 뜻하는 ‘Redemption’와 같은 단어인데요. 이 아폴뤼트로시스는 값을 주고 사다”, “속전을 주고 놓아 주다는 아폴뤼트로오ajpolutrovw,ἀπολτρωο의 명사형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값을 주시고, 우리를 속량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가 죄인이 아님에도,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첫 번째는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율법 아래에 오심을 순종하신 것입니다.

 

아들되게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시는 것은 첫 번째로, 속량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요.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 저와 여러분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속량 받은 저와 여러분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이제 하나님 앞에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아들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 믿기 이전 죄인이었을 때는 하나님 말만 들어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평온하고, 마음의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있는 것이지요. !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양자’養子라는 것은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무녀독남입니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무녀독남은 단명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 자손이 많은 집에 수양收養,Adoption아버지를 두었습니다. 저도 수양아버지가 있었는데요. 형님들이 다섯 명, 누님들이 두 명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오래되어, 연락이 안 돼 안타까운데요. 수양은 제 자식이 아닌데, 거두어서 제 자식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양자와 같은 뜻입니다. 입양에 의하여 자식의 자격을 얻은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입니다. 독생자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종의 영으로 죄인이 아니라,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1:12). 하나님 자녀가 된 자체가 권세라고 말씀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들도 대부분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 않습니까?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가난이 곧 삶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지금처럼 급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도시락을 싸왔는데요. 그때 가장 인기 많은 반찬이 밥 위에 얹은 계란 프라이Fried Eggs입니다. 그거 가져오면 서로 빼앗아 가려 하니까요. 나중에는 밥 아래 계란 프라이를 깔고 왔습니다. 얼마나 얄밉던 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 도시락을 싸갔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때까지, 제 도시락 밥 위에 계란 프라이가 얹힌 기억이 없습니다. 그 맛난 계란 프라이 보다 귀한 것이 있는데요. 소시지였습니다. 소시지는 반찬의 지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옆에 친구가 소시지를 반찬으로 싸오면, 조르고 졸라, 하나를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시지를 싸 주는 집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요. 한창 뛰어놀고 자라던 때인 터라, 도시락으로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기에, 간식을 갖고 오는 애들이 있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가을에는 주로 밤이나, 고구마였는데요. 제 앞에 앉은 여학생은 호두과자를 간식으로 갖고 오는 것입니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아세요. 얼마나 맛있게 보이던지, 하나 좀 주면 좋겠는데 주지도 않고, 자기 여자들끼리만 먹고, 그렇다고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남자가 어떻게 여자에게 달라고 해요. 지금이야 어디를 가든지 호두과자이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천안에 가야만 살 수 있는데요. 그곳까지 갈 수도 없고, 용돈이라고는 별로 받아 본적이 없는 저로서는 있어도 살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여학생이 갖고 오는 호두과자, 알고 보니 그 아이 아빠가 관광버스 기사세요. 그러니 여행지를 들러 오실 때, 사오는 것을 그 여자 아이가 학교에 가지고 온 것이지요. 아버지가 관광버스 기사인 것이 얼마나 부럽던지, 성도 여러분 호두과자를 먹게 해주는 그 아이의 아버지도 부러울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에요. 참 유치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우리 아버지는 누구세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된 것을 권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지난 주일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왕중의 왕 만왕의 왕이십니다. 임기가 없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온 우주에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무한한 왕이십니다. 한 국가의 전대 군주 왕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권세를 잊고, 부유하게 사는 친구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 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있습니다. 호두과자 사주는 아버지가 부러웠던 초등학생 유치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다른 것이 부럽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우리를 아들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율법 아래에 독생자를 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권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권세를 자부합시다. 아멘!

 

유업을 받게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권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유업을 받을 자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신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7).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하십니다. 즉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업遺業,Inheritance에 대하여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고 말씀합니다(8:17).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상속자라는 것은 유업을 받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이미 유업을 받을 자로 결정되었다는 말이에요.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로 이미 결정된 상속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의 영적 의미는 천국을 상속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고전15:50;3:18,29;4:7;2:5). 구원을 말합니다. 영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의 육적 의미도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고 하였습니다(31:16). 야곱의 두 아내인 라헬과 레아가 야곱에게 하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아버지인 라반이 지난 20년간 힘을 다하여 일한 야곱의 모든 소유를 주지 않으려고 하니, 우리 소유를 갖고, 떠나자는 것입니다. 야곱의 장인 라반이 어떤 이냐 면요. 자기 딸을 준다는 미끼로 야곱을 14년 그리고 620년을 종 부리듯 부린 사람입니다. 야곱을 속여 품삯을 무려 열 번이 변경했습니다(31:17). 라반이 나중에 품삯을 안 줄 수 없으니, 비실비실한 양만 물려주고, 자신의 튼실한 양떼는 멀리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야곱은 큰 기업을 이루고, 아내들과 자식들을 데리고 함께 떠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가 한 말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31:16)입니다. 라반에게 물려받은 비실비실한 양으로 큰 부유를 이룬 야곱의 재물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라반의 재물을 야곱이 가져 간 것은 누가 가져간 것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이 라반에게서 가져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택한 자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인 야곱의 품삯을 무려 열 번이나, 변경하면서 속인, 라반의 재물을 야곱의 것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난 것을 뒤늦게 안, 라반이 추격을 해 오는데요. 야곱은 라반 앞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40내가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이십 년 동안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봉사하였거니와 (당신)은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당신은)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셨나이다(31:40-42). 지금 야곱이 라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지난 20년 년 간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봉사하였지만, 열 번이 품삯을 바꾸며 속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셨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야곱은 누구를 믿은 것이에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권세입니다. 아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유업은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자, 하나님의 자녀를 열 번이 속여 가며, 약탈하려는 자에게서도, 보존하시고, 하나님 자녀의 소유를 이 땅에서도, 반드시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이 이 세상에서도 유업을 받을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에게 하늘의 기업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주시고자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유업, 상속자, 이 복을 꼭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고난

유업을 받을 자인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제가 아는 친족 가운데 교육자 집안이 있습니다. 6형제 중 둘은 초등학교사고, 하나는 중학교 교사인데요. 초등학교 교사인 한 분의 두 딸도, 초등학교 교사이고, 사위 둘도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 집안의 어른이 초등학교 교사이었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그 어른의 부인은 날마다 새벽 제단을 쌓으며, 자녀들이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로 인해 세 자녀 그리고 손주 둘과 손주 사위 둘까지 교사가 된 것이지요. 저는 그 집안의 어른이 초등학교 교사이셨을 때,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교사들은 전근을 다니지 않습니까? 요즘은 전근을 하면 관사에 입주를 하던지, 이사를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먼 데 발령이 나면,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삼십 리를 자전거로 오고 가셨습니다. 그것을 본 것은 제가 어릴 때부터, 새벽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먼 길을 다니시면서, 성실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이고, 교회에서는 신실한 안수집사님으로 섬기셨고요. 부인은 새벽마다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본 자녀들 중 셋이 교사가 되고, 손주 둘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 중 한 아들은 교장, 장학사, 교육감을 거쳐, 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전체를 총괄하는 교육장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3급에 해당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올라설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입니다. 교육장이 된 그 분도 첫 부임지인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부터, 선친처럼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는 신앙을 물려받고, 새벽기도를 잊지 않고, 교회에서는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직업과 믿음을 더욱 확장시킨 것이지요.

 

그러한 밑바탕에 바로 그 집안의 어른의 수고와 성실과 노력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친의 수고와 성실과 노력 그리고 모친의 눈물의 기도를 잊지 않았던 아들은 초등학교 교사로는 이례적으로 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를 대표하는 교역장이 된 것이고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6)

 

상속자이면 영광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지니라. 영광이 있기까지 어떠한 고난의 대가가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상속자의 영광을 받았다면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상속자가 되게하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속량하기 위해, 아들이 되기 위해, 유업을 받게 하기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당한 것과 똑 같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식을 키워보지 않습니까? 자식이 아플 때, 내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자식이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고난을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당한 것과 같은 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광도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즉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고난도 기쁨으로 받아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히브리서 5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받아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지금 나의 마음을 깨우쳐주신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각 자가 하나님 앞에서 다 아실 일입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간청

유업을 받을 자인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두 번째는 간청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9-11). 사람도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자가 없고,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자가 없으며,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신 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아들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기 앞에 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7-8).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린 것이요,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우리가 아들로서 간청할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이 간청하면, 반드시 아버지는 좋은 것으로 주신 것입니다.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간청할 때, 유업이 더욱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절을 함께 봅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4:1-3). 이 말씀에도 우리가 유업을 이을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주인이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업을 받을 상속자라고 해도, 장성할 때까지는 아버지가 정한 후견인 아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초등학문은 율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기간 동안 인간은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매누가 오셨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4).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인간은 율법 아래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정한 때가 차매,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어서, 율법의 종 노릇에서 저와 여러분을 해방 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업을 받을 상속자로서 간청을 할 때, 누구의 이름으로 간청해야 합니까? 맞습니다. 율법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였습니다(16:24).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요. 속 썩이는 자식이라도, 매달려서 해달라고 애원하면, 들어 주어요. 안 들어줘요. 들어 줍니다. 설사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 이름으로 간청하면, 하나님은 들어 주세요. 우리 아버지시니까요. 이게 청구권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연약한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죠.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자녀로서, 예수 이름으로 간청하면, 지금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사명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세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고 하였습니다(1:5).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 받을 자로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아들들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들이라는 복수의 수가 얼마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기쁘신 뜻대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르지만, 주변에 안 믿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이 구원시기로 예정된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구원 받을 자로 예정된 성도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즉 하늘나라에 이끌어 들이실 때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완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영광에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업을 받을 상속자인 저와 여러분들이,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정리

 

율법 아래에 나신 예수님

 

하나님은 일반적인 시간인 크로노스Κρόνος,kronos가 아닌, 특별한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한 시간인 카이로스καιρός,Kairos,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4:4).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 한 후, ‘여자의 후손을 구원자로 보내주시로 하셨습니다(3:15). 이 언약 이 때가 차매’, 4천 여 년 후, 지금으로 부터는 2천 여 년 전,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카이로스에서, 오신 예수님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4:4). ‘율법’Law은 하나님의 의의로움, 하나님의 지뜻하심, 하나님의 선선하심을 일컫습니다(참고/2:18,7:12). 하나님의 말씀의 또 다른 표현인 율법은 하나님의 의와 뜻과 선을 알면, 하나님 앞에 인간은 죄인이라는 결론에도 도달하게 됩니다.

 

 

속량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인간과 똑같이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예수님은 죄인인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임을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려 오셨다는 말씀을 알 수 있습니다(4:5). 율법 아래 죄인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 후로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을 통해 잉태되어 오심으로 인간과 같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속량은 헬라어로 아폴뤼트로시스’ajpoluvtrwsi,ἀπολτρωσις입니다. 그 뜻은 구조, 해방입니다. 영어로 구함을 뜻하는 리뎀션’Redemption과 같은 단어인데요. 이 아폴뤼트로시스는 값을 주고 사다”, “속전을 주고 놓아 주다는 아폴뤼트로오ajpolutrovw,ἀπολτρωο의 명사형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값을 주시고, 우리를 속량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전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첫 번째는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율법 아래에 오심을 순종하신 것입니다.

 

아들되게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시는 것은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이므로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5-6). 예수 믿기 전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참고/2:3;5:8).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 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참고/5:8). 하나님은 우리는 아들되게 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란 이제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8:15).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된 것을 권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2). 지난 주 일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왕중의 왕 만왕의 왕이십니다. 임기가 없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온 우주에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무한한 왕이십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한 국가의 전대 군주 왕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권세를 잊고, 부유하게 사는 친구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 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있습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우리를 아들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율법 아래에 독생자를 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권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권세를 자부합시다. 아멘!

 

유업을 받게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율법 아래에 오게 하시는 것은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그분의 유업을 받게하기 위함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7).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遺業,Inheritance을 받을 자로 이미 결정된 상속자라고 하였습니다(8:17). 이 말씀의 영적 의미는 천국을 상속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고전15:50;3:18,29;4:7;2:5). 구원을 말합니다. 영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적 의미도 있습니다.

 

야곱의 장인 라반은 자기 딸을 준다는 미끼로 야곱을 14년 그리고 620년을 종 부리듯 부리고, 야곱을 속여 품삯을 무려 열 번이 변경했습니다(31:17). 라반이 나중에 품삯을 안 줄 수 없으니, 비실비실한 양만 물려주고, 자신의 양떼는 멀리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야곱은 큰 기업을 이루고, 아내들과 자식들을 데리고 함께 떠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가 남편에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떠나자고 하였습니다(31:16). 즉 라반의 재물을 야곱이 가져 간 것은 누가 가져간 것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이 라반에게서 가져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택한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난 것을 뒤늦게 안, 라반이 추격을 해 오는데요. 야곱은 라반 앞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지난 20년 년 간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봉사하였지만, 열 번이 품삯을 바꾸며 속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셨나이다”(31:40-42). 야곱은 누구를 믿은 것이에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권세입니다. 아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유업은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도 유업을 받을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에게 하늘의 기업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주시고자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이 복을 꼭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고난. 유업을 받을 자인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첫 번째는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8:17). 저의 친족 가운데 6형제 중 두 분은 초등학교사고, 한 분은 중학교 교사인데요. 초등학교 교사인 한 분의 두 딸과 사위도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 집안의 어른이 초등학교 교사이었던 영향이 컸습니다. 예전에 먼곳으로 전근을 하면 관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수십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다니시는 것을 어렸을때부터 새벽기도를 드린 제가 보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 안수집사님으로 섬기셨습니다. 또한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그 어른의 부인은 날마다 새벽 제단을 쌓으며, 자녀들이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렇게 교육자 집안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 중 한 아들은 교장, 교육감을 거쳐, 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전체를 총괄하는 교육장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3급에 해당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올라설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입니다. 교육장이 된 그분도 첫 부임지인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부터, 선친처럼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는 신앙을 물려받고, 새벽기도를 잊지 않고, 교회에서는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직업과 믿음을 더욱 확장시킨 것이지요. 상속자이면 영광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지니라. 영광이 있기까지 어떠한 고난의 대가가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당한 것과 똑 같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더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고난을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당한 것과 같은 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광도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즉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고난도 기쁨으로 받아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말씀합니다(5:8).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받아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지금 나의 마음을 깨우쳐주신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다 아실 일입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간청. 유업을 받을 자인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두 번째는 간청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사람도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자가 없고,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자가 없으며,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7:9-11). 아들이 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전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린 것이요,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7:7-8). 우리가 아들로서 간청할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간청할 때, 유업이 더욱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본문 앞 절에 유업을 이을 자() 모든 것의 주인이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4:1-3). 이것은 비유로 하나님께서 정한 기간 동안 인간은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하였지만, ‘때가 차매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어서, 우리를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4:4).

 

그러므로 우리가 유업을 받을 상속자로서, 율법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자녀들 가운데도 매달려서 해달라고 애원하면, 부모는 불의하지 않으면 들어 줍니다. 줍니다. 설사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 이름으로 간청하면, 하나님은 들어 주세요. 우리 아버지시니까요. 이게 청구권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자녀로서, 예수 이름으로 간청하면, 지금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유업을 받을 자의 사명.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세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 받을 자로 예정하셔서,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1:5). ‘아들들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기쁘신 뜻대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주변에 하나님이 구원시기로 예정된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여, 교회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즉 하늘나라에 이끌어 들이실 때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완전케 된다고 하셨습니다(2:10).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업을 받을 상속자인 저와 여러분들이,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최종정리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나의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연속성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오직 소망을 두어야 할, 나의 도움우신 하나님은, 죄 없는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율법 아래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속량하여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자들이, 양자의 영으로,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로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유업을 받을 상속자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되게 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하신 고난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받아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지금 나의 마음을 깨우쳐주신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각 자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다 아실 일입니다. 유업을 상속 받을 자는 두 번째로 간청해야 합니다. 간청할 때 유업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 간청은 누구 이름으로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간청하면, 지금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유업을 받을 상속자는 세 번째로 안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영광에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업을 받을 상속자는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결론

 

① 하나님께서 죄 없는 예수님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첫째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율법 아래에 오신 주님의 순종을 본을 따르는 속량 받은 자답게 살게 하옵소서.

 

② 둘째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요,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진 자답게 자부하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③ 셋째로 유업을 받을 상속자게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적 유업 천국과 육적 유업 기업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게 하옵소서. 누구도 빼앗기지 않는 유업을 받을 상속자 답게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④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명심해야 할 것, 첫 번째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받아야 할 고난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깨우쳐주실 때, 아멘하게 하옵소서.

 

⑤ 두 번째 간청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된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자녀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청하여 가장 좋은 것을 받게 하옵소서.

 

⑥ 세 번째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아들들을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음으로, 복음을 증거하여, 교회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