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에스겔 37:7-14 2025.08.10. 主日禮拜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37:7-14)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멸망과 포로
다윗 왕을 통해 통일국가를 이룬 이스라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까지 태평성대를 누렸으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로 분단됩니다. 두 국가로 나뉜 뒤, 북 이스라엘는 BC 722년 경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당합니다. 남 유대는 인접해있는 강대국 애굽과 바벨론 틈 사이에서, 어떻게 외교적 처세를 하여야 하는지,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말기 전통 우방국인 청나라 편에 설 것인가?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일본 편에 설 것인가를 두고, 조정 대신들이 격론을 벌였던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 남 유대는 “너희들이 차라리 바벨론에 항복을 하라 그리하면 생명을 얻고 성이 불타지 않을 것이다”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전통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애굽에 줄을 서게 됩니다(렘38:17-18).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 거칠 것이 없었던 바벨론은 이전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를 함락하고(B.C.612년경), 북방진출을 꾀하는 느고 왕이 이끌던 전통 강대국 애굽을, 갈그미스Carchemish대전大戰(B.C.605년경)에서 격파, 명실상부한 근동지역의 패권국이 됩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서, 그동안 친애굽 정책을 펴던, 남 유대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 유대는 곧바로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받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져, 극도의 혼란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II,재위BC604-562왕이 이끈 바벨론은 세 번에 걸쳐 남 유대를 공격하는데요. 1차는 BC 606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군, 왕족의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왕하24:1-2). BC 597년 2차 재침공 때는 유다왕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들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4:10-14). 그리고 BC 586년 3차 침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왕하25:9-12;대하3:1),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25:6;렘52:9-11).
오늘 본문의 저자인 에스겔은 바벨론이 2차 침략 때에 유다 제18대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당시 에스겔은 청년기인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이렇게 에스겔은 조국이 이방나라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그토록 신성시하던 성전이 파괴된 아픈 역사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동족들과 함께 이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5년 째 되던 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환상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여러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그 중 하나가 본문의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관한 환상입니다(겔37:1-14. 하나님의 영광(겔1:4-28,8:1-4,10:4,18-19,11:22)과 가증한 것들(겔8:5-18),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살육(겔9:6,9-10), 측량하는 장대를 가진 자(겔40:3-24,41:1,13), 메시야 시대(겔40:1-49), 생명의 강(겔47:1-5)).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37:1).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이끌었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인골人骨, 사람의 뼈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겔37:2).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뼈들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하였습니다. 소생蘇生의 기미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광경 앞에선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회생回生을 기대할 수 없는 마른 장작 같이, 바싹 마른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생명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에 에스겔이 무엇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주 여호와께서 아시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에스겔이 보기에는 아무 가망 없어 보이는 마른 뼈들이 살 수 있느냐고 물으시니,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고, 어물쩍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7:4).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마른 뼈들에게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이 명을 받은 에스겔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멈칫 멈칫 하고 있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십니다(겔37:5-6). 다 함께 읽겠습니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5-6). 하나님은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선포하는 순간,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를 넣으리니, “살아나리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영화와 같은 환상을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선포
하나님의 명을 받은 에스겔은 어떻게 하였을 까요? 에스겔은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명을 받고, 잠시 주춤했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를 넣으리니, 살아나리라는 하나님의 진술陳述에 믿음을 갖고, 담대함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37:7-8).
골짜기에 가득한 셀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많고, 회생의 기미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것과 같이,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연결’ 되었습니다. 그동안 골짜기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뼈들이 각 각 원래의 위치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생기는 없더라’. 마른 뼈들이 연결되어,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여, 형체는 인간이지만, 생기가 없어, 숨 쉬지도,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번째 대언을 명하십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9-10).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생기’를 향해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두 번째로 대언하라고 명하신 것은 마른 뼈가 아닌 생기입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대언에 역사를 본 에스겔은 자신있게 지체 없이 두 번째 대언했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선포하는 순간 사람의 모양은 가졌으나, 아직 숨 쉬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가 들어간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이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많던 마른 뼈들이 사람이 되고, 극히 큰 군대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광경을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회복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에스겔이 본, 신비로운 환상을 해석해 주십니다.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겔37:11). 먼저 골짜기를 가득 매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마른 뼈’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 처한 형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통 강대국인 애굽의 도움을 통해, 신흥 강대국 바벨론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남 유대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이 애굽을 격퇴시키면서, 바벨론은 근동지역의 패권국이 됩니다. 이는 친 애굽 정책을 펴던 남 유대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바벨론은 세 차례에 걸쳐 남 유대를 침공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렸습니다.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멸망 당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하고, 왕은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이국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 처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골짜기를 가득 매운 마른 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포로생활에 고초를 겪고 있는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한탄합니까?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유대민족 스스로 조국은 패망했고, 우리는 침략국의 포로 신세가 되었으니, 자신들에게는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고, 다 멸절되었다고, 절망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를 연결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살이 오르며, 생기를 받아, 살아서 일어나, 극히 큰 군대 강대한 나라가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라를 잃고, 포로에서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이 살아날 것에 관해서도, 진술하십니다. 다같이 말씀을 봅니다.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37:12-14).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데 첫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겔37:12-13). ‘무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말합니다. 아무런 소망 없는 상태로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 죽음의 땅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덤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무덤을 연다는 말은 끝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끝냈다는 말입니다. 포로를 끝낸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본문의 저자 에스겔과 동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던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29:10).
훗날 남 유다를 패망시킨 바벨론이, 페르시아제국Persian Empire, 바사에게 정복되게 되는데요(사13장). 유대인들은 바벨론 때부터 포로 생활을 시작하고, 바사에까지 포로 생활이 계속되다가, 70년 지난 후, 바사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스1:3). 오늘 본문 ‘무덤을 열고’ 즉 포로를 끝내겠다는 약속이 70년 후, 이루어 진 것입니다(겔37:12).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좋은 기억의 역사든, 잊고 싶은 역사든, 역사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덤을 열면 끝납니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아름다운 일이던 고통스러운 일이던 끝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포로 생활의 이스라엘과 비추어 볼 때, 여러분이 겪었던 또는 겪고 있는 그리고 겪게 될지 모르는 고통은 아프지만 끝이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종착이 있습니다. 단 오늘 본문 포로생활의 이스라엘에서 보듯이, 고통의 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공통이 끝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당했는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갈 것을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19).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악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을 버리고,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이라는 고통을 당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함께 봅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렘3:8). 남 유다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앞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패망했다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배역했고, 남 유다는 하나님께 반역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배역한 북 이스라엘은 간음을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께 반역한 남 유다는 행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간음이나 행음은 같은 뜻입니다. 나라를 잃고, 포로의 신세가 된 것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간음과 행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간음과 행음은 우상 숭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진공 상태가 없다고 한 말씀을 기억하세요.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이 없으면, 다른 것이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지 않으면, 사탄의 영이 안방마님 노릇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은 하나이기에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악령이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습니다(롬7:24). 사도 바울 같은 분이 자신을 왜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였을까요? 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을까요? 이 말씀 앞 절에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고 하였습니다(롬7:22-23).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지체 속에’ 즉 육체 안에는 다른 법이 싸운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으로 즐거워하려고 하지만, 내 육체의 또 다른 나는 죄의 법에 사로잡힘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끊임 없는 죄의 유혹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끈임 없이 싸우는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 말하며, ‘이 사망의 몸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바울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죄의 법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을 위해 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면, 저와 여러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죄의 법이 나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나를 채우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내 마음에 채우는 것이 곧 우상인데요. 우상이라고 할 때, 목석木石으로 만든, 일월성신日月星辰, 해와 달과 많은 별들 모양과 하늘과 땅에 짐승의 모양을 경배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요. 우상은 그런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자녀가 있고, 저에게도 자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애지중지하듯 저에게도 자녀는 애틋합니다. 누구보다도 나 아이들을 예쁘게 키우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면,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20년이 넘게 아이들을 반 지하에서 생활하도록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개척했을 때는 사방이 캄캄한 완 지하에서, 수년간 지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만약 아이들 생각하고, 다른 일을 아내와 했다면, 그와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자라게 하지는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눈에 아른 거려서, 목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라, 자칫 하나님보다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 어떤 경우는 하나님보다 배우자가 우선이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는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정죄하지 않는다. 그들은 치유 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과 상담을 하는데요. 자기 남편이 동성애를 교회에서 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근거로 “동성애자는 절대 변화될 수 없다”는 한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로 가야 한다고 했기에 자신도 따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까?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그 성도님도 그 분의 남편도, 명문대에서 수학하신 분들입니다. 이 여자 성도님 안에는 하나님보다 남편의 판단이 먼저인 것입니다.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석주 전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맘모니즘,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또한 우상인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들로 인함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은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 될 수밖에 없었던 간음과 행음으로 표현된 우상숭배이고,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보다 먼저로 표현할 수 있는 우상일 수 있습니다. 고통을 끝내려면 고통의 원인을 끝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시간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물리칠 수 있는 성령의 인도함을 기원합니다. 그래서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
이스라엘 회복 두 번째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겔37:14).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앞서 마른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사람의 모양을 가졌어도, 생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기가 들어가자 일어나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포로를 끝내고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이방의 압제를 받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을 입은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한다고 하였습니다(엡3:16).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롬15:13).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를 늘 강건하게 하고, 소망이 넘치게 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합니다(엡6:10). 이렇게 성령을 통해 강건하고 소망이 넘치게 되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이어서 말씀합니다(엡6:11). 그리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의 영을 상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를 끝내고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이방이 압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넘치는 성도는 악의 영이 이길 수 없습니다. 악의 영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문제의 원인을 ‘혈과 육’으로 보게 합니다. 목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고, 저 성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고, 배우자를 잘못 만나 내가 이렇게 되었고, 부모와 자식으로 인해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하고, 관계를 끊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그 사람들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악의 영임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가득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가득할 때, 믿음에 의심하지 않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는 말씀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강건하고 소망이 가득하여, 원인을 다른 곳에서, 혈과 육에서 찾게 하는 마귀의 간계를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의 마지막 승리를 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국 땅에 두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복 첫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에서 ‘무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을 말합니다.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의 원인인 하나님 보다 앞서는 우상을 예수 이름으로 패퇴시켜야 합니다. ‘나오게 하고’는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라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를 끝내고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이방이 압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넘치는 성도는 악의 영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인을 다른 곳에, 혈과 육에서 찾게하는 마귀의 간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의 마지막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복 세 번째는 ‘고국 땅에 두리니’라고 하였습니다(겔37:14). 이 말씀을 70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70년 전 화염 속에서 사라진,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국 땅에 두리니’의 영적인 뜻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이 땅에서 하늘나라 천국으로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합니까? 성도는 성도가 있어야 할 곳에 하나님은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성도의 견인’聖徒堅忍,Perseverance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한 인간으로서 방황은 할 수 있으나,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까지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성도가 있어야 할 곳으로 반드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업무에 관련해서 제가 도움을 주었던 목사님인데요. 지금 처한 상황 때문에 통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는 상가를 원룸으로 변경하려는 건물주의 요청으로 예배당을 빼야 했습니다. 너무 시일이 촉박했고, 현재 보증금으로는 임대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인이 정한 기일에 빼야, 시설비 오 백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전에 있던 교회에 시설비를 일천 만원 주고, 인수했던 곳인데요. 목사님은 다른 교회가 오는 것이 아니고, 예배당을 빼야 하기에 한 푼도 못 받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주인이 정한기간까지 빼면, 오백만원을 준다고 하니, 한 창고에 예배당 성구 등을 보관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다른 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님의 도움으로 그 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정에 있는 목사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권면 드렸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다른 지역으로 교회를 개척하시기 위해, 건물주를 통해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고, 또 계약 만기가 되어, 예배당을 빼게 되면, 얼마 되지 않은 보증금에서도, 그동안 밀린 임대료를 제하면, 보증금이 더 줄어들었을 터인데, 그래도 주인이 계약 이전에 빼라고 했기에, 시설비 오백만원을 받게 된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교회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예비한 예배 처소가 있다고 확신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저와 우리 교회 이야기를 조금 해 드렸습니다. 여러분에게 드렸던 이야기이기, 어쩌면 식상할 수 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기에, 또 말씀을 드립니다. 이 앞에 근린공원을 비전동산으로 명명하고, 개척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예배당을 구해야 했지만, 재정적인 준비 부족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서울 태능을 지나, 경기도 남양주 천보산에 있는 기도원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집에서 버스와 전철을 세 번 환승을 하고, 청라 공원에 와 잠시 기도를 드리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30분이 지나기 전, 다시 버스에 올라, 검암역에서, 9호선 끝 화랑에 가서, 202 버스로 다시 환승, 종점에 가면, 기도원 셔틀버스가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원에 도착하면, 거의 다섯 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리고 기도원 기도굴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두 세분이 보내주신 선교헌금으로 임시처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깔세라고 하는데요. 한 달 임대료를 선불로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무 시설도 없이요. 그리고 한 분이 예배당 헌금을 하고, 제가 집 월세 보증금을 빼서, 정식 임대를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교회를 주려고 하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러던 중 지금 건물이 비어 있게 되었고, 건물주와 연결이 되어, 우선을 절반을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보증금을 빼고, 몇 분이 헌금한 것으로도, 보증금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주에게 보증금 미납금은 차후에 드리기로 하고, 입주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제가 대단한 건가요. 보증금도 외상으로 들어 왔으니까요?
예배당을 절반에서 전체로 확장하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월세를 내야 하기에 1년 여 간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보증금 1천 만원 만 올리고 사용하기로 했고, 예배당 확장을 해야 하는 공사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허락할 것을 믿고 하게되었다고. 이러한 얘기를 목사님께 하면서, 목사님 교회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배당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원에서 개척을 시작하고, 예배당이 없을 때, 임시 예배당을 구할 때, 매달 깔세(임대료)를 내지 못했을 때, 정식 계약 예배당을 구하지 못했을 때, 예배당을 구하고, 정식 계약을 한 후, 보증금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가까스로 마련하고, 이제는 공사비가 없었을 때, 저의 마음은 “반드시 살아남는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것은 인간의 신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고국 땅에 두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끝내고, 자유을 얻게 하고,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였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성도가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이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 보증금 빼서 교회에 드렸다고, 지금 우리 집이 없나요. 우리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들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게 하십니다. 장막을 구하세요? 이끄실 것입니다. 기업을 위해 기도하시나요?. 발전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자녀들의 믿음과 배움과 진학과 취업과 결혼을 위해 기도하세요?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외 어떠한 기도 제묵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성도가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곳으로 반드시 이끄십니다. 아멘!
정리
멸망과 포로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분단 뒤 북 이스라엘는 BC 722년 경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당합니다. 남 유대는 인접해있는 강대국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는데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전통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애굽에 줄을 서게 됩니다(렘38:17-18). 신흥 강국 바벨론은 앗수르, 애굽을 차례로 격파하고 명실상부한 근동지역의 패권국이 됩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서, 남 유대는 곧바로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받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져, 극도의 혼란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II,재위BC604-562왕이 이끈 바벨론은 세 번에 걸쳐 남 유대를 공격하는데요. 1차는 BC 606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군, 왕족의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왕하24:1-2). BC 597년 2차 재침공 때는 유다왕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들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4:10-14). 그리고 BC 586년 3차 침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왕하25:9-12;대하3:1),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25:6;렘52:9-11). 에스겔은 바벨론이 2차 침략 때에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에스겔은 조국이 이방 나라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그토록 신성시하던 성전이 파괴된 아픈 역사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동족들과 함께 이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5년 째 되던 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환상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여러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그 중 하나가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관한 환상입니다(겔37:1-14). 하나님의 영의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이끌었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사람의 뼈로 가득 차있었습니다(겔37:1).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뼈들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하였습니다. 소생蘇生의 기미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겔37: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회생回生을 기대할 수 없는 마른 장작 같이, 바싹 마른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생명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고, 에스겔은 아무 가망 없어 보이는 마른 뼈들이 살 수 있느냐고 물으시니,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고, ‘주 여호와께서 아시나이아’고, 어물쩍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겔37:3). 이러한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선포하라고 하십니다(겔37:4). 이 명을 받고 멈칫 멈칫 하고 있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선포하는 순간,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가 들어가고, “살아나리라”고 하십니다(겔37:5-6).
선포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을 갖고 에스겔이 대언하자, 오랫동안 골짜기에 버려져 있던, 뼈들이 각 각 원래의 위치로 연결되었습니다(겔37:7). 그리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기가 없어, 숨 쉬지도, 일어서지도, 걷지는 못했습니다(겔37:8).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두 번째로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겔37:9). 에스겔이 지체 없이 대언하자, 생기가 들어간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겔37:10). 이와 같이 영화와 같은 환상을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회복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 환상을 해석해 주십니다. 골짜기를 가득 매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고, 지금 그들이 처한 형편이라고 하셨습니다(겔37:11). 바벨론의 세 차례 침공에 남 유대는 초토화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멸망 당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하고, 왕은 두 눈이 뽑힌 체로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이국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 처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골짜기를 가득 매운 마른 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포로생활에 고초를 겪고 있는 백성들은 조국은 패망했고, 이제 침략국의 포로 신세가 되었으니,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고, 다 멸절되었다고 하였습니다(겔37:11).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를 연결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살이 오르며, 생기를 받아, 살아서 일어나, 극히 큰 군대 강대한 나라가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라를 잃고, 포로에서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이 살아날 것에 관해서도, 진술하십니다(겔37:12-14).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회복 첫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겔37:12-13). ‘무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말합니다. 이방 나라, 죽음의 땅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덤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포로를 끝낸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29:10). 훗날 바벨론은 바사Persian Empire에게 정복되게 되는데요(사13장). 70년 지난 후, 바사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스1:3). 본문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겔37:14).
좋은 기억의 역사든, 잊고 싶은 역사든, 역사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덤을 열면 끝납니다. 아름다운 일이던 고통스러운 일이던 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었던 또는 겪고 있는 그리고 겪게 될지 모르는 고통은 끝이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종착이 있습니다. 단 이스라엘에서 보듯이, 고통의 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당했는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 그것이 ‘악이요 고통’이라고 하십니다(렘2:19). 더 구체적으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패망한 것은 하나님께 배역, 간음했고, 남 유다는 하나님께 반역, 행음했다고 하였습니다(렘3:8).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간음과 행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이 없으면, 다른 것이 거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이기에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악령이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였지만, 내 육체 안에는 다른 법이 싸운다고 하였습니다(롬7:22-23). 끈질긴 죄의 유혹을 말합니다(롬7:22-23).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끊임없이 싸우는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 말하며, ‘이 사망의 몸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것입니다(롬7:24).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죄의 법이 나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나를 채우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우상은 목석木石으로 만든, 일월성신日月星辰, 해와 달과 많은 별들 모양과 하늘과 땅에 짐승의 모양을 경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녀를 애지중지합니다. 저도 애틋한 자녀를 생각하면 눈에 아른 거려서, 목회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칫 아이들을 하나님보다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혹 어떤 경우는 하나님보다 배우자가 우선이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는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죄이지만, 동성애자는 정죄하지 않는다. 그들은 치유 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 남편이 동성애를 교회에서 찬성해야 한다며, 그 근거로 한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로 가야 한다고 했기에 자신도 따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합니까?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그 성도님도 그분의 남편도, 명문대에서 수학하신 분들입니다. 이 여자 성도님 안에는 하나님보다 남편의 먼저인 것입니다.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두 주 전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맘모니즘,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또한 우상인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들로 인함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은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 될 수밖에 없었던 간음과 행음으로 표현된 우상숭배이고,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먼저로 표현할 수 있는 우상일 수 있습니다. 고통을 끝내려면 고통의 원인을 끝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시간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물리칠 수 있는 성령의 인도함을 기원합니다. 그래서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 이스라엘 회복 두 번째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겔37:14).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앞서 마른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사람의 모양을 가졌어도, 생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기가 들어가자 일어나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포로를 끝내고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방의 압제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능력을 입은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한다(엡3:16).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엡6:11).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의 영을 상대하게 됩니다(엡6:12). 악의 영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문제의 원인을 ‘혈과 육’으로 보게 합니다. 목사, 성도, 배우자, 부모와 자식으로 자식으로 인해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하고, 관계를 끊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그 사람들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악의 영임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가득할 때, 믿음에 의심하지 않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는 말씀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능력으로 항상 강건하고 소망이 가득하여, 원인을 다른 곳에서, 혈과 육에서 찾게 하는 마귀의 간계를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의 마지막 승리를 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국 땅에 두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복 세 번째는 ‘고국 땅에 두리니’라고 하였습니다(겔37:14). 70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70년 전 화염 속에서 사라진,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국 땅에 두리니’의 영적인 뜻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이 땅에서 하늘나라 천국으로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도가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이끌어 주신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한 인간으로서 방황은 할 수 있으나,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까지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께서 교회로 사용하는 상가를 원룸으로 변경하려는 건물주의 요청으로 예배당을 빼야 했습니다. 시일이 촉박했고, 현재 보증금으로는 임대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야 조금의 시설비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 액수는 목사님이 들어올 때 지불한 권리비에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창고에 예배당 성구 등을 보관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디리다가, 한 성도님의 도움으로 카페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에 있는 목사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권면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저와 우리 교회 이야기를 조금 해 드렸습니다. 처음에 근린공원을 비전동산으로 명명하고, 개척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예배당을 구해야 했지만, 재정적인 준비 부족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버스와 전철로 다섯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기도원에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 분이 보내주신 선교헌금으로 임시처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깔세라고 하는데요. 한 달 임대료를 선불로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무 시설도 없었지만, 겨울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 건물이 비어 있게 되었고, 건물주와 연결이 되어,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보증금을 빼고, 몇 분이 헌금한 것으로도, 보증금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주에게 보증금 미납금은 차후에 드리기로 하고, 입주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절반에서 전체로 확장하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월세를 내야하기에 하기에 1년 여 간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보증금을 올리고 사용하기로 했고, 예배당 확장을 해야 하는 공사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허락할 것을 믿고 하게되었다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목사님 교회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배당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원에서 개척을 시작하고, 예배당이 없을 때, 임시 예배당을 구할 때, 매달 깔세(임대료)를 내지 못했을 때, 정식 계약 예배당을 구하지 못했을 때, 예배당을 구하고, 정식 계약을 한 후, 보증금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가까스로 마련하고, 이제는 공사비가 없었을 때, 저의 마음은 “우리 교회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신념이 아닙니다.
‘고국 땅에 두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끝내고, 자유을 얻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였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성도가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이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 월세 보증금 빼서 교회에 드렸다고, 지금 우리 집이 없나요.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게 하십니다. 장막을 구하세요? 이끄실 것입니다. 기업을 위해 기도하시나요?. 발전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자녀들의 믿음과 배움과 진학과 취업과 결혼을 위해 기도하세요?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외 어떠한 기도 제묵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성도가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곳으로 반드시 이끄십니다. 아멘!
최종 정리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상을 끊어야 합니다. 우상은 일월성신, 하늘과 땅의 짐승 모양을, 목석으로 만든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삶의 순번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즉 고통이 끝나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라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를 끝내고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이방이 압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고, 항상 소망이 넘치는 성도는 악의 영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인을 다른데서, 혈과 육에서 갖게하는 마귀의 간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의 마지막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국 땅에 두리니’.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이 성도가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곳으로 반드시 이끄십니다. 아멘! 이 땅에서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 세상에서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냥 생명만을 유지하는 정도로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며,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이 다짐이 오늘 말씀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마른 뼈를 향해 대언한 것만이 아닙니다. 생기를 행해서도 대언했습니다. 죽음과 같이 전해 소생 없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포하면,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사람이 모양을 이룸과 같이,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을 따라, 생기에 선포하면, 일어나고 살아나듯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이성을 뛰어 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 난 것 만이 아니라, 극히 군대를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주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다짐이 있기를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스겔이 선포하는 순간 골짜기에 흩어져 있던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가 들어가니 살아났습니다.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살아날 것이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다는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①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끝내려면 고통의 원인을 끝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우상을) 물리칠 수 있게 하옵소서.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게 하옵소서.
② 마른 뼈가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났습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강건하고 소망이 가득하여, 원인을 혈과 육에서 찾게 하는, 마귀의 간계를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의 마지막 승리를 보게 하옵소서.
③ ‘고국 땅에 두리니’라는 것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요, 영적인 뜻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이끌어 주십니다. 장막을 구합니다.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기업을 구합니다, 발전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자녀들의 믿음과 배움과 진학과 취업과 결혼을 구합니다. 선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가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곳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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