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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굴복"(단4:28-37) 이재현목사(25.08.17)

이재현목사 2025. 8. 17. 18:34

교만과 굴복

 

 

하나님말씀 : 다니엘 4:28-27 2025.08.17. 主日禮拜

 

 

바벨론The Neo-Babylonian EmpireBC626-539은 전통 강호 앗수르와 애굽을 격파하고, 남 유다를 패망시킨 근동지역 패권국이었습니다(4:28).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BC630-562은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바벨론을 문명과 종교의 중심지로 만들고자했습니다. 그의 대표적 건물 중에는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의 하나로도 꼽히는 궁중정원’The hanging garden of babylon있습니다. 메디아Medes 왕국의 공주였던 왕비 아뮈티스’Amytis가 고국을 그리워하자, 그녀를 위해 메디아에 있는 200여 종의 식물을 모아 무려 500km 거리인 바벨론까지 운반해서, 사막 한가운데 수로를 만들고, 티그리스 강물을 끌어와 만든 인공 정원이었습니다. 아내를 위해 이 정도이었다니, 느부갓네살의 당시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 그는 한 날 주변국을 모두 정벌征伐하고, 평강하게 쉬고 있던 중 환상을 보았는데 두려워하고 번민을 하다가 해석할 자를 구했지만 찾지 못하자, 이전에도 알 수 없는 꿈을 해석해 준 다니엘을 기억하고, 불러들인 후 꿈 내용을 말합니다(4:5-18).

 

 

1. 다음 계시와 해석<권세, 교만, 상실, 광인>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다니엘은 꿈 내용을 듣고 한동안 놀라며 번민했습니다. 꿈을 해석을 하기 전, 차라리 왕을 미워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4:19). 길조吉兆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번민하지 말고 소상히 전하라는 느부갓네살의 요구에 다니엘은 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땅의 중앙에 하늘까지 찌를 듯 위엄있게 자란 나무는 느부갓네살을 상징합니다. 얼마나 강한 왕이던지,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케 되어, 하늘에 닿으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 나무의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들은 가지에 깃들었습니다(4:20-22). 천하가 다 느부갓네살에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하늘에서 내려온 한 거룩한 자, 천사가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뿌리의 그루터기만 남겨 두라고 명하고, 그루터기가 움직일 수 없도록 쇠와 놋줄로 동이고. 들판 가운데 버려두어, 하늘의 이슬에 젖고, 들짐승들과 어울려 지내게 두라, 그 기간은 일곱 때라고 하였습니다(4:23).

이에 대해 다니엘은 이 꿈이 지극히 높으신 이즉 하나님께서 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피할 수 없다면서, 느부갓네살이 광인狂人이 되어 추방당하고, 7년동안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고, 들판에 자면서, 하늘의 이슬에 젖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4:24-25). 그러나 나무가 잘렸어도, 그루터기는 남겨 두라 하였은즉, 느부갓네살이 광인으로 인생을 끝낼 것은 아니라 것입니다. 7년이 지난 후, 세상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깨달은 후, 다시 바벨론의 황제로 복귀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4:26).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정하지 말고, 공의를 행하고, 죄를 사하고, 가나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면 혹시 왕의 영화가 장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4:27). 그러나 오늘이나 예전이나 사람들은 목사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났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화려하고 거대한 왕궁의 지붕을 거닐면서, 자신이 통치하는 제국을 내려다 보며,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다.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 제국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며, 자아도취되었습니다(4:28-30). 이 망언이 쏟아진 순간 왕아 바벨론의 왕위가 내게서 떠났다는 하나님 말씀이 내려왔습니다(4:31). 그리고 예언한 대로 느부갓네살은 총명이 상실했고, 광인이되어 쫓겨났으며, 왕궁이 아니라 들판이 거처가 되었고, 산해진미를 먹던 그가 소처럼 풀을 먹었으며, 금실로 수놓은 침구에서 자던 그의 몸은 이슬에 젖고, 사자 갈기 같던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하녀들이 다듬어주던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4:32-33). 들짐승과 같이 지내는 반인반수半人半獸와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권좌에 앉아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었던 신과 같이 여겨졌던 자가 말입니다.

 

 

 

 

 

 

2. 다음 계시와 해석<자각, 총명, 경외, 굴복>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7년의 기한이 기한이 찬 날,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4:34).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총명이 다시 돌아왔습니다.’(4:34) 온전한 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4:34),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4:34-35). 그 순간 총명이 돌아와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통치자로서의 위엄과 광명이 돌아왔으며, 떠났던 신복과 부하들도 돌아오고, 이전보다 더 강한 권세로 바벨론을 재 정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4:36). 느부갓네살은 자신은 땅의 왕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땅의 왕을 주관하는 하늘의 왕이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라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은 의로우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7년 광인의 형벌은 마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능히 낮추신다고 하였습니다(4:37). 이것이 바벨론이라는 대 제국을 통치하던 자의 결론입니다.

 

 

 

 

 

 

3. 다음 <나를 굴복하게 하는 것>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음악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을 좋아합니까?”라고 한 여가수에게 묻자, “나에게 음악은 좋은 것이 아니라, 음악은 나를 굴복하게 한다.”는 표현을 썼어요. 저의 입장에서 그녀의 대답은 의미심장이었어요. 음악에 굴복한 그녀가 부른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굴복하게 되는 거예요. 가수 가운데는 접신接神,Possession을 하기도 한답니다. 귀신과 교감을 통해, 영감을 받고 곡을 쓰는 거죠. 그래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외적으로는 인생 희비喜悲의 전율을 느끼게 하지만, 내적으로는 영혼이 피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음악이 아닌,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음악의 신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석 주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재벌들이 있어요. 그들 가운데는 맘모니즘 돈을 신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에 굴복한다 그 말입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의 신도 누구의 주권하에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큰 부를 갖고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불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굴복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굴복에는 자기에게 굴복도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국가를 건설하고 주변국을 정복하고, 이 대 제국은 자신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4:30). 느부갓네살은 자신에게 굴복한 것입니다. 곧 교만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들 가운데는 안하무인,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자기만이 전부인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에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입니다. 그 교만은 느부갓네살이 7년의 광인 생활을 겪은 것과 같은 낮아짐의 시간을 지날 수밖에 없습니다.

 

 

 

 

 

 

4. 다음 <교만의 회개와 굴복의 교통>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해석해 준 후, 그 꿈대로 응하기 전,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여 평안함이 장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4:27). 이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모두가 대인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공의와 반대는 불의입니다. 혹 내가 불의함으로 타인이 곤경에 처하게 한 적 있습니까? 혹 내가 가난한 자를 긍휼히 돌보지 않음으로 고통스럽게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로 땅에서 매이기 때문에 하늘에서도 매일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말씀이 두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교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는데, 그 앞에 교회의 말을 듣지 않거든이라고 말합니다(18:17-18). “불의로 타인을 곤경에 처하게 하고, 긍휼히 여기지 않음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이가 성도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를 알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그 당사자에게 말하기 전, 본인 스스로가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자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땅에서 푼 자들이 기도할 때,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습니다(18:19). 또 한군데 말씀에서도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하였는데요. 그 앞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합니다(16:18-19). 예수님은 교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6:18). 그러므로 불의로 타인을 곤경에 처하게 하고, 긍휼히 여기지 않음으로 가난한 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가 성도 가운데 있다면,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풀립니다.

성도가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사람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며, 그것을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땅에서 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매일 수가 있습니다.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교만일 수 있고, 7년의 광인 생활을 했던 느부갓네살 같은 기간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같이 자신에게 도취된 자는 자기에게 굴복한 자입니다. 자기의 과오를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입니까? 돌아서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공원 벤치에서 개척을 시작하였고, 참 어렵게 어렵게 임시 처소를 구했습니다. 아무 시설도 없이 예배를 드려야 했지만, 우리에게는 한 겨울 칼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공간만 있는 것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을 전도하게 되었는데요. 우리 교회에 오시기 전에 다른 교회에서 전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대해 저렇게 건물 없이 공원에서 예배드리다가, 또 시설도 없이 예배드리다가 하는 곳은 교회라고 보기 어려워요."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건물주에게 전화를 해서, 교회를 빼도록 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는 아마도 그 전도하려는 가족이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기도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교회는 큰 문제가 발생 예배당 건물을 매각하고, 규모를 줄여 이전하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폐쇄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공격했기 때문에 그 교회가 그렇게 되었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내가 불의함으로 타인이 곤경에 처하게 한 일과, 내가 가난한 자를 긍휼히 돌보지 않음으로 고통스럽게 한 일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러한 잘못을 했다면, 교회에서 회개하고, 땅에서 풀리고, 하늘에서 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굴복하는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오늘 굴복을 내가 나에게 하는 것으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를 신으로 섬기는 교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4.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느부갓네살에게 계시하고, 이를 다니엘을 통해 해석해주고, 곧바로 진행하지 않으시고, 1년 이라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각각에세 정하시는 열두 달이라는 시간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내가 먼저인 자아의 교만, 자기에게 굴복하고 자기를 신으로 섬기는 교만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과 교통하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에게, 가정과 기업에, 공동체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이, 나의 것, 가정과 기업의 것, 공동체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① 굴복은 다른 사람을 사로잡는 것만이 아닙니다. 느부갓네살 같이 자기애(나르시시즘)에 빠져, 자기가 전부인, 안하무인,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는, 자기에게 굴복하는 교만한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께만 굴복하게 하옵소서.

② 공의를 버리고 불의로 타인을 곤경에 빠트리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음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오를 알지 못하는 것 또한 교만입니다. 성도로서 그러한 일이 있다면, 교회에서 자복하고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옵소서.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고 한, 느부갓네살의 결론이 우리의 결론으로 하늘과 교통하게 하옵소서.

④ 하나님께 모든 권세가 있음을 알고 영광을 올려 드리는 느부갓네살에게 총명과 나라의 영광과 왕의 위엄과 광명이 돌아왔고, 모사들과 관원들이 찾아왔으며, 지극한 위세가 더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과 기업과 자녀의 소망에 응답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하나님에게 주권 있고, 하나님이 나를 상속자되게 하기 위해 아들 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반드시 복으로 이끄시고, 하나님은 교만을 버리고 굴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허락하신다는, 이 일관된 지난 다섯 주 동안의 메시지가, 이미 우리에게 임했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