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하나님말씀 : 마가복음 15:21-32 2025.09.21. 主日禮拜
구레네 시몬의 ‘구레네’Cyrene는 현재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한 지명입니다. 헬라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B.C. 5세기 이후,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집단 거주했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시몬은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고(참고/출23:14-17;행2:1,5), 그때 십자가르 지고 가시는 예수님으로 큰 소동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자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고, 구레네 시몬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막15:21).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이른 아침까지, 세 번의 재판과 가혹한 채찍 그리고 모욕과 고초로 한숨도 자지 못한 체, 십자가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는 없었고요.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를 제외하곤, 모두 욕설과 비방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롱하는 말을 쏟아내는 이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넘어졌다 가까스로 일어 섰다를 수차례하시면서, 골고다 덕을 향해 핏자국이 선명한 발걸음을 내디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전에 형을 집행해야 했습니다. 이미 빈사상태이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에 로마 병사에게 눈에 띤 시몬 구레네를 예수님을 돕는 조력자로 택했습니다.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십자가를 지게했다’고 하였습니다(막15:21).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로마 병사는 마땅한 자로 여겼지만, 본인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억지로 동참하게 된 사람 구레네 시몬입니다.
1. 다음 <구레네 시몬의 회심과 변화 그리고 흔적>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구레네 시몬의 이야기는 본문 이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의 실명을 기록하고 있고(막15:21), 훗 날 사도 바울은 자신과 동역했던 인물 가운데 ‘루포’ 즉 구레네 시몬의 아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에게 문안할 것을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롬16:13). 이로 미루어 보건대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것과 달리, 골고다에서 집행된 예수님의 십자형을 보면서 회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전도 여행에서 많은 동역자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교회에서 본이 될 만한 사람들을 기록하였는데요. 그렇다면 구레네 시몬의 아들과 아내가 로마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는 중진급 성도로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인물입니다(벧전5:13). 원래는 바울과 함께 했던 바나바의 생질로 전도 여행에 동참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하여 바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으나, 나중에는 신실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참고/행15:37-39;골4:10;딤후4:11;몬1:24). 이러한 마가는 바울의 동역자들을 밝히 알 수 있었고,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과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의 아들과 아내였음을 본문을 통해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회심한 것은 물론 제자로서, 초대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구레네 시몬의 변화는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이미 빈사상태였습니다. 채찍으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고, 찢겨진 살점은 리본처럼 매달리고, 살색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피가 온 몸을 덮었습니다. 그 옆에 있던 구레네 시몬에게 주님의 혈과 육이 묻어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기에 예수님의 피와 몸이 자신에게 묻어나는 것이 싫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혈과 육이 베었었다는 사실에 통곡하며, 육저, 영적으로도 예수님의 흔적을 갖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2. 다음 <구레네 시몬이 바라본 예수>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구레네 시몬은 의지와 관계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막15:21).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에게 뱉고 던진 가래침과 돌멩이를 어쩌면 구레네 시몬도 맞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는 불쾌하고 화가 치솟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히12:2). 자신은 미칠 지경인데 예수님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같이 잠잠하시며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사53:7). 무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무리가 조롱하였습니다(막15:29-31.참고/눅15:32).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 했습니다(눅23:34). 또한 십자가 형의 총 책임자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막15:39;눅23:47). 이렇게 일생 잊지 못할 예수님의 마지막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된 사람이 구레네 시몬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지만, 그 동참이 주님 최후의 순간에 밀착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은혜는 바로 구레네 시몬이 이후로 감당해야 할 십자가에 대한 소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을 보면서, 자기의 십자가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3. 다음 <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① “억지 자원”>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진 억지 동참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자원해야 하는 것은 바른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를 칭찬하면서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여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였다고 했습니다(고후8:1-4). 이렇게 성경은 예물 그리고 헌신에서 자원하여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사역에 있어서도, 목회자만 아니라 평신도도 억지로 말고 자원하여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원이 어떤 자원인가가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종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에는 같은 동족에게 팔려 종이 되었을 때 6년을 섬겼으면, 7년되는 해 자유를 주게했습니다(신15:12). 그러나 종 가운데 지난 육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억지로 종이 되었지만, 주인이 너무나도 잘 대해 주어 안식년인 일곱째 해가 되어서도, 그대로 종으로 있기를 원하면, 송곳을 가져다가, 귀를 문에 대고 뚫은 다음, 영구히 그 집안의 종이 되었습니다(신15:16). 처음에는 억지로 종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자원하여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요6:44)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강권하여 예수 믿게 하였다는 사실에 어떤 성도는 너무나 감격하고 기뻐하지만, 어떤 성도 가운데는 “정말 왜 나를 예수 믿게 하셔서 이렇게 믿음대로 살라고 하는지, 나는 신앙생활이 체질이 아닌데” 투덜거리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강권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만약 그렇더라도 낙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처음에는 억지이지만 깨달아가 회심하고, 그를 따르는 거룩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원의 영적인 뜻입니다. 성도의 자원은 처음부터 자원일 수도 있지만, 억지로 믿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깨달아가면서,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가래침과 돌로 맞으면서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희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의 대적자인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교회를 섬기면서 이러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과 같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는 삶으로 전환 될 것입니다(고전9:19).
사도 바울도 자의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 핍박하려 가는 길에 주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억지로 주의 종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자원한 종이 된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내가 기도 시간을 정하고, 예배 시간을 정하고, 봉사 시간을 정하고, 전도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가고 싶지 않아도, 교회에서 가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원도 억지로 해야 자원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자원만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하는 분들로 거듭나시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4. 다음 <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② “은혜 소명”>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처음에 억지 동참한 구레네 시몬은 그렇게 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부어주신 은혜를 알고 부르신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물론 아들과 아내까지 그 길을 따르는 가정이 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하나님께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 동참하라고 명하실 때는 우리에게 이렇게 부어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부르신 소명이 있을 줄 압니다. 이것을 청아비전교회에서 찾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를 현실에서 보면, 웬만한 교회는 개척할 때부터 이 정도 규모로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는 교회에 발을 디딪게 된 것이 어쩌면, 억지 동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에게 부어주시고자 하는 은혜가 있고, 부르신 소명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억지로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이는 누구입니까? 로마 병사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로마 병사를 누가 도구로 사용하신 거예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을 청아비전교회로 인도한 분이 누구이세요? 어떤 성도이고 제직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럴 때 억지 동참에 임하시는 은혜 소명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다음 <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③ “같은 상황 다른 결과”>를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 어 보시오.
본문에 보면 예수님 좌우로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막15:27).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하였습니다(막15:32). 이 말씀은 예수님 좌우편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예수를 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것과 같이 생각될 수 있습니다. 좌편 강도는 예수님을 욕했지만, 우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거니와 예수님이 행하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눅23:40-41). 그러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나를 기억’해달라고 하였고, 그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눅23:42-43).
그러면 오늘 마가복음은 잘못 기록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강도 둘 다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서론에 십자가 형을 받은 자들은 집행하기 전, 채찍과 구타로 빈사 상태가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십자가 달렸으니, 악 밖에 남지 않고요. 그것을 옆에 있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쓰인 예수님에게 쏟아 부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우편의 강도는 변한 것입니다. 자기 옆에 고초를 당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도 구레네 시몬과 같은 회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알게 합니까?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이라는 동일한 환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어떤 신앙을 갖는가에 따라 열매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어떤 경우 억지 동참이지만, 그래도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받는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우편 강도에게 약속한 낙원과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여기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6.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억지 동참.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되었지만, 십자가를 지시고 달리신 주님을 보면서 변화되었고. 회심하여, 제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기도, 예배, 봉사, 전도 시간을 정해서, 가고 싶지 않아도, 교회에서 가서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자원도 억지로 해야 자원이 될 때가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하는 성도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② 은혜 소명.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알고, 부르신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물론 아내와 아들까지 그 길을 따르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을 십자가 지게한 로마 병사도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여러분을 우리 교회에 인도한 분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하고 싶지 않은데 하라고 하실 때, 부어주신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알게 하옵소서. 가족 모두가 그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③ 같은 상황과 다른 결과.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가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결과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채찍과 구타로 빈사 상태가 되어 십자가 달렸을 때, 악밖에 남지 않은 강도 둘 다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고 낙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같은 환경 안에서 어떤 신앙을 갖는가에 따라 열매는 다릅니다. 어떤 경우 억지 동참이지만, 그래도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우편 강도에게 약속한 낙원과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이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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