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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에서 백배의 결실"(마13:3-8,19-23) 이재현목사(23.01.08)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1. 11. 22:33

좋은 땅에서 백배의 결실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13:3-8,19-23 

 

살아가면서 영생’Eternal Life,永生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은 육만이 아니라, ‘’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3:11;21:9;살전5:23;벧전1:9). 인간은 남녀 간에 피어오르는 에로스’Eros적인 사랑이나, 혈육 간에, 친구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필로스’Philos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고차원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어떤 사랑도 메우지 못하는 공백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사랑의 이방지대가 있습니다. “영혼입니다. 이곳을 채워줄 사랑은 영원한 사랑, ‘아가페’Agape입니다. 참 지혜자는 이 사랑을 찾는 자라고 말씀합니다(19:8). 우리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여기(‘갈보리’Calvary ‘십자가’)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요일4:10.참고/27:33;15:22;19:17).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요일4:10).

갈보리 십자가는 첫째 무조건’無條件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인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예찬하고, 노래하고, 고백하지만 상대방이 사랑하지 않는데 무조건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없어도,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세 번째 ‘‘희생적’犧牲的인 사랑입니다.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사’. 이것은 최대의 희생을 치렀다는 말입니다. 자기 아들, 자기 딸을 내줄 만큼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대신 희생시켜 주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무조건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받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하였습니다(요일4:11).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도 떠난 다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13:34-35).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마땅하도다고 하였습니다(요일4:11).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는 것입니다(요일4:12).

인간이 무조건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갈보리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갈보리에는 단지 십자가 하나만 있습니다. 그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비참하게 죽어 있습니다. 그 몸에서는 핏방울이 오늘도 끝없이 끝없이 이 땅의 온 인류를 향하여 떨어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펴놓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양발 양손에 못이 박혀 피를 흘리시고 가시관으로 온 얼굴에 피범벅이 된 그분의 얼굴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뼛조각과 납덩이가 주렁주렁 달린 채찍에 깊은 골이 진 밭고랑 같은 등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같은 죄인을 위해 왜! 죽으셔야 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기쁜 일이 있고, 감사한 일이 있고, 행복한 일이 있어도, 갈보리를 묵상합시다. 슬픔이 있고, 장벽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갈보리를 묵상합시다. 그러면 지금도 무조건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이 나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공동체 가족인 성도들 서로 사랑으로 섬길 수 있고, 그들의 영혼 또한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갈보리의 무조건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서, 기쁜 일, 감사한 일, 행복한 일 만이 아니라, 슬픔과 장벽과 고난에도 승리하는 올해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씨뿌리는 비유 중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그 대상이 불신자가 아닌 성도입니다. 말씀 을 들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13:19,20,21,22). 교회를 많이 다녔건 출석을 몇 번 하지 않았건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듣기는 들었으나 그 후는 달랐습니다. ‘길가(“하나님 말씀을 빼앗기지 말라”)에 대한 글입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13:19).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악한 자 즉 사탄이 와서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말씀이 마음에 담아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부터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은혜받으러 가는 것이다라고, 여겨진 것 같습니다. 예배 안에 은혜가 분명합니다. 제가 어릴 때, 성도님들이 은혜받으러 간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교회에 오면 일단 회개의 기도부터 하고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되면 하나님께 자신을 산 제물로 받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분들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달라’, 그러한 말보다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간절한 소망을 드렸습니다. 말 그대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지요. 자칫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하는 나의 충족의 변형이 은혜받으러 간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영과 진리를 드리는 것입니다(4:24). 예배의 자리에 몸만 와있지 말고, 마음에 세상의 걱정과 근심을 다 벗어버리고, 정욕과 욕망의 죄를 회개하고,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드리는 예배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진리, “오직 나의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고백하며, 드리는 예배가 진리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전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우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할 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보다, 은혜를 받는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자치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의 참된 말씀을 악한 자 사탄으로부터 빼앗기고 있는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예배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지, 내가 만드는 예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의 참된 가르침대로 예배를 드릴 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하고 놀라운 은혜를 부음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맞는 것에 먼저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담기지 않는 자가 아니라 말씀이 담겨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는 악한 자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돈을 도둑질 맞을 수도 있고, 지위를 빼앗길 수도 있고, 명예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다시 벌고 찾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다른 신앙은, 영원한 생명, 구원, 천국을 망실亡失 할 수 있기에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영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6:63). 예수님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하나님 말씀이 원하는 삶으로 인도하심 받기를 축복합니다.

 

 

 

 

 

2. ‘돌밭(“끝까지 넘어지지 않는자”)에 대한 글입니다.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13:20-21). 말씀에 기쁨 즉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돌밭이기에 뿌리가 내릴 수 없습니다. ‘기쁨이 감정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뿐 신앙으로 승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환난이나 박해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13:21). 점포 출입문에 주일은 쉽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안 믿는 분들도 ! 이 가게 사장은 교회에 나가는 분이구나!”고 생각합니다. 믿는 성도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을 밝힌 후, 주변 상인과 고객에게 당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정진하다가, 당하는 환난이나 박해에서 넘어지지 않는 믿음을 소유한 자라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돌밭을 바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6).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라고 말씀합니다(8:13). 본문에는 넘어지는 자 배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이 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도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기쁨을 얻었다면 믿음이 자리 잡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삶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환난과 박해가 와도 넘어지지 않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박해에도 끝까지 넘어지지 않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3. ‘가시떨기(“하나님의 의와 나라의 열망”)에 대한 글입니다. 읽고 의견을 나누어보시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13:22). 이스라엘 땅에 자라는 가시떨기 가시덤불은 4m까지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나서 대가 되고 자라기는 자라는데, 가시떨기 자라는 속도와 범위가 더 큰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출석해 예배에 참석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덮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염려함으로 너의 키를 한 자라도 늘릴 수 있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수고도 안 하고 길쌈도 아니 하지만,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크게 하시는 하나님 아니시냐,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하나님이 기르시지 않느냐, 그것보다 귀한 너희를 기르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6:25-30).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하늘 아버지는 다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 일상해서 득탐을 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것보다 나은 것도 있습니다. 수입에 옷 살 지출을 뺄 수 없을 때, 물질이 부족한 것이 비참해요. 옷이 없어 득탐해 입는 것이 비참해요. 물질이 없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재물의 유혹돼 간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절박하다면, 그 간절함으로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를 축복합니다. 매주 주일 설교를 어떤 분은 매일 묵상하면서 들으며 자라갈 때, 그 자람보다 가시떨기인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더 자라 덮지 않기를 바랍니다.

 

 

 

 

 

4. ‘좋은 땅(“백배의 결실”)에 대한 글입니다.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보시오.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8:15). 이것은 말씀을 그대로 받겠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불순물 없이 가감도 개작도 각색도 하지 않고, 그대로 믿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말씀을 빼앗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지키어라고 말씀합니다(8:15).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입니다. 신앙이 뿌리가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돌밭, 환난과 고통에 넘어지고 배반하는 자가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됩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가 신앙의 뿌리가 내리고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8:15).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 그대로 믿으니 믿음이 자라고 신앙의 뿌리가 내리고, 당연히 결실을 맺게 됩니다. 단 그 결실할 때까지 인내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염려하면 재물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에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결단을 열매 맺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인내해야 결실할 수 있습니다. 지난 1년간도 교회 공동체를 섬기면서 인내하신 성도 여러분, 가정과 기업의 녹록지 않음에도 인내로 말씀에 순종한 여러분에게, 올해에는 반드시 결실이 있을 줄 믿습니다.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3:23). 하나님이 원래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백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개작 각색하는 길가가 아니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좋은 땅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받으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난 후 지키면, 돌밭 같이 기쁨으로 끝나고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과 환난에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듣고 지키면. 가시떨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신앙의 자람보다 더 자라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열망을 가지면. 하나님도 하나도 부족함 없이 백배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13:16). 말씀을 보고 듣는 것이 좋은 땅입니다. 적이 좋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13:23). 2023년도 오늘 말씀의 백배의 열매를 맺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길가’, 말씀을 듣고 담기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만드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돌밭 말씀의 기쁨을 감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말고, 신앙으로 승화하게 하옵소서. ‘뿌리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박해에도 끝까지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가시떨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하나님에 대한 사모를 덮지 않게 하옵소서. 물질이 없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유혹돼 가는 것입니다. 물질이 절박하다면, 그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의와 나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좋은 땅 백배를 하나님은 주시고자 하십니다.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받고, 지키어서 핍박과 환난에 넘어지지 않고, 염려로오는 재물의 유혹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결단을 열매를 맺을 때 가지 인내하여, 백배를 받는 2023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