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하나님말씀 : 이사야 66:10-14
“나누라”-섬기어라. 이스라엘은 대세례 요한의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의 좋은 소식을 듣고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이들은 먼저 두 벌 옷을 옷 없는 자들에게 나눠는 섬김을 가졌습니다(눅3:11.참고/마11:11;눅7:28;눅3:2-3). 당시는 한 옷을 갖고 1년 내내 입어야 하는 때입니다. 그들이 어렵게 어렵게 해서 두 벌을 옷을 갔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 벌을 나눈다는 것은 수십 벌의 옷을 갖고 있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말씀은 곧 부족함에도 나누어야 함을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많다고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나눔을 잃어버리고 사는 시대이니까요? 바라기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물질의 복을 주셔서 부유한 가운데 나눌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유롭지 못할 때부터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음 가운데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게하는 세례를 통해 회개하여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첫 번째는 나누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10:45). 우리 예수님은 나눔의 본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정하라”-욕심을 버리라. 두 번째는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말라’고 하십니다(눅3:13). 이것은 ‘정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은 정할 ‘定’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하십니다(참고/출20:16-17).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 여러분 자기 것 아닌 것에 미련 두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영적 육적 모두 말입니다. 죄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를 통해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 두 번째는 정하라인데요. 예수님은 전도하러 보낸 제자들에게 “9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였습니다(마10:9-10). 우리 예수님은 정함의 본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감당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족하라”-감사하라. 이것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 세 번째 ‘족하라’와 연결됩니다.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습니다(눅3:13). 만족할 때 족 ‘족하라’입니다. 내가 받을 것보다 일 이만 원이라 더 받으면 좋은 게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의 심리는 더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해요. 그것이 합당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급료에 족할 줄 안다는 것은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눅9:58.참고/마8:20). 자신의 쉴 곳조차 없으심에도 아버지 하나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의 삶도 수용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족함의 본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의 ‘좋은 소식’을 듣고도, 회개를 거부한 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헤롯과 그의 가족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제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악을 행하고도, 이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어 악에 악을 더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 남편과 이혼하고 시숙과 재혼한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는 기회를 엿보다가 세례 요한을 참수토록 하였습니다(마14:1-12;막6:14-29;눅9:7-9). 이러한 죄에 딸까지 가담하게 했습니다. 가장이 악에 악을 더하고 그 가족이 그 악을 끊지 않자, 악에 악에 악을 더하는 가문이 된 것이지요. 이 집안 훗날 유배지로 추방되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행의 가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상기합시다. 죄 사함의 세례를 통해 회개하면 ‘나누라’, ‘정하라’, ‘족하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누라’ 섬기라는 것이고요. ‘정하라’ 욕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고요. ‘족하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요. 주님의 본을 보이신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장차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게 될 신분입니다. 세상과 같아서는 안되는 이유이죠. 우리는 회개하여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복 주시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위로를 받을 곳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는 ‘교회에서 위로 받으리니’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 다(사63:13). 지금 새 예루살렘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위로하심 을 내리어 주시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위로하심이란,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위로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첫 번째 “교회를 사랑하라”에 관한 글입니다.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요’(사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즉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셨다고 말씀할 정도로 하나님의 첫째 관심입니다(행20:28). 그렇게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교회를 사랑할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더욱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위로하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말은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성도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사만 아니라, 진심으로 성도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는 아세요. 내가 정말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인사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왜 사랑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기에 사랑하는 것이요. 사실은 내가 교회를 성도를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더욱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성도님을 사랑해야 합니다(잠27:23). 성도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목사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더욱 믿음의 가정들 즉 성도들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입니다(갈6:10). 금년도 교회 슬로건이 “서로 사랑하라” 교회 공동체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 값을 주고, 살만큼 사랑하는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오늘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풍성히 임하기를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교회와 함께 기뻐하라”에 관한 글입니다.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어.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사66:10). ‘성읍’은 예루살렘이요, 오늘날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귀신을 내어 쫓을 만큼 큰 능력을 기뻐하기보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눅10:20). 생명책에 녹명錄名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동역자들이 충성된 일꾼이었다는 점보다.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빌4:3). 그것이 가장 기뻐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구원받지 않았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에 들어갈 자에 대하여,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계21:27). 창세기 아담의 계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디에 이름이 녹명되어야 함을 계시록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라고요. 생명책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와 번영과 발전을 이루었어도, 그 마지막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어리석은 자’라고 지칭한 부자와 같은 것입니다(눅12:20).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말씀합니다(계20:15). 그러나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환난과 궁핍을 당했더라도, 그는 ‘실상은 부유한 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계2:9). ‘생명의 관’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2:10). 그가 바로 생명책에 녹명된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떤 큰 능력이 있는 것보다 너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한 때 ‘행복바이러스’라는 말이 많이 쓰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면 더욱 행복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에게서 생명책에 기록된 기쁨과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는 행복바이러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혜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그 무엇보다도, 내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며, 그 생명책에 기록해주신 하나님만을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기쁨과 즐거움의 시너지 백배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교회 함께 기뻐할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더하게 될 것입니다.
3. 세 번째 “교회와 함께 슬퍼하라”에 관한 글입니다.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어.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사66:10). 성은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고요. 오늘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라는 교회와 함께 슬퍼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슬퍼하는 성도에게 그 위로하심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말입니다. 그렇기에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와 함께 슬퍼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크신 위로하심을 내리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입니다. 고층 아파트 숲과 수많은 인파 가운데 있음에도, 나는 혼자라는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광야는 하나님에게만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위로함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이 위로를 받을 곳으로 하나님은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서로 주 안에 있기에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함께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더욱 임하실 줄 믿습니다. 때로는 다른 분들의 사정을 들어주면서,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위로할 때, 버거운 마음이 없지 않아 들 때가 있습니다. 나도 힘든데 힘든 분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슬픔을 함께 할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위로하는 자에게도, 위로 받는 자에게도, 더욱 크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마게도냐로 전도 여행을 떠나서,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있었습니다(고후7:5). 선교 현장에서 전후좌우 사방으로 큰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 바울의 제자 디도가 찾아 왔을 때,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고후7:6).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이가 사도 바울입니다. 그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디도를 통해 사도 바울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고후7:7). 예전에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이 이제 성장해서, 오히려 바울을 위로하고 있으니 얼마나 바울이 위로가 되겠어요. 바울이 전도했던 성도들이 성장하여 이제는 바울을 위하여 사모하고 애통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7:7). 이 말을 들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어요. 이 서로 위로한 자리에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함께 슬퍼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가득넘치게 하십니다.
4,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교회와 함께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슬퍼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은 충족하게 됩니다. 젖을 빠는 아이가 젖을 마음껏 섭취한 후 “꺼억”소리를 내듯이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충족한 성도가 됩니다. 마음에 평강이 강 같이 흐르는 평강한 성도가 됩니다. 영육 간에 강건해지는 강건한 성도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 오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은총이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말하는 교회론과 상이한 교회론에 대해 염려를 하게 됩니다. 요즘 무료 동영상를 통해 신앙적인 부분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십일조에 관계된 것은 어느 교회, 헌신에 관한 것은 어느 교회, 건축에 대한 것은 어느 교회, 설교에 관한 것은 어느 교회, 성경 공부에 대한 것은 어느 교회 것을 선별하여 취합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자칫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만들 뿐, 하나님이 말씀하는 교회 구성원을 망각해가고 있지 않나 우려스럽습니다. 교회 구성원으로 교회를 함께 사랑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온전한 성도로 세워져 갈 수 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하나님은 자기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로를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풍성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와 함께 기뻐할 때, 위로하심을 더 해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와 함께 슬퍼할 때, 위로하심을 가득 넘치게 하십니다. 이를위해 기도합니다.
②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교회를 사랑하라, 교회와 함께 기뻐하라, 교회와 함께 슬퍼하라. 행했을 때, 하나님께 위로를 받는 자는 충족한 성도로 세워집니다. 평강한 성도로 세워집니다. 강건한 성도로 세워집니다.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③ 하나님이 말씀하는 교회 구성원으로, 함께 교회를 사랑하고, 함께 교회와 기뻐하고, 함께 교회와 슬퍼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온전한 성도로 세워져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와 우리 교회를 찾는 모든 분들이 교회 공동체로 이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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