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바울의 만남Paul Meeting-이재현목사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2. 5. 07:25

바울의 만남Paul Meeting

 

이재현목사

 

 

바울과 바나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이방 사도로 부름을 받고, 전도자가 된 후(9:3-25),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홀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삼 년 동안 신앙훈련을 했습니다(1:16-18).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정통 바리새파로서, 당대 최고의 학파인 가말리엘에게 사사 받은 율법을 복음으로 해석합니다(참고/22:3;3:5). 그것이 나중에 기독교 핵심 교리인 로마서 등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3년이 지난 후,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았습니다(9:26). 당시 교회의 핍박자였던 바울의 회심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볼 때, 등장한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바울이) (다메섹)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사명주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복음을 증거)하였는지를 전하니라”(9:27). 바나바는 바울을 예루살렘교회에 소개하고, 동역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바울은 초대교회 역사의 중심부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9:28-29). 

 

스데반 순교 후,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했고, 야고보도 헤롯에게 참수를 당했습니다(7:60,8:3,9:1-2,12:1-2). 성도들은 타국으로 피신을 하였지만, 각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8:3-4,9:32-10:43,11:19). 환난이 복음 증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 전파는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안디옥에 이르러 구브로와 구레메 몇 사람이 이방인인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고,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하였습니다(11:20-21). 이로써 탄생한 안디옥교회는 이방 최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BC20-AD39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마나엔이 주를 영접하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정도로 안디옥교회는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13:1). 또한 전도와 봉사는 지역에서 인정받고,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11:26). 그리고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기근에 직면하게 되자, 안디옥교회는 유대에 사는 형제, 성도들에게 부조하기로 작정하고, 돕는데 앞장섰습니다(11:27-30). 이렇게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적으로 기독교 초기 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안디오교회에 바나바를 파송 섬기도록 하였습니다(11:22-24.참고/13:43,14:14). 그런데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바울을 청하여, 안디옥교회의 동역자로 세웁니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는 1년여의 사역을 통해 큰 무리를 가르치며,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11:25-26). 나아가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고, 이방에 세워진 교회 중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13:2-3). 바울과 바나나 그리고 바나바의 생질인 요한을 선교사로 파송한 이후, 바울의 세 차례 선교여행을 모두 후원함으로써 이방교회 중 최초로 이방 선교에 헌신한 교회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참고/14:26-28,15:3;18:23).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두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이도록 하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하였습니다(4:36-37,11::24). 바나바는 성도에게 본보기이요 칭찬을 받고 신망이 두터웠습니다(4:36-37,11:24). 그러나 바나바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그 무엇보다도 바울을 발굴하여, 이방인 전도자로 일선에 내세웠다는 사실입니다. 바나바 또한 사도로서 바울과 함께 이방인 전도의 개척자로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14:14). 바나바는 생질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울과 결별하고, 구브로 섬에 선교를 떠났지만, 바울은 두고두고 바나바를 훌륭한 동역자로 평가하였습니다(15:36-39;고전9:6;딤후4:11;4:10). 바울만 순교한 것이 아니라, 전승에 의하면 바나바도 구브로 교회의 설립자로서, 훗날 구브로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울과 누가

 

하나님은 바울을 마지막 선교지인 로마로 보냈는데, 예루살렘에서 죄인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2년 여 동안 구금을 당한 뒤 가게 하셨습니다(20:22-24,23:11). 긴 항해와 유라굴로의 광풍 그리고 멜리데 섬에 구조되는 어려움을 겪는 등 수개월이 소요된 뒤에야 로마에 올 수 있었습니다(23:32,24:27,25:21). 로마에 도착 뒤, 바울은 재판이 마칠 때까지, 2년 여 동안 가택 연금과 같은 상태로 구류拘留를 당해야 했습니다(28:30-31).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여정에 함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로 기록된 바울의 모든 여정에 동행한 누가입니다(참고/16:10-17,20:5-21,21:1-18,27:1-28:16).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이기에 자신이 바울과 동행한 입장에서, ‘우리로 칭한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부터 함께 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처음으로 유럽빌립보에 복음을 전했던 이 시기, 유창한 헬라어와 의사이었던 누가는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참고/20:5-6;딤후4:11;4:14). 그리고 누가는 바울이 평탄할 때가 아닌, 예수를 증거한 이유로, 죄수 되고, 순교의 자리까지, 변함없이 함께했던 것입니다. 

 

누가도 바울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누가복음에 소외된 자들, 이방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이들을 단순하게 고치고, 긍휼로 여기고, 구제하는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참고/2:10,4:18-19,14:21). 그들을 궁극적으로 구원의 대상으로 보신 예수님의 심정을 기록했습니다. 누가가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는 의사로서, 아픈 이들을 진료하고, 처방하는 일을 삶 전부로 알고, 인생을 마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병든 자를 진정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육체는 물론 영적인 구원을 받아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그 비전을 마음껏 펼친 것이 바울과의 만남이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 공생애 당시 12제자가 아니었는데도, 누가복음과 초대교회의 생성과 부흥이 기록된 사도행전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과 전도 여행에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탄생부터, 초대 교회의 시작, 바울의 전도 현장에 나타났던 위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방인을 위한 복음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문학적 소질과 수준 높은 헬라어를 구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재능을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바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석학 가말리엘 문하생입니다. 바리새파로 유대교에 정통했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3:8).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3:8). 바울이 이 성경 빌립보서를 쓸데가, 로마에서 구금되었던 때였고요. 그 시기 함께 했던 사람이 누가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도 바울이 기록한 내가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3:8). 바울 통해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버린 것을 누가는 그 숨결까지도 배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었고, 거기에 최고의 교육으로 통해 학습된 문학적 소질과 수준 높은 헬라어 실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는데,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1, 2, 3차 전도여행 10여 년간, 최대 15,000km에 이르는 지역을 순회하며, 쉼 없이 복음을 증거하다, 투옥된 상태에서, 쇠약해진 육체와 안질로 시력이 급감했을 다시 펜을 들고,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읽기만 하여도, 우리의 사명을 상기케 하는 살아있는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요, 그 자리까지 동행한 누가의 조력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순교 후, 15여 년 간 복음을 증거 할 때, 가는 곳곳마다 성도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편지를 통해 누가의 헌신과 사랑을 교회들에 소개하였기 때문입니다(딤후4:11;4:14;1:24). 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의 보증이 누가에게는 그의 사역에서 큼 힘이 되었을 리는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74세까지 살면서,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비두니아에서 죽었다고도 하며, 혹자는 그리스에서 순교 당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유럽전도 중 바울()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18:1-2). 바울은 고린도에서 평생의 동역자인 아굴라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참고/16:3). 부부는 원래 로마에 거주하였는데요. 로마의 제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Claudius,AD41-54,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 예배를 허용하는 등 관용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로마에서 크레스토스그리스도 소동 곧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에 잦은 분쟁이 발생하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바울을 만나 합력하게 된 것입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28:3).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숨돌릴 틈 없는 선교 가운데도 천막을 만드는 업을 통해 선교 사역에 헌신을 함께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만난지 18개월 후, 바울의 동역자로 에베소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볼로를 만나게 됩니다(18:11,19,26). 아볼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 학자입니다(18:24.참고/9고전3:6). 훗날에 고린도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되었습니다(참고/고전1:12,3:4-6). 그러나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주의 도를 배워 언변과 구약에 능통하여,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18:25). 복음을 완전하게 알지 못한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의 전함을 듣고’, 예수를 바로 알려 주고자,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18:26). 온전한 복음으로 무장한 아볼로 아가야로 건너가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18:27). 에베소의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아가야에 있는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18:27). 아볼로가 아가야에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18:27).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18:28). 말씀으로 유대 사람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아볼로가 이렇게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만남이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만나기 전, 바울을 만나 훌륭한 헌신자가 되었습니다(18:2.참고/16:3).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자, 다시 로마로 건너가 로마 교회를 섬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16:3). 바울은 서신서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4:19). 자신들의 집을 거룩한 예배 처소로 드린 것입니다(참고/고전16:19). 그리고 마지막까지 헌신에 함께한 부부에게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16:4). 

 

결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과 만나는 것 중요합니다(참고/11:13,13:20,22:24).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도, 어떤 하나님의 사람과 만나느냐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만나면, 인생의 비전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만남은 재능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만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플러스, 강력한 시너지를 이룹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른 성도님이 만나고 싶은 성도님이 되고, 모든 성도님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내가 그와 만나고 싶은 성도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만남 축복이 우리의 만남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 안에서, 기도의 능력도 더하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 공동 기도제목에, 성도들 개인의 기도 제목에, 동역자들 중보 제목에, 함께 응답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의 만남 안에서, 함께 승리하는 역사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 안에서, 가정과 교회 국가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