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사도행전 교재

사도행전 교재 18 이재현목사 "만남의 축복"(행18:23-19:41)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2. 10. 23. 16:00

만남의 축복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18:23-19:41 

 

지난 주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를 방해하는 자들에게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며 떠났습니다(18:6.참고/10:14;6:11;9:5,10:11;13:14,50). 이제 믿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이고 나는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비난 거부 반발하는 자들과 충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복음을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입니다.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은 죽을 것이나, 악인을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일러서, 악한 길에게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18.참고/3:20). 그들의 사망을 바라보고, 죽음 이후 심판에 떨어지는 영혼이 되지 않도록 간절과 긍휼과 애탐으로 전해야 합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지옥도 있습니다. 천국은 허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지옥은 공상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성경은 실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참고/살후1:7-9;벧후2:4;20:15). 대적자들에게도 복음을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입니다. 

바울은 방해자들에게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 집을 예배 처서로 전도를 계속했고요(18:7).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18:8). 하나님은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고, 바울은 일 년 육 개월 말씀을 가르치기를 계속했습니다(18:9-11). 두 번째 가르침 복음을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갈리오 총독이 종교적 문제는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으로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18:12-15). 하나님은 복음을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를 순종하자, 이방 총독을 통해서도 지키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1, 2차 전도 여행 8,000 km 장정에서 영육간에 소진될 수 있었을 시점에 특별한 헌신을 다짐하는 나실인 서원을 드립니다(18:18.참고/6:1-21,30:2;13:5;삼상1:28;35:6; 1:15). 복음을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는 것이 어떤 것인 가를 보여 줍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데살로니가교회에 어려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때 편지를 통해 답을 주었습니다. 어떤 방법이라도 복음을 중단하지 말고 말하라 세 번째 가르침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당대에 재림을 믿었는데 한 두 사람 씩 죽음을 맞이하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바울은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영광을, 누구보다 사모했던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주님은 오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속히 오신다고 하신 것은(1:3,22:20). 어느 시대를 사는 성도이건 신랑을 맞이할 신부로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참고/25:1-13). 더디 온다고 생각하고, 세상일에 전념하거나 분주하지 말고, 항상 경성하여 기도하며, 성결한 생활, 열매 맺는 신앙을 강조한 것입니다(25:13,21,23,26). 마지막 때 배교의 물결이 휘몰아칠 것이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참고/21:8-19;살전5:3;살후2:1-3). 이 세 가지는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재림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그리고 오늘까지 오시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의문에 답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중단하지 말고 말하라에는 전도 대상자의 고민을 알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이 본격적인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 소개되고 인물은 누구이고, 그에 대하여 아는데로 설명하시오(18:23-28).

 

 

 

 

 

2.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만남을 통해, 이러한 능력있는 사역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남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 록된 만남 중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본문과 조명한 글을 일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 시오.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에게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2:11). 보아스는 룻의 효성과 신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2:12).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시모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의 효성과 신앙을 보고, 하나님의 보답과 보호와 온전한 상이 있을 것을 예견했던 보아스는 이미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외모를 보고 만나 사이도 아니요, 무슨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만난 사이도 아닙니다. 내가 예수 구원 받은 것과 같이, 내 옆에 있는 성도도 같은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만남이어야 합니다. 룻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보답과 보호와 상이 있을 것을 알았던 보아스와의 만남과 같아야 하겠습니다(참고/1:16). 전도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인도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초신자가 변화되고, 나약한 자가 당당한 자가 되고, 교회를 떠났던 자들이 돌아와 신앙을 회복하는 것 너무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룻은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어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초라한 신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룻은 밭에 떨어진 이삭과 같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룻을 유력자 이었던 보아스는 주목해 보았습니다(참고/2:1). 그리고 많은 헌신을 아끼지 않고 아내로 맞이 하였습니다(4:6-17).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룻의 효성과 신앙을 보고, 하나님의 보답과 보호와 상이 있을 것을 예견했습니다. 둘 사이에서 난 아들이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입니다(4:17). 이 계보에서 메시아 예수님이 오십니다(참고/1:5,16). 이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형상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만남입니다. 본문의 브리스길라와 아굴아와 아볼로 만남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소중한 것은 이와같이 말씀으로 세워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만남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 사람의 만남으로서, 말씀으로 세워주고, 능력 있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우리의 만남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바울과 에베소와는 어떤 스토리가 있습니까?(18:20-21,19:1)

 

 

 

 

 

4.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에서 다시 찾은 에베소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았느냐 묻자, ‘성 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것과, 세례도 요한의 세례만을 받있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19:1-3). 이에 바울이 증거한 말씀과 결과를 써보시오(19:4-10.참고/3:11). 

 

 

 

 

 

5.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상황과 적용에 대한 대한 글을 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라고 전하고 있습니다(19:11).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거더라고 하였습니다(19:12). 이를 본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사도 바울과 같이 흉내 내다가 오히려 악귀에 씌워 고통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19:14-15). 또한 에베소에는 점괘를 보는 마술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우리로 말하면 토정비결과 같은 책들을 다 모아 불살랐습니다(19:19). 그 값이 자그마치 은 오만에 달했습니다(19:19). 에베소는 당시 헬라 화폐 단위인 드라크마’Drachma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로마 화폐 단위 데나리온’Denarius와 같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장정 남자의 하루 품삯으로, 5만 여 명의 일당을 오늘로 환산해서 10만원으로 한다면 10, 15만원으로 한다면 15억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입니다. 그 금쪽같은 것들을 태워 버렸으니, 사도 바울을 통해 전해진 복음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19:20).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에서 에베소에 들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많은 형제들이 더 있기를 요청하였으나, 바울은 작별을 고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 첫 번째 도시로 에베소에 돌아와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다시 만남의 축복입니다. 앞서 만남의 축복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만나, 말씀으로 세워주고, 능력있는 전도자로 쓰임받는 우리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만남에도 이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짧은 역사이지만, 여러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축복합니다. 청아비전교회가 에베소교회가 되어서,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도 축복이요 다시 돌아온 분들에게도 축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두 번째 가르침 다시 만남의 축복입니다.

 

 

 

 

 

6. 다음 글을 읽고 세 번째 가르침 다른 만남의 축복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에베소에서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있을 때, 예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소동이 발생했습니다(19:23). 아데미 신전에 우상 물품을 공급하던 데메드리가 바울로 인해 생업에 차질을 빚자, 동종 영업자들과 세력을 규합하여, 시내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에 모여들었습니다(19:24-29).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인 자들이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이렇게 외치는 통에 무리들이 왜 모였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19:32). 이 소란함을 중지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라른 사람을)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였습니다(19:33). 그러나 그들은 알렉산더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였습니다(19:34). 연극장에 모인 군중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렇기 유대인인 알렉산더 말을 막고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무려 두 시간 동안 소리를 질렀습니다(참고/왕상18:26-28).

이 사태를 보고 받은 에베소 책임자인 서기장은 무리에게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당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면서, 아데미 신을 더 이상 외쳐 부르지 않도록 자제를 시키면서, 진정하고,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주의 하고, 가이와와 아르스다고가, 신당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않았고, 여신을 모독하지도 않았음에도, 끌고 왔다고 불법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를 걸어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재판정도 열려 있으니, 고소 하면 될 것이지, 이렇게 군중을 모아 벌이고 있는 행위는 크게 잘못된 것이고,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 하며, 모임을 해산시켜 버렸습니다(19:35-41). 예수의 도, 복음을 막고자 했던 행위는 자중지란으로 무너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세 번째 가르침 다른 만남의 축복입니다. 다른 만남이란 우리와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반대자를 통해서도, 성도를 보호하며,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주님을 증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 우리 가정,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만을 붙잡고 있다면, 어떤 사람, 단체, 권력에 위축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자들을 통해서라도, 적대자들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만남도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나 개인 우리 가정 교회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진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말씀으로 정진하고, 여건이 좋은 때를 기다리지 말고 기도로 정진하고, 주변이 바뀔 것을 바라지 말고 헌신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방해자들이 나타나도, 그 방해자들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까지 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와 다른 만남도 복이 되게 만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를 축복합니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만남의 축복입니다. 교회에서 외모를 보고, 하는 일을 보고도 아닌, 십자가 구원의 동질성을 보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하나님 사람의 만남으로서, 말씀으로 세워주고, 능력있는 전도로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② 다시 만남의 축복입니다. 교회 역사 가운데 함께 할 수 없었던 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옵소서. 청아비전교회가 에베소교회가 되어서,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에게도 축복이요 다시 돌아온 분들에게도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 

 

③ 다른 만남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성도를 보호하며,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주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진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말씀으로 정진하게 하옵소서. 여건이 좋은 때를 기다리지 말고 기도로 정진하게 하옵소서. 주변이 바뀔 것을 바라지 말고 헌신으로 정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