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삶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0:1-38
지난 주일 말씀 첫 번째 가르침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던 ‘아볼로’를 만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고, 아볼로는 ‘아가야’ 교회에 ‘은혜로 많은 유익을 주’었으며, ‘예수는 그리스도(왕)라고 증언하여 유대인의 말’을 물리치는 능력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18:23-28.참고/고전1:12,3:4-6). 누구를 만나는가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만남 중 보아스는 유력자였고, 룻은 그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여인이었습니다(룻2:1-6). 그럼에도 보아스는 룻의 신앙과 효성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보답과 보호와 온전한 상을 주실 것을 예견했습니다(룻2:11-12). 보아스는 ‘수혼법’嫂婚法에 따라, 친척인 죽은 엘리멜렉의 자부 룻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소유는 엘리메렉의 아들로 역시 죽음을 당한 말론과 기론의 것이 되었고, 룻의 시모 나오미까지 부양을 해야 했습니다(참고/룻4:6-8). 이것을 알면서도,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에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태어납니다(롯4:17). 이 계보에서 메시아 예수님이 오십니다(참고/마1:5,16). 이같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형상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만남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아볼로 만남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외모를 보고 만나 사이도 아니요, 무슨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만난 사이도 아닙니다.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다시 만남의 축복입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첫 번째 도시 에베소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계심도’ 모르고, ‘요한의 세례’만을 알자, 예수님의 ‘성령과 불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했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하는 거룩한 역사가 나타났고,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였습니다(19:4-10.참고/마3:11). 이를 방해하는 자들이 있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19:9-10). 이때 ‘하나님이 희한한 능을 행하시니,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19:11-12).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19:20).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에서 에베소에 들려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형제들이 더 있기를 요청하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하였고, 3차 전도 여행에서 다시 만남을 통해 이러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참고/18:19). 우리 교회에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분들이 다시 돌아와 함께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 다른 만남의 축복입니다. 바울의 전도로 에베소에 경이적인 역사와 함께 아데미 신전 우상 공급자들이 바울로 생계가 끊기자,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의 동역자들을 잡아 연극장에 모여서, 예수의 도, 복음 말살하려는 일 또한 있었습니다(19:23-41). 그러나 예수의 도道, 복음을 막고자 했던 이 집회는 자중지란으로 흩어졌습니다. 연극장에 모인 자들은 주의 제자들을 핍박한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대적자들로 모임 자체가 와해하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반대자를 통해서도, 성도를 보호하며,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주님을 증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 우리 가정,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만을 붙잡고 있다면 어떤 사람, 단체, 권력에 위축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다른 자들을 통해서, 그 적대자들을 무너뜨립니다. 다른 만남도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말씀으로 정진하고, 여건이 좋은 때를 기다리지 말고 기도로 정진하고, 주변이 바뀔 것을 바라지 말고 헌신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방해자들이 나타나도, 그 방해자들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까지 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바울은 마게도냐(그리스)에서 가서 2차 전도여행지를 방문 교회를 권면하고, 드로아(터 키)로와서 일주일간 머물며 강론할 때, 어떤 사건이 발생 했습니까?(7-12)
2. 바울은 드로아에서 떠나, 예루살렘에 간후, 최종 선교지인 로마에 가기 위해 급히 여정 을 이어갔습니다(14-16.참고/행19:21). 사역이 마지막이 다다른 시점에 바울은 ‘말레 도’에서 그 많은 도시에 세워진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했습니다(17).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참고/행19:11-41,20:36-38).
3.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나눈 고별 담화, 첫 번째는 겸손입니다. 읽고 서로의 의견 을 나누어 보시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는 지금까지 그의 사역 중 절정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재림 예수다”고 한마디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것에 겸손했습니다.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인데 하나님이 붙잡아 사용하셨다’고 하였습니다(엡3:7-8).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를 잡아 옥에 가두고 교회를 잔멸했던 자이었습니다(행:8:3). 그러한 자신을 친히 만나주신 주님 은혜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통해 아무리 큰 기적이 행해져도, 결과에 도취 되지 않고, 모든 겸손으로 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모든 겸손’으로 교회를 섬깁시다.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께 드린 헌신이 사람들 앞에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지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나에게 교회를 섬길 수 있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참고/잠16:18).
4. 두 번째는 “눈물”입니다.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눈물을 잊어버렸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섬기면서 얼마나 울었는가를 한번 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눈물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웃음 그 자체도 하나의 광대 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에도 눈물이 믿음의 본질로 인도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보입니다. 젖은 눈에 부활의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애통하는 심령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마5:4). 그렇기에 사도 바울도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면서, 큰 능력이 나타났어도, ‘눈물’로 사역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울어야 할 때, 함께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세 번째는 “경외”입니다.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도 바울은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들을 통한 시험이었습니다.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씀하며, 이단의 계략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시험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밝히고자하는 노력보다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입니다(19). 시험은 누구나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어떤 간계의 시험에도 참고 주를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경외입니다.
6. 네 번째는 “열정”입니다.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유익한 것’이란(20), ‘믿음을 증언한 것’(21) 즉 즉 복음을 일컫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공중 앞에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든, ‘각 집에서나’ 집 집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동족이던 외인이던 신분고하 남녀노소 식자무식자 부한자빈한자 누구에게든지 가리지 않고 전했다는 것입니다(20-21). 이것은 “열정”입니다. 그렇기에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만의 소리가 아니라 충성을 다한 후회 없는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 그리고 내 이웃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참고/22-23). 이러한 사도 바울의 복음 증거 열정으로 역사를 써나가기를 축복합니다.
7. 다섯 번째 “절제”입니다.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하였습니다(33). 지난날 같았으면 응당 내 것으로 취해야 할 순간 “아니지!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려야지”라며, 타인에게 기꺼이 베풀 수 있는 것. 내 유익을 타인의 유익으로 바꾸는 크리스천의 고귀한 절제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셨기 때문입니다(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눅6:38).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참고/갈6:2).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당연히 준다는 정신으로 하여야 합니다.
8.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고. 성산 장기려聖山 張起呂, 1911-1995 박사님은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을 산 분으로 불리는 신실한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안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최고 학부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부산아동병원 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부산대, 가톨릭대, 서울대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에 성공한 의술에 있어도, 당대 세계 최고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화려한 직함보다도, 그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간질 환자들의 모임인 ‘장미회’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협동조합 ‘청십자의료보험’ 창설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 수술을 못하는 환자들의 비용을 다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돈 없는 환자가 밤에 몰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병원 문을 열어놓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병원 옥상에 마련된 초라한 숙소에서 살았습니다.
그를 기리는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1909년 평북 옹천에서 태어나고, 1995년 서울에서 승천한 의학박사 장기려 그는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 장 박사님은 실력이면 실력, 영성이면 영성, 삶이면 삶,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겸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더 고귀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을 변함없이 사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산 장기려 장로님은 우리에게 크나큰 도전을 줍니다.
9.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은 큰 능력 앞에서도, 모든 겸손으로 눈물로, 동족의 간계의 시험에도 오직 주를 섬기는 경외로, 어느 곳 누구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열정으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절제로,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삶을 수년 동안은 인간의 힘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섬겼던 것, 기도한 것, 드린 것이 있나,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지난날 다짐한 사명을 잃어버리고 있었거나, 잊고 있었다면, 찾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깨우쳐주고 계시는 음성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면서, 자신의 걸어온 길 겸손, 눈물, 경외, 열정, 절제로 한결 같이 살아가기를 간곡히 권면했습니다.
① 사도 바울과 같이 성령에 매여 겸손, 눈물, 경외, 열정, 절제를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충만함을 주옵소서.
② 임종의 순간 “일생 동안 겸손, 눈물, 시험에도 주를 섬기는 경외,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열정, 이익을 버리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따라 행한 절제의 삶을 초지일관 살았다”고, 주의 형제와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게 하옵소서.
③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이 말씀대로 삶을 산 사람이라 칭함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받으시는 일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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