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1:1-36
지난 주일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나눈 고별 담화에 나타난 다섯 가지 가르침 첫 번째는 겸손입니다(행20:19).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절정이었습니다(참고/행19:11-15,20). 그때 “내가 재림 예수다”고 한마디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겸손했습니다.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인데 하나님이 붙잡아 사용하셨다’고 하였습니다(엡3:7-8).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를 잡아 옥에 가두고 교회를 잔멸했던 자이었습니다(행:8:3). 그러한 자신을 친히 만나주신 주님 은혜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겸손으로 행할 수 있었습니다(참고/잠16:18). 두 번째 “눈물”입니다(행20:19).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눈물을 잊어버렸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눈물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웃음도 광대 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에도 눈물이 믿음의 본질로 인도합니다. 애통하는 심령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믿음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그렇기에 바울도 ‘눈물’로 사역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울어야 할 때, 함께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경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들을 통한 시험이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제자들을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란, 시험을 경계하고 있습니다(행20:29-30참고/고전9:1-2,29:30). 그러나 바울은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입니다(행20:19). 시험은 누구나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고전10:13) 어떤 시험에도 참고 주를 섬길 수 있었것이 경외입니다. 네 번째는 “열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공중 앞에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든, ‘각 집에서나’ 집 집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동족이던 외인이던 신분고하 남녀노소 식자무식자 부한자빈한자 누구에게든지 가리지 않고 전했다는 것입니다(20-21). 이것은 열정입니다. 그렇기에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내가 꺼리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26-27). 오만이 아닙니다. 충성 다한 후회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성령에 매여’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22-23). 우리도 성령충만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절제”입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행20:33). 지난날 같았으면 내 것으로 취할 순간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려야지”라며, 타인에게 기꺼이 베풀 수 있는 것. 고귀한 절제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행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눅6:38).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참고/갈6:2). 주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당연히 준다는 정신으로 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상의 다섯가지가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삶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행20:18). 예수 믿은 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섬겼던 것, 기도한 것, 드린 것이 있나,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축복합니다.
1.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 집사의 집에 머물던 중 찾아 온 아 가보 선지자의 예언은 무엇입니까?(10-11.참고/행11:27-30)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의 띠로 자신의 수족을 묵으면서, 성령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유대인들에게 결박을 당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하였다(10-11.참고/행11:27-30).
2. 아가보 선지자의 ‘말을 듣고 (일행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였지 만, 바울의 취한 자세는 무엇이었습니까?(12-13.참고/행20:24).
‘바울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συνθρύπτοντές,낙담하게하느냐, 나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하였다(12-13.참고/행20:24). 두로의 제자들도 가이사랴에서 아가보와 바울의 일행이 반복하여 만류하여도, 바울의 주를 향한 의지를 꺽을 수 없었다(4).
3. 오른 말씀의 첫 번째 가르침 주를 향한 의지입니다. 본문과 같이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 이 가지 말 것을 애원할 때, 인간의 의지이면 꺾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향한 의지 이면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다니엘 기도회 둘째날 강사 김성제 선교사님은 선교사로 부름 받기 이전에 서울 변두리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당시 물질이 없어 고물상에 가서, 남들이 쓰다 버린 연탄불에 까맣게 타버린 장판을 구해다가, 월세로 얻은 지하에 예배당에 깔고, 개척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의 소명을 받아서는 파송교회도 없고, 후원자도 없는 가운데 필리핀 마닐라 외각 ‘뿔로 빈민촌'에 천막을 치고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없어 하천이 심각하게 오염된 데다, 더러운 하수구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악마의 섬'이라 불린 곳입니다. 게다가 갱들과 마약·폭력·살인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생사가 오고가는 위험한 지역입니다. 김 선교사님은 한꺼번에 찾아온 두 개의 암으로 큰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어린 생명들을 품고, 귀한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이름이 ‘예수님이 왕이신 동네'라고 명명될 정도이니, 김 선교사님이 얼마나 큰 희생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도 꺽을 수 없는 주를 향한 의지의 한 예라 하겠습니다. 그렇기 주님께서 결단하고 실행하고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김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큰 부끄러움과 함께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은 1998년 국내 목회 시절 물질이 없어 연탄가스에 시커멓게 타버린 장판을 얻어다가, 지하 예배당에 깔고, 개척 예배를 드렸고, 2006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 중 하나인 필리핀 마닐라 외각 빈민촌인 뿔로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는데요. 우리 교회는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 신도시 근린공원 벤치에서, 개척 예배를 드렸습니다. 2015년 선 월세를 주고, 아무 시설도 하지 못하고, 공실을 그대로 예배만 드리는 조건으로 임시처소를 얻었을 때, 쓰다 버린 파라솔 테이블과 의자를 어떤 분이 갔다가 주어서, 강단으로 꾸미고 비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때의 청아비전교회가 오늘까지 존속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더더욱 감사한 것은 외형적인 부흥은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아비전교회가 누구도 꺽을 수 없는 주를 향한 의지를 주님께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와 함께 한 성도님들에게 하늘의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주를 향한 의지를 분명히 합시다. 그러면 결단하고 실행하고 헌신할 수 있는 주님의 도움이 있을 줄 확신합니다.
4.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그동안 전도 여행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하 였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5-20). 그런데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이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20-22)
‘유대인 중에 믿는 자’가 ‘수만 명’인데 이들은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로,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며, 이제 그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을 알것이니,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20-22.참고/행9:20,13:5,1
4,39,43,14:1,15:5,17:1,17,18:13,19,26,19:8).
5.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강구했습니까?(22-23,26)
바울이 율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나실인 서원을 한 네 명이 이행을 위해 최소 30일 동안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시체와 같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아야 하며, 이발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한 기간이 마쳐지면, 이발하고, 제물과 잘라낸 머리카락을 제단 불에 올려 살라야 한다. 이때 나실인의 제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바울에게 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22-23.참고/민19:22). 이에 ‘바울이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였다(26). 이렇게 해서 율법주의자들의 오해를 불식하고자 하였다.
6. 바울의 행위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바울도 ‘서원’을 했었지만,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였습니다(행18:8). 율법의 서원을 신앙의 결단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인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라면, 유대인같이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고전9:19-20). 바울은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행하는 할례를 막을 필요는 없다고 하였습니다(참고/갈5:2-4). 그래서 유대인 전도를 위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행16:3). 할례와 같은 외적 표지가 주를 향한 중심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참고/신10:16;롬2:29). 그러므로 바울의 행위는 복음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유대인과 타협했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 두 번째 가르침 주를 향한 중심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핼로윈’Halloween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에 산 사람을 바치는 제의에 기원하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는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고, 성인들은 축제로 열리고 있습니다.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오지 선교사님이 원주민 의복을 입고, 그들의 절기에 참여한다고 동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향한 중심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매개이빈다. 우리도 지역에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진리, 복음, 예수이외의 것은 필요와 요청과 협력에 부응해야 합니다. 바울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섬겼’다고 했습니다(행23:1).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주를 향한 중심을 축복합니다.
7. 바울이 모든 규례를 마치고 난 후, 어떤 사태가 발생했습니까?(26-29).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폭동을) (일으켜) (결박했)’다(26-27). 이전에도 전도를 방해던 자들로 바울이 “우리 민족과 율법과 성전을 적대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방 헬라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거룩한 성전을 더럽혀 놓았다"고 했다(28.참고/행13:45,14:5,19,17:5,13,18:6,19:23). 과거에 에베소에서 이방 헬라인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것을 보고는 사실 관계도 학인하지 않고,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 더렵혔다고 생각한 것이다(28-29.참고/겔44:9;행20:4;딤후4:20).
8. 이 소동은 당시 예루살렘 성전 치안을 담당하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의 개입으로 일시 중단되었습니다(30-32.참고/행23:26). 천부장이 진상을 알고자 바울을 영내로 압 송할 때, 벌어진 사건과 그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33-36).
바울을 제거하지 못한 무리는 분한 마음에 “그를 없이하자” 소리치며 따라갔습니다(36). 이 외침은 27여 년 전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도 관정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하라고 소리쳤던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마27:23;막15:13;눅23:18;요19:13,15). 예수님은 인자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져 능욕하고 죽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9:22,18:31-33.참고/행4:27). 그리고 너희들도 나로 인하여 박해당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9:22,18:31-33,21:12). 이 예언이 바울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예수께 사명을 받고 달려가는 길은 중단할 수 없다”(12-13.참고/행20:24). 오늘 말씀의 세 번째 가르침 주를 향한 일념입니다.
다니엘 기도회 성회 셋째 날 강사 최인선 목사님은 삼대 초반에 부임한 교회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던 집사님 두 분이 음주운전 차량 사고로, 부목사님의 15개월 된 딸이 햄버거병에 걸려 신장이 손상으로, 친구이자 교회를 섬기던 집사님 아들이 급성 백혈병으로 하나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6개월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분의 아내는 장례식을 마친 후, 주일에 새신자 옆에 앉아 묵묵히 성경과 찬송을 찾아 드리며, 자기 직분을 감당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또 한 분은 아이들 돌보는 봉사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커서 목사가 되겠다며 목사 놀이를 하던 둘째 아들을 잃은 부부는 장례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어린이성경학교에 와서,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가질 수 없다가, 갖게 되었던 예쁘고 예쁜 딸을 주님 품에 보낸 부목사님은 목사님에게 “교육전도사로 처음 와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고, 목사가 되었고, 소중한 아이를 안을 수 있었고, 천국에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주를 향한 일념입니다. 주를 향한 의지, 주를 향한 중심, 주를 향한 일념으로 나아갈 때,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는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9. 다음 제목으로 우리 다같이 기도합시다.
①사도 바울은 자신을 아끼는 이들이 결박과 환난을 당할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두 번이나 만류했을 때, 인간의 의지이었다면, 꺾였겠지만, 주를 향한 의지였기에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주를 향한 의지를 분명하게 하옵소서. 결단하고 실행하고 헌신할 수 있는 주님의 도움을 주님의 도움을 주옵소서.
②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 믿는 자 수만 명을 바른 신앙을 위해 율법의 규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향한 중심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전도를 위해 절대적 진리외에 그들의 필요와 요청과 협력에 부응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것을 감당할 영권과 물권과 인권을 주옵소서. 주를 향한 중심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③ “내가 예수께 사명을 받고 달려가는 길은 중단할 수 없다” 주를 향한 일념을 갖게 하옵소서. 모든 잃어도 믿음은 잃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일 위에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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