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렘넌트Remnant"(창 7:17-23) 이재현목사(23.05.21)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5. 21. 16:39

렘넌트Remnant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창세기7:1723 2023.05.21. 主日禮拜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7:17-23)

 

 

창세기 5에는 4장에서 가인과 그 후손들의 세상적인 성공을 장황하게 기록한 것과 달리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가인이 장자인데도 말입니다. 반면 4장에서 짧게 언급되어 있는 셋, 아담과 그의 아들 셋을 통해 내려오는 후손들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속의 문화’, ‘세상의 성공이 아닌, ‘예배의 문화’, ‘신앙의 승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가인의 후손 야발을 통해 성별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축은 자라면 잡아 피를 흘려야 목적을 이룹니다. 인간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가축을 잡아 피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야발은 조상 가인과 같이 자신을 위해서는 짐승을 잡았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룩한 제사의 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는 부유한 자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인색한 자였습니다(참고/12:20). 우리는 성별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닙니다. 성경은 십일조와 봉헌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3:8).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3:9.참고/14:20,28:22;27:30-33;18:21-24;12:5-18,14:23:27-29,26:12-15).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그중의 십 분의 일을 드리면 모든 것을 드린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였습니다(참고/대상19:14;3:10-12;고후9:6-7).

 

십일조는 구약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2:42-45;4:32-37) 신약에서는 예수 믿고 영생 얻은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 전부를 드렸습니다. 십일조로 교회를 운영하고 교육과 선교를 하고 소외된는 분들이 없도록 나눔으로 성경적인 초대교회의 거룩한 헌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배척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녀가 중요하다면 인재와 공간과 교재등 교육에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에 인색한 것은 아직도 내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다른 분들이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가 유지되겠지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렇게 다들 생각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을 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분들이 다수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은혜받으면 즐거이 자원해서 한다고 합니다. 초신자가 아니라 20년 신앙생활을 한 분이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그 시간 동안 은혜를 받지 못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할까 생각해 봅니다. 신앙의 영역에 은혜와 감동과 기쁨만이 있습니까?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부은 마리아의 애통이 있었습니다(12:3). 허리가 휠 정도도 가난한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과부의 헌신이 있습니다(12:44). 주님의 사역을 위해 자기들의 소유로 섬긴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8:1-3). 그럼에도 신앙의 영역에서 은혜와 감동과 기쁨 만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라는 우상, 미신, 무속의 신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 애통과 헌신과 희생을 드릴 때, 우리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고, 비로서 하나님의 신앙 안에서, 진정한 은혜와 감동과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책임과 권리가 있습니다. 의견은 많은데 예물은 없다는 것은 권리만 내세우고 책임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처럼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내가 말씀을 받는 제단에 물질을 드릴 때, 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6:21.참고/3:10). 그렇지 않으면 마당만 밟는 자, 교회 다니는 사람 수준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참고/1:12). 우리는 백 가지 말보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성별하여 드리기를 소망하고 교훈하며 축복합니다. 물질은 항상 부족합니다. 수입이 있으면 바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지출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일들로 금전에 손해를 볼 때 중보를 하다보면 십일조를 결단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에게만 쌓고 하나님에게는 가난한 에덴의 동쪽에서 사는 가인과 그의 후손의 가치와 정신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하나님의 것을 성별하여 성경의 정신과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의 정신과 가치로 셋과 그의 후손들의 족보인 아담의 계보에 올려야 되고, 그것이 저 천국 생명책에 녹명 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21:27.참고/20:15).

 

그렇다면 생명책에 녹명된 자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 번째 아담을 통해 찾아보았지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가장 큰 복인 것을 알 때,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인입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삶에는 감사, 얼굴에 기쁨, 행동에 활기, 대화에 소망, 가벼운 발걸음을 갖게 되고, 이를 자연인들이 그 연유를 물을 때, “당신도 예수 믿어그 짧은 한 마디가 자연인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라는 고백과 실천이 곧 능력인 것입니다.

 

아담의 계보를 통해 생명책에 녹명된 자이어야 함을 확신하며, 두 번째로 우리는 에녹을 통해 찾아보았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그러나 에녹이 죽음을 당하지 않고, 승천한 모습을 볼 때, 그는 하나님과만 동행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그 외 다른 것들과 아직도 함께 동행 합니다. 육신의 정욕 소유욕의 유혹입니다. 안목의 정욕 쾌락욕의 유혹입니다. 이생의 자랑 과시욕의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요일2:16). 단호히 배척해야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의 계보를 통해 생명책에 녹명된 자이어야 함을 확신하며, 세 번째로 우리는 노아를 통해 찾아보았던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 받은 이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것 위로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분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흘린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당한 아픔을 싸매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국어 정의로 위로입니다. 신앙 행위로 위로입니다. 우리에게 육적으로 영적으로 필요한 위로입니다. 그러나 이 위로가 전부이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위로는 심판입니다. 최종 심판은 예수님 재림입니다. 그 때 악인이 심판을 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치열하게 믿음을 지킨 것이 옳은 것이었음을 목도할 것입니다. 이것만큼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금 삶에서 겪는 아픔의 위로만 아니라, 그들이 심판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킴으로 종말에 악인의 심판을 보고, 자신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는 것, 진정한 위로를 받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담의 계보에서 생명책으로, 아담의 계보에서 생명책으로 녹명되어야 함을 확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행할 일입니다. 아담의 계보에서 생명책으로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2023년 가정주일에 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지난 세 주 동안 가인과 아벨 그리고 아벨 죽음 후 아벨 대신 주신 셋, 가인과 셋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후 세상 적으론 큰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창세기 4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 주신 셋과 그의 후손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아주 짧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가인과 그의 후손과 같이 세속 문화를 발전시킨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셋과 그의 후손과 같이 예배 문화를 승화시킨 신앙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세상의 성공이 신앙인에게는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세상의 성공에서도 하나님이 첫째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신과 가치를 가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자기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던 가인과 그의 후손의 정신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성공을 자신들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도 사는 곳이 에덴의 동쪽입니다. 우리는 에덴의 동쪽에 있는 사람들을 속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되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창세기 5장에는 반전을 보게 되는데요. 세상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창세가 4장에는 세세하게 기록되었는데요. 창세기 5장 아담의 계보에 그들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셋과 그의 후손들만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의 아담의 계보는 곧 천국의 생명책의 녹명을 알게합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 같이 세상에서 부유와 명예와 권좌를 누렸다고 할지라도,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인 셋과 그의 후손과 같이, 아담의 계보에 이름이 올려 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책에 녹명되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에 입성해야 합니다. 지난 삼주 간의 설교를 간단히 요약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는 가인과 그의 후손 그리고 셋과 그의 후손들 각각이 번성한 후 등장하고 있습니다.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1-2).

 

하나님의 아들들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셋과 그의 후손들을 말씀합니다.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면서, 세상의 성공만이 전부인 에덴의 동쪽에 사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정신과 가치를 갖고 사는 이들이 통혼通婚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 아름다음에 매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6:2).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란 중혼을 말합니다. ‘모든 여자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원하는 데로 한 명이든 10명이던 아내로 취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혼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지난 주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경 최초의 중혼자는 라멕입니다. 그는 가인의 오대손입니다. 즉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정신과 가치가, 성경의 정신과 가치를 가져야 할 셋과 그의 후손들에게 전염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람들도 중혼을 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도 중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첫 번째 중혼자가 가인의 후손 라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라멕을 보고 우리도 중혼해도 되는 구나 하고 따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중동 근대의 문화가 됩니다. 그 문화가 형성되고 이것이 관습이 되고 조례가 된 것입니다. 그 문화 안에서 아브라함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성경에 반하는 문화를 만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결혼에 관해서만 언급되었습니다만, 이 사실 하나를 놓고 볼 때, 셋과 그의 후손들의 생활 전체에서,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정신과 가치가 만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의 결단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말씀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5-6).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을 한 것은 결혼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외 삶의 전 영역에서 인간들의 죄악이 하늘까지 찬 것입니다(참고/2:5;18:5).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하셨다고 하셨습니다(6:8).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6:11-12).

이러한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은 결단하셨습니다. 어떤 결단을 하셨습니까?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6:7). 하나님은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친 인간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다 쓸어버리리라고 심판을 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6:17).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7:22).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라고 하였습니다(7:23).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코로 호흡하는 것은 모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당시 대홍수가 얼마나 큰 심판인지를 알게 합니다.

 

대홍수 기간 40일 주야로 비가 쏟아졌는데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라고 말씀합니다(7:11). 우리가 생각하는 비만 내린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하늘의 궁창이 다 쏟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의 궁창즉 하늘에 강이 있었습니다(1:7). 이 강들이 지구 밖으로부터, 오는 방사선 등 인간에 유해한 것들을 막아주고, 지구 안에서, 발생하는 오염들을 없게 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홍수 이전 인간의 수명이 1천 년 가까이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강들인 물층이 깨져 땅으로 쏟아진 것입니다. ‘큰 깊음의 샘들 땅 속의 지하수들도, 타 터져 땅위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이렇게 40일 주야로 쏟아지고, 솟구치고, 온 세상이 잠기고, 110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하였습니다. 이런 중에 코로 호흡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 택함 받은 자

 

대홍수로 사람들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코로 호흡하는 것은 모두 죽임을 당할 때,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세 자부입니다. 이 가족들이 대홍수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노아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께 택함 받은 것에 대하여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

 

이 말씀에 그러나라는 접속 부사가 있습니다. 이 말씀 앞 구절은 지금까지 설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하고, 인간의 모든 생각이 악하고, 세상의 죄가 가득하고, 한탄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려고, 심판을 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가운데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라고 하였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조금 더 유심히 보면,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이 먼저 나오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가 다음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순서적으로 보았을 때, 노아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보기보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에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택함 받은 자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악에 동참해 세상에 죄가 가득할 때, 노아는 성별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노아 때보다 선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던지 아니면 그보다 더하다는데, 우리 모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죄악된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갖도록 해주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택함 받은 자입니다. 택함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는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고 말씀합니다(7:17-23.참고/26:36;24:19;10:20;31:7). ‘남았더라남은 자와 같은 뜻입니다. 엄밀히 구분하면 택함 받은 자는 구원받은 전체 성도를 일컫는 것이고요, 남은 자는 구원 받은 자 가운데 그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 세우신 자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남은 자’, ‘렘넌트’Remnant입니다. 성경에는 남은 자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 산재되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10:22).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11:5).

 

렘넌트, 남은자는 소수의 구원받은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소수의 의로운 자들을 남겨 두시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이들의 구원에 목적이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의로운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참고/6:5-8;2;14:29-30;왕상19:18;10:20-22;2:12-13;9:27). 오늘 본문의 노아와 그의 가족이 그렇고, 저와 여러분이 렘넌트 남은자가 되어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이 세상에 신앙인의 본을 보이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창세기 대홍수 당시 노아가 가졌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말입니다.

 

남은 자

 

의인

 

성경이 말씀하는 의인은 명료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과 같이 의인은 누구인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요, 즉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요. 현대교회의 성도님들은 무엇으로 삽니까? 성도들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당면하는 요소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주제들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미국 제45대 대통령 트럼프Donald J. Trump,1946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마이크 펜스Mike Pence,1959가 한국 개신교 방송과 대표적 기독교 기업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 연설했습니다(22.3.22). 그 전날에는 그 모임을 주최한 목사님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 만남을 갖기도 했고, 다음 날에는 국내 5대 교회 중 하나로 꼽히는 교회에서 자신의 신앙을 간증했습니다(22.3.26). 펜스는 신앙적 바탕 위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진솔하게 밝히며 아울러 정치인으로 부여된 사명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달 전 펜스는 통일교 주최 한반도 평화서밋(월드서밋) 대회에 연설자로 섰습니다(22.2.11). 정치인으로서 그의 행보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서밋의 공동 조직위원장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가 맡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영상으로 기조연설을 했고요.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비롯하여, 하퍼 전 캐나다 수상,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수상, 짐 로저스 회장, 하라다 전 일본 환경부장관, 바로소 전 EU 집행위원장,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마키살 아프리카연합 의장 등이 연설자로 나셨습니다. 우리나라 지자체 단체장 대부분이 참석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통일교 대회에서는 기독교·불교·이슬람교·유교·성공회·천도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종교지도자 14명의 초종교합수식이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 폴라 화이트Paula M. White-Cain,1966- 목사가 개신교 대표로 평화 기원을 담당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서 복음주의자문위원장을 맡았던 화이트는 여성 목회자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에 개회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화이트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님 십자가를 구속이 아닌, 재정적 어려움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비성경적인 번영 신학 전파자입니다. 한 신학자는 화이트를 사기꾼이며, 모든 정통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에 한 개회사는 그녀의 이단성을 주요 공직에 소개한 계기가 되었다, 강도 높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최대교회로 불리는 모 교회가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창립 60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와 주일예배에 설교자로 화이트 목사를 초청했습니다(2018.5.18.,20). 또한 통일교 주최 대회에 참석한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보수 신앙을 근간으로 세워진 대형 교회에서 간증자로 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귀신처소와 기성교회를 왕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18:2).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매체와 기업과 교회에서 강사로 펜스를 꼭 세워야 했는가? 그의 연설에 통일교와 정통교회에서 동일하게 호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다원주의(배교의 길)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들은 교회입니다. 어떤 칭찬을 들었나요?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2:19).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출중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앞서 언급된 교회는 교회 사역은 물론, 병원, 학원,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또 어마어마한 금액을 책정하여,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각종 세미나 등을 개최 많은 목사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교회를 보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두아디라 교회가가 보입니다.

 

그런데요. 두아디라교회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지만, 주님으로부터 크게 책망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2:20).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출중했지만, 뒤로는 이세벨을 용납했습니다. 이세벨은 구약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아합 왕의 아내로 왕비입니다, 그녀는 친정인 두로왕 엣바엘의 딸입니다.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에게 시집 올 때,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들여오고, 그 선지자들을 대동하여, 북이스라엘 전역을 우상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 종교다원주의를 용납했다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 말고, 다른 신들도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시대로 은혜시대, 성령시대이기에 어떤 죄악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 받습니다. 그러나 이세벨, 종교다원주의, 예수님 말고도, 구원자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끝입니다. 구약 이세벨이 남편인 아합 왕을 꼬드겨, 북이스라엘 전역을 바알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신앙 말살 정책 때 바알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가 있었습니다(왕상19:18). 이들이 남은 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만이 구원자입니다. 우리는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남은 7천명과 같이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상을 배격하고,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뜻을 함께하는 동역자들과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를 설립 내일부터 모레까지 개최되는 제6회 공개세미나가 바로 그러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와 봉사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에 외적으로 보여지는 어떤 문제 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보다가는 진리가 앞서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앞서게 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여러 문제가 불거져서, 사람들이 그 교회가 진리를 따르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도덕으로 흠이 없는가는 봅니다. 결국에는 목사의 인격과 성도의 성품을 봅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의 인격과 성품이 훌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믿음 그리고 도덕과 인격의 관계 기억하고 계세요. ① 신앙을 논할 때 도덕이 앞서서면 안 되고, 성도를 논할 때 인격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② 신앙을 지칭할 때 진리가 우선되어야 하고, 성도를 지칭할 때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③ 신앙이 도덕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는 인격을 배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④ 도덕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인격이 구원의 자격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의 자격이기 때문입니다. ⑤ 신앙의 진리에는 도덕이 따르고, 성도의 믿음에는 인격이 따르는 것이지, 도덕과 인격이 진리와 믿음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멘!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7:1). 노아의 의로움은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시대 바른 분별과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당대의 완전한 자

 

남은 자의 신앙은 노아와 같이 첫 번째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요, 두 번째는 당대에 완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소수의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자를 세웠는데, 그들이 남은 자입니다. 이 남은 자는 당대의 완전한 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무슨 수를 써도, 완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당대의 완전한 자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의 인도함을 받은 자가 육십만 삼천오백 명입니다(2:32). 이 수치는 12지파 중 레위 지파를 제외한 11지파에서, 남자 20세 이상을 계수한 수치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 등을 포함하면 2백만에서 4백만까지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이 성인 남자 603,500명 중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으로 입성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 12지파에서, 1명씩 12명을 선발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은 40일 가나안을 두루 살폈습니다. 돌아온 이들의 보고는 10:2로 갈리었습니다. 10명은 과일도 많고, 좋은 땅 이지만, 그 땅의 모든 백성이 신장이 장대하다고 하였습니다. 아낙 자손의 거인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메뚜기 갖다고 하였습니다(13:31-33). 성도 여러분이 이 보고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나세요. 가나안 땅에 있는 한 두 명 거인들 보고, 모두가 거인과 같다고, 과장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 열 명의 정탐꾼은 악평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13:32). 악평이란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나쁜 내용 부정적인 의견들을 더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열 명과 다른 보고를 하였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13:30). 그럼에도 이스라엘 배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밤새 통곡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되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던지,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았을 것을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죽어야 하냐며, 원망했습니다(14:1-3).

 

이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외쳤습니다(14:6).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14:7-9).

 

여호수아와 갈렙의 요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은 아름다운 곳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가나안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며,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보호자는 떠났지만, 이스라엘의 보호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열 명의 정탐꾼은 악평을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호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14:30).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장년 603,500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고, 다른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요. 그들이 앞서 무엇이라고 했다고요. “가나안 땅에 가서, 가나안 족속에게 죽느니,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겠다고 한 그대로 광야에서 1세대 603,498명은 죽고, 2명 만 살아 남은 것입니다.

 

이 살아 남은 자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고요. 갈렙은 40세에 가나안에 입성 85세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거인인 아낙 자손의 정복하는 일생을 믿음의 용사로 살았습니다(14:13-15).

 

누가 당대의 완전한 자인가, 남은 자는 당대의 완전한 자이어야 합니다. 당대의 완전한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본 바를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는 인간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그 만난 하나님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이 완전한 자입니다. 화려한 미사구와 형용사를 동원하고, 매끄럽게 다듬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투박하지만, 신앙 안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전할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완전한 자입니다. 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씀했습니다(6:22). 그리고 방주를 완성한 120년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7:5). 노아는 완전한신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하고, 120년 전후 동일하게 준행했고, 그에게 하나님은 대홍수에서 남은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갈렙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14:8).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면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나안 땅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취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나안 백성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나안 백성을 우리가 이기도록 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에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고자, 한 약속을 확신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할 때, 역사와 기적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응답받으신 것 있으세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 있으세요. 그대로 확신하고, 고백으로 시인하세요. “그렇게 속 썩여, 길가다가 넘어져라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속으로 고백 했네요. 5분 후 119 싸이렌스 소리 나요. ! 나겠어요. 집 나서서 회사 가던 남편이 넘어져서 코가 깨졌어요. 이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상당합니다. 이런 확신하고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고 하였습니다(3:5). 사람의 혀가 그 사람 전체를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3:10). 지난 주 설교에서 전혀 생각지 않은 일들로 금전에 손해를 보고, 자주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상하고,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갖가지 문제가 생기고,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 중보를 하는데요. 십일조를 결단하지 못해서 그렇게 물질들이 세어나가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별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120년 전후가 똑같았던 노아와 같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도, 지금 드리지 않을 것이라도, 이루어짐을 확신하고, 드릴 것을 확신하고, 고백으로 시인하고, 행하는 자가, 각 시대마다 쓰시는 당대의 완전한 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은 자의 신앙은 나아와 같이 첫 번째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요, 두 번째는 완전하신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전하는 당대에 완전한 자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이 동행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다른 것들과 동행하려는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2:16). 육신의 정욕 소유욕의 유혹입니다. 안목의 정욕 쾌락욕의 유혹입니다. 이생의 자랑 과시욕의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단호히 배척해야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리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본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셋과 그의 후손들을 말씀합니다(6:2).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면서, 세상의 성공만이 전부인 에덴의 동쪽에 사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을 말씀합니다(6:1). 전혀 다른 정신과 가치를 갖고 사는 이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 아름다음에 매료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6:2). 마음에 원하는 데로 한 명이든 10명이던 아내로 취하는 통혼과 중혼을 한 것입니다. 성경의 정신과 가치를 가져야 할 셋과 그의 후손들이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정신과 가치에 오염이 된 것입니다.

 

심판의 결단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6:5).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을 한 것은 결혼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외 삶의 전 영역에서 인간들의 죄악이 하늘까지 찬 것입니다.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하셨다고 하셨습니다(6:6.참고/6:11-12). 하나님은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친 인간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그리하리라 하셨고요(6:7).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땅과 함께 그들을 멸하리라’,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가득하다,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라고 하셨습니다(6:13,17).

 

그리고 본문에는 그 결과에 대해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코로 호흡하는 것은 모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7:22-23). 당시 대홍수가 얼마나 큰 심판인지를 알게 합니다. 대홍수 기간 하늘에서 비만 내린 것이 아니고요. 땅 속의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하늘의 궁창인 물층도 깨져 쏟아진 것입니다(7:11.참고/1:7). 주야로 40일 동안 이렇게 하늘의 강들이 깨져 땅으로 쏟아지고, 지하수들도 타 터져 땅위로 솟구쳐 오르고, 온 세상이 잠기고 110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하였습니다. 이런 중에 코로 호흡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 택함 받은 자

 

대홍수로 모두 죽임을 당했을 때 살아남을 이들이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 그러나 대홍수 심판에서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습니다(6:9). 그렇다면 노아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이기에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라,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에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택함 받은 자로 모든 사람들이 악에 동참해 세상에 죄가 가득할 때, 성별된 것입니다.

 

지금은 노아 때보다 더 악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갖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입니다. 택함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 대해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7:17-23.참고/26:36;24:19;10:20;31:7). ‘남았더라남은 자와 택함 받은 자를 세밀하게 택함 받은 자는 구원받은 전체 성도를 일컫는 것이고요, 남은 자는 구원 받은 자 가운데 그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 세우신 자입니다. ‘남은 자렘넌트’Remnant에 대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10:22).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11:5)고 하였습니다.

 

렘넌트, 남은자는 소수의 구원받은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소수의 의로운 자들을 남겨 두시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이들의 구원에 목적이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의로운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참고/6:5-8;2;14:29-30;왕상19:18;10:20-22;2:12-13;9:27). 본문의 노아와 그의 가족이 그렇고, 우리가 렘넌트 남은자입니다.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이 세상에 신앙인의 본을 보이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창세기 대홍수 당시 노아가 가졌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말입니다.

 

남은 자

 

의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의인은 누구인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트럼프Donald J. Trump,1946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마이크 펜스Mike Pence,1959가 개신교 방송과 기업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 연설했습니다(22.3.22). 그리고 다음 날에는 국내 5대 교회 중 한 교회에서 신앙을 간증했습니다(22.3.26). 그런데 한달 전 펜스는 통일교 주최 한반도 평화서밋(월드서밋) 대회에 연설자로 섰습니다(22.2.11). 이 대회에서는 기독교·불교·이슬람교·유교·성공회·천도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종교지도자 14명의 초종교합수식이 있었는데요. 화이트Paula M. White-Cain,1966- 목사가 개신교 대표로 평화 기원을 담당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서 복음주의자문위원장을 맡았던 화이트는 여성 목회자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에 개회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화이트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님 십자가를 구속이 아닌, 재정적 어려움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비성경적인 번영 신학 전파자입니다.

 

그런데 세계최대교회로 불리는 모 교회가 창립 60주년 기념 기도회와 주일예배에 설교자로 화이트 목사를 초청했습니다(2018.5.18.,20). 또한 통일교 주최 대회에 참석한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보수 신앙을 근간으로 세워진 대형 교회에서 간증자로 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귀신처소와 기성교회를 왕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18:2).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매체와 기업과 교회에서 강사로 그를 꼭 세워야 했는가? 그의 연설에 통일교와 정통교회에서 동일하게 호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다원주의(배교의 길)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출중했습니다(2:19). 앞서 언급된 교회는 병원, 학원,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어마어마한 금액을 책정하여,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각종 세미나 등을 개최 많은 목사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교회를 보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두아디라 교회가 보입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뒤로 이세벨을 용납했습니다(2:20).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시집 올 때, 고향 두로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들여오고, 그 선지자들을 대동하여, 북이스라엘 전역을 우상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 종교다원주의를 용납했다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 말고, 다른 신들도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시대로 은혜시대, 성령시대이기에 어떤 죄악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이세벨, 종교다원주의, 예수님 말고도, 구원자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끝입니다.

 

구약 이세벨이 남편인 아합 왕을 꼬드겨, 북이스라엘 전역을 바알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신앙 말살 정책 때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가 있었습니다(왕상19:18). 이들이 남은 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만이 구원자입니다. 우리는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남은 7천명과 같이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상을 배격하고,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뜻을 함께하는 동역자들과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를 설립 내일부터 모레까지 개최되는 제6회 공개세미나가 바로 그러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7:1). 노아의 의로움은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시대 바른 분별과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당대의 완전한 자. 노아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당대의 완전한 자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의 인도함을 받은 장정이 육십만 삼천오백 명입니다(2:32). 그런데 가나안으로 입성한 사람은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뿐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입성하기 전 정탐 보고로 인함입니다. 12지파에서, 1명씩 12명을 선발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은 40일 두루 살핀 후, 보고 내용이 10:2로 갈리었습니다. 10명은 우리가 정복할 땅이 아니라고 악평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자 (대적을) 능히 이기리라고 하였습니다(13:30-33). 그러면 이스라엘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열 명의 말을 듣고 차라리 애굽에서 죽던지,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았을 것을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죽어야 하냐며 원망했습니다(14:1-3).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은 아름다운 곳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가나안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며,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의 보호자는 떠났지만, 이스라엘의 보호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참고/14:6;14:7-9). 이 둘은 호평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14:30). 이스라엘 장년 603,500명 가운데 차라리 광야에서 죽겠다고 한 603,498명은 말 그대로 죽었습니다. 살아 남은 자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고요. 갈렙은 40세에 가나안에 입성 85세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거인인 아낙 자손의 정복하는 일생을 믿음의 용사로 살았습니다(14:13-15). 당대의 완전한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본 바를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는 인간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자입니다. 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고, 완성한 120년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6:22,7:5). 노아는 완전한신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하고, 120년 전후 동일하게 준행했고, 그에게 하나님은 대홍수에서 남은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갈렙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14:8).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면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할 때, 역사와 기적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사람의 혀가 그 사람 전체를 좌우한다고 하였습니다(3:5).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3:10). 120년 전후가 똑같았던 노아와 같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도, 지금 드리지 않을 것이라도, 이루어짐을 확신하고, 드릴 것을 확신하고, 고백으로 시인하고, 행하는 자가, 각 시대마다 쓰시는 당대의 완전한 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남은 자의 신앙 세 번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지난주에도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다른 것들과 동행하려는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2:16). 육신의 정욕 소유욕의 유혹입니다. 안목의 정욕 쾌락욕의 유혹입니다. 이생의 자랑 과시욕의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단호히 배척해야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종 정리

 

셋과 그의 후손들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가인과 그의 후손들인 사람의 딸들이 통혼으로 죄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악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지으신 것을 한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심판을 결단 하셨습니다. 무려 사십일 밤낮으로 하늘의 창문이 열려 하늘의 강들이 쏟아져 내리고, 땅의 깊음 샘인 지하수들이 터져, 땅위로 솟구치고, 110일 동안 온 세상에 물이 창일했습니다. 사람과 가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들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악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노아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를 볼 때, 노아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하며,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의인이고 당대와 완전한자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홍수의 심판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택함 받은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 또한 노아 시대보다, 더 패악한 시대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택함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택함 받음에 대하여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7:23). ‘남았더라이는 남은 자를 말합니다. 렘넌트, 남은 자 말입니다. 남은 자는 소수의 구원 받은 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소수의 의로운 자를 구원에 목적이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의로운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창세기 대홍수 당시 노아가 가졌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말입니다.

 

1. 남은 자는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어떤 물의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그것이 회개하면 용서받을 죄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기에 윤리가 먼저 보이고, 도덕이 먼저 보이지만, 진리보다 윤리가 앞서면 안 되고, 믿음보다 도덕이 앞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외에 구원자가 있다고, 말하는 종교다원주의 자들 가운데, 인격이 고매한 분들 있습니다.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교회가 이 문제 저 문제로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성품이 훌륭한 목회자와 평신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이 향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따르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른 분별로 신앙을 시켜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남은 자는 당대에 완전한 자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완전을 지향할 수는 있으나,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을 전할 때, 각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확신하고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에 쓰는 완전한 자입니다. 하님께서 응답하신 것 있으세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 있으세요. 그대로 확신하고 고백으로 시인하세요. 120년 전과 후 변함없었던 노아와 같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도, 지금 드리지 않을 것이라도, 이루어짐을 확신하고, 드릴 것을 확신하고, 고백으로 시인하는 자가, 각 시대마다 쓰시는 당대의 완전한 자입니다.

 

3. 남은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과 동행입니까?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소유욕의 유혹입니다. 안목의 정욕 쾌락욕의 유혹입니다. 이생의 자랑 과시욕의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단호히 배척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 시대의 대홍수 물 심판에 대하여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벧후3:6). 그리고 이어 마지막 불 심판에 대하여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벧후3:7). 우리는 이 마지막 불 심판에서도, 오늘 본문에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고 한 남은 자에 반드시 속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와 여러분이 렘넌트, 남은 자가 되어, 창세기 대홍수 당시 노아가 가졌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말입니다. 다같이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본문에 대입하여 읽겠습니다. “이재현과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가족들만 남았더라아멘! 다시 한번요. “이재현과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가족들만 남았더라아멘! 그리고 재 대입해서 다신 한 번 더요. “이재현과 그와 함께 청아비전교회 공동체에 있던 가족들 그리고 중보하는 영혼들만 남았더라이 남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들과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분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부부의 날 우리 성도님 모든 가정의 부부에게 이 은혜를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과 그의 후손들이 가인과 그의 후손의 가치와 정신을 따르는 사람의 딸들과 통혼하고 중혼했습니다. 세상에 매료되어 세상의 가치와 정신에 오염되지 않게 하옵소서. 성경의 정신과 가치를 가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첫심판이 대홍수로 세상을 멸절했고, 마지막 심판인 불심판이르기 전 렘런트 남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 복음 증거를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남은자로 복음을 증거하고, 이 세상에 신앙인의 본을 보이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자,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 바른 분별과 신앙으로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예수만을 믿는 의인의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아합시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을 우리 교회에 보내주옵소서.

 

하나님 은혜로 남은자, 완전한 자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할 때 완전한 자입니다. 노아와 같이 홍수 이전에도 이후에도 명령을 준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남은자,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입니다.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