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예언
하나님말씀 : 창세기 9:18-27
1. 다음 ‘예언’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포도나무를 재배했고, 음료로 만든 포도주에 노아가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고 하였습니다(창9:20-21). 둘째 아들인 함이 노아의 침소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보게 됩니다. 함은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상황을 전합니다(창9:22).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아버지 방에 들어갑니다. 조용히 잠든 아버지의 하체를 덮은 후, 얼굴을 돌이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창9:23).
그런데 노아는 술이 깬 후 함이 한 행한 일을 알고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셈에게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될 것이라, 야벳에게는 ‘하나님이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창9:25-27). 이것이 노아가 술이 덜 깨어 주정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의 말 그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술에 취한 것은 바르지 않은 일이지만, 그 후 그의 행동은 사실 비난 받을 일이 없습니다. 내실에 있었고 거기에 옷을 벗었습니다. 그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둘째 아들의 태도입니다. 형제에게 ‘알렸다’는 말이 아버지를 가리도록 해 달라는 것인지, 허물을 들추는 알림이었는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후의 모든 상황을 볼 때, 후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함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말하거나, 아내들에게 말하기보다, 벗은 아버지를 옷으로 가리며 수습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 행동들을 나중에 안 노아는 함에게는 저주를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했습니다. 노아의 실언이었나요. 아닙니다. 함이 취한 행동을 보고, 함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들임을 알고 예언한 것입니다. 노아가 함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에게 징계를 내린 것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이 취한 행동을 보고, 노아가 축복한 것도 예언입니다. 두 아들이 기특해서 아니라 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축복한 것입니다. 노아는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2. 다음 ‘저주와 축복’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함의 후손. 함은 ‘검다’는 뜻으로 아프라키 애굽 등지에 거주하게 됩니다(창10:6-20). 그의 후손인 가나안 자손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입성할 때 가로막아 섰다가, 여호수아 시대 비천한 종으로 전락하였고, 솔로몬 때 완전히 정복당하게 됩니다(수9:23;왕상9:20,21). 현대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 함의 자손들은 셈족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에게 참혹하게 지배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야벳의 후손. 야벳은 ‘하나님이 넓게 하신다’는 뜻대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야벳은 고멜 등의 아들을 두었는데요(창10:2.참고/창10:5). 코카서스 인종으로 ‘앵글로색슨’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 서구 세력들로 오늘까지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셈을 통해 성경과 구주가 전해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한 것이 야벳의 자손들입니다. 셈의 후손. 셈 ‘이름 있는’ 뜻으로 종교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셈의 자손들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창10:22). 예수님도 어디서 오셨어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족보를 따르신 혈통은 셈족이십니다. 이 가운데 어느 길을 따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습니다. 이렇게 노아의 말 그대로 되었다는 것은 노아가 취중 실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이었음을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3. 노아의 저주와 축복의 교훈 첫 번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 견을 나누어 보시오.
오늘날 노아와 같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인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이시고 그분께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응답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까? 설교와 공부를 통해 듣고 배운 성경대로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인생의 기점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점에서 말씀으로 출발한 인생 기차가, 정차하는 역마다, 응답이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마지막 종착역 천국까지 말입니다.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딤후3:16-17). 목사는 ‘목사와 교사’ ‘Pastors and Teachers'로 목사가 성도를 가리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합니다(엡3:11-12). 하나님께서 성경과 목사를 주신 목적이 동일합니다. 그것은 목사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는 말씀이기에 목사이지, 다른 것을 들면 목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 목사가 깊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정성껏 작문하고, 간절히 선포하는 설교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진지하게 경청하고, 심령에 반추하여, 행함으로 옮기를 축복합니다.
4. 두 번째 ‘말씀에 인내해야 한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노아가 함에게 저주를 했는데 곧바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의 자손으로 대표되는 가나안족속은 앉아서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 야곱과 일가 친척이 애굽에서 내려오자 그들이 아브라함때부터 살던 가나안은 임자 없는 땅이 되었고, 그 땅에 거저 들어간 시돈, 헷, 여부스, 아무리, 기르가스, 히위, 알가, 신, 아르왓, 스말, 하맛 족속이 모두 가나안의 자손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430년 간 무상으로 가나안 땅에서 자기들 이득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가나안을 정복, 가나안 족속들을 차례로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서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고, 체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고,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고, 심지 아니한 과목을 얻어 배불리 먹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0-11). 이것은 가나안 족속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것을 찬탈했나요? 아닙니다. 430년 동안 가나안 족속들이 무상으로 가졌던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함을 저주했는데요. 그 저주가 이른 때가 함의 후손 때입니다. 대략 1000년이 지난 후입니다.
인내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우리 편인 것입니다. 결론이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는데, 악인들이 지금도 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 누리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노아가 함에게 저주를 한 후, 함의 자손 때, 그들의 죄가 찼을 때, 멸절되었던 것같이, 불의의 번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때가 이르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열심히 쌓아 놓으라고 하세요. 다 하나님의 백성의 것이 될 터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인내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4. 세 번째 ‘말씀에 은혜를 알아야 한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노아의 아들들인데 함은 저주 받고, 셈과 야벳은 축복 받았는가?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말입니다. 4,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아의 함에 대한 저주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하나님 예언이지만 너무 큰 고통을 당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습니다(롬9:13). 여기에 무슨 이유가 있나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 한 사람은 사랑하고 한 사람은 미워했다고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9:14). 하나님 원하심에 따라 어떤 이는 ‘긍휼’로 어떤 이는 인간 본성 그대로 ‘완악’하게 내버려 주신다는 것입니다(롬9:18). 대표적인 인물이 애굽의 바로입니다. 끝까지 이스라엘을 놓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자를 통해서 자신의 일을 모세를 보내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도 불만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세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도 귀히 쓸 그릇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토기장이에게 시비할 수 없는 것이지요(롬9:20-2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저 사람은 택하고, 이 사람은 택하지 않았습니까? 반문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내가 택함 받았음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고, 완악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대 홍수 노아와 그의 가족이 살아남은 것은 의인 당대의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의인 당대의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하여 심판에 남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함은 저주를 받아, 그의 자손 대대로 고통 받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아, 그의 자손 대대로 형통하는가에, 우리는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권능자 주권자 창조자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내가 택함 받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오늘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은 야벳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탄생한 셈의 자손보다, 야벳의 자손이 높은 것인가요? 야벳은 창대한 복을 받았지만, 셈의 장막에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셈족으로부터 성경과 구주를 듣고, 세계 복음화를 이룬 자들이 야벳입니다. 그 표현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야벳의 창대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쓰이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세계 1위의 선교 대국이 미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미국도 셈의 장막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야벳의 자손도, 함의 후손도, 셈의 후손도, 모두 ‘원 웨이’One Way, 한 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고, 셈의 장막으로 예표되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야벳에게 주신 세상의 창대를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셈에게 주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가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창대는 여호와를 찬송하는 사명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오버랩’Overlap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가인과 그의 후손의 저주를 함과 그의 자손들이 받고요, 셋과 그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가, 셈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고요. 세상의 성공에서, 다른 것이 있다면, 가인와 그의 후손은 세상의 성공을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했지만, 야벳과 그의 후손들은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에 물질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는 영적인 셈족으로 창대함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는 영적인 야벳의 복 또한 받아야 합니다.
노아는 셈, 함, 야벳의 아버지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집안 가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게합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남편이 나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때, 그 기준이 세상적이 아니라, 정말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남편이 믿음의 아들이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승리의 아버지 승리의 남편 승리의 아들이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축복의 아버지 축복의 남편 축복의 아들이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달 5월 마지막 주일을 드리면 이 은혜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노아는 함이 취한 행동을 보고, 그와 후손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들임을 알고 예언했습니다. 노아는 셈과 야벳을 보고, 그와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들임을 알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인 말씀 온전히 신뢰하게 하옵소서.
② 노아의 저주와 축복의 교훈.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성경과 목사를 주셨습니다. 말씀에 경청하고 반추하고 행하게 하옵소서.
③ 노아의 저주와 축복의 교훈. 말씀에 인내해야 합니다. 노아의 함 저주는 1000년이 지나서 나타났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의 결론은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때까지 인내하게 하옵소서.
④ 노아의 저주와 축복의 교훈. 말씀에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왜 누구는 택하고 택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내가 택함 받았음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지혜자가 되게 하옵소서.
⑤ 우리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는 영적인 셈족입니다. 노아의 입을 통해 운명이 결정된 세 아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의 가장이 정말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남편이 믿음의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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