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가?
하나님말씀 : 누가복음 7:11-17
1. 다음 ‘죽음의 노예가 된 인간’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김상화 목사님은 원래 스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사기를 당해 수형 생활 중 교도관이 준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불경에도 나오는 과부의 죽은 외아들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석가는 죽음을 난지 어떻게 하리요 하고 했지만, 예수님은 청년을 살린 것입니다. “그렇다 석가는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나셨다. 석가에겐 무덤이 있지만, 예수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레서 승려의 법복을 벗고 목사의 가운을 입고 불자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사망이 왕 노릇’이라고 하였습니다(롬5:12,17). 이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아도 죽음이 우리 모두를 차별하지 않고 끌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것도, 자녀들을 옆에 두고도 "이 자녀들이 잘못돼서 혹 일찍 죽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는 것도, 병원에 가서 암으로 혹은 치명적인 어떤 병으로 한 생명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볼 때, “나도 갑자기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우리가 다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삶을 벗어나서 죽음과는 관계없는 좀 새로운 어떤 삶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우리가 한번씩은 다 하게 됩니다. 인생이 ‘속히 가니’ 새와 ‘날아가아니다’고 하셨습니다(시90:10). 살아갈수록 자꾸 시간은 더 빨리 가고, 이상하게 인생에 대해 허무를 느끼게 되고, 뭔가 아쉬워져서 한번쯤 몸부림을 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입니다.
2. 다음 ‘영생은 무엇인가?’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 혹은 ‘구원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영생을 선물로 주신 길은 하나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요일5:11). 인간의 노력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달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이 말씀에는 영생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나옵니다. 먼저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의 또 다른 의미는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25:34).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 다음 ‘영생의 세 가지 뜻’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첫째 영생은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원수로 그분께 나아갈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살아나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관계가 화목되었습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또 맡길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둘째 영생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악령의 세계에서 해방된다’는 말입니다. 불신자들은 잘 때도 동서남북을 가려서 자야 된다 등 수 백가지도 넘는 제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령의 지배를 받고 죽음의 지배를 받는 데서 해방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영생, 즉 구원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는 순간부터 죽음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옮겨지고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악령이 손들고 다 도망갑니다. 예수 믿으면 이런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셋째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정말 있습니다. 날마다 그 나라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좋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우크라-러시아 전쟁 등 불확실한 시대에 어떤 사람은 그저 그날그날 사는 게 제일이라고 하면서 흥청망청 살다가 죽을 때 죽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14:13). 예수 믿고 죽는 사람만큼 복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 다시는 곡하는 것도 없고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곳인 그 나라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계21:4).
4. 다음 ‘믿음’의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엡2:8).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행16:31).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집안 식구들도 예수님을 예수님을 믿게 되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은 믿는 것은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믿음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믿게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내가 “믿겠습니다.”하고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받고도 꿈쩍도 하지 않던 사람이 밤에 침대에 누었는데도 잠이 안 와서 뒤척뒤척 할 때, 낮에 예수 믿으라고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사납게 대해서 돌려보낸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리면서, ‘예수님이 누굴까?’ 하고 자꾸 생각이 납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 마음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꾸 마음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구원해주시려고 믿으라고 할 때 안 믿었을까?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이 완고할까? 명문학교 나온 것이 하나님나라와 바꿀 만한 것일까? 좋은 직업으로 돈 많이 번다는 것이 영원한 영생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가? 머리가 좋다는 것이 하나님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으라고 도와주려고 하는데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믿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믿음은 나의 온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막연히 긍정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믿음을 ‘사랑’과 많이 비교합니다.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려면 그 속에 무엇이 담겨야 합니까? 마음이 담겨야죠. 마음은 자기 인격의 전부입니다. 나의 전부가 담겨야 합니다. 이것처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나를 온통 그분에게 준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다면 세상에서 그분밖에는 내 마음을 바칠 분이 없습니다.
네 번째 믿음은 고백입니다. 믿음은 고백에서부터 증거가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10:10).
다섯 번째 믿음은 믿음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것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진실로 믿으면 자연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믿음은 순종하는데서 성장합니다. 한번 예수님께서 마음을 온통 바치고 나면 예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5. 다음 ‘영생받은 자에게 주시는 풍성한 복’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첫째는 죄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롬 5:1). 완전히 의롭다는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만큼 깨끗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죄 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순전히 나를 대신해서 죄 값을 지불해 준 예수님을 보시고 나의 죄를 무조건 없는 것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참고/시103:10,12;사43:25).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앞으로는 끝까지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식이 되었다는 말은 끝까지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보장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하지 말라는데도 아들이 자꾸 하면 가금씩 부모가 화가 나서 때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호적에서 뽑아내고 좇아내지는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2/참고/히12:9).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참고/갈4:6). 하나님에게는 독생 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데, 어느 정도로 지키시느냐 하면, 악한 자, 악령, 마귀,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강하게 지키십니다. 사랑이 있는 아버지가 자녀를 안 지키겠습니까? 사랑이 많은 어머니가 얼마나 자녀를 걱정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6.25 전쟁 피난 길에 애를 업고 나온다는 게 베개를 없고 나온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사랑도 사실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얼마나 자식을 보호하려고 애를 씁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 다음에야 얼마나 잘 보호해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이 평안합니다. 걱정 근심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걸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6.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지금 예수님 믿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어쩌면 다시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듣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의 아무도 오늘 오후의 일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영생을 소유하여 장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이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마음을 여세요. 그리고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 시간부터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인 것을 믿고 내 마음 전부를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는 진실한 고백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자신을 예수님께 완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시는 영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새로운 인생을 결단하고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내가 아무리 젊어도 내 인생을 내가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합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마귀의 역사는 물러갑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던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상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상 우리를 감히 해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① 죽음의 문제는 지금 해결 받아야 합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안 염려 근심 걱정 비관은 사망의 왕 마귀가 죽음으로 공격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한 길 예수님만 믿게 하옵소서.
② 예수 믿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영생을 누리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믿음은 믿는 것을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온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 주님을 구조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믿음의 첫째가 듣는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주일 성수 예배 생활을 통해 말씀 듣는 것을 사수하게 하옵소서.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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