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 천년설

첫째부활(1) | 개혁주의 전 천년설 핵심주제(2-1) | 이재현목사 | 파루시아 아카데미 | 개혁주의 전 천년설(11)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4. 3. 28. 12:54

첫째부활(1)

 

 

Ⅰ 서론

 

요한계시록 205-6절의 첫째부활1)을 사람가운데 첫 번째 부활자라고 했을 때, 매우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이 구절을 해석하는데 대부분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든 성도의 부활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당연히 여겨온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첫째부활은 첫 번째 부활로 보아야지, 전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204절에 첫째 부활이 누구인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보좌에 앉아있는 두 부류가 첫째 부활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나는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누가 보아도 순교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 가장 큰 논쟁거리이다. 이 말씀을 요약해보면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 표(666)를 받지 않은 자들이다. 먼저 이 본문은 시기적으로는 7년 환난이 시작된 이후로 보아야 한다. 짐승 즉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대상은 당시까지 생존한 성도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아서라는 단어에 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에제산’ἔζησαν이다. 부활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살아있던 모든 성도들이 부활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 기간에 죽었다가 부활한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에 대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였다(11:3). 7년 환난 중 전 3 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폭로하고 성도들을 무장시켜 예비처 보호를 받도록 이끌어낼 두 증인인 것이다. 이들은 그 후 적그리스도에 의해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11:7). 그 유해가 온 세계에 걸쳐 널려져 있다가 삼일 후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하게 된다(11:11,12). 이것이 바로 첫째부활자인 것이다. ‘두 증인’, ‘144000’, ‘첫째부활자는 동일 존재라는 사실은 이 후 연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로서 첫째부활자들에 대한 결론은 분명해진다. 7년 환난 이전의 순교자들과 이 후 전 3년 반 1260일 동안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한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런데 무천년주의자들은 중생으로 역사적 전 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204절을 신자들로 해석하고, 5,6절에 기록된 첫째 부활에 대해 모든 성도의 부활로 단정해 버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 악인이 부활하여 흰 보좌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첫째부활자를 제외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동시에 있을 사건이지 별개로 나타날 것이 아니다. 추후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둘 사이에 시간 차이를 두고 부활한다는 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 시점에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영혼들이 살아났다면 그것은 부활이다. 더욱이 일반 성도들의 영혼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라면 순교자들이 틀림이 없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왜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려하지 않고 어떤 특별한 단어가 나왔을 때,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고 드는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이제 본론에서 첫째부활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성경적 논지를 기술하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성경의 증언

 

요한계시록 205-6절에만 첫째부활자가 기록되었지만, 이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성경 전체에 나타난 동일한 계시들을 연결하여야 한다. 스가랴 145절 재림시 주와 함께 임할 모든 거룩한 자들이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린도전서 1523그에게 속한 자’, 그리고 유다서 114수만의 거룩한 자, 이들이 바로 종말의 사명자들인 십사만 사천’(7:4), 두 증인이요(11:3), 예수님 재림 때 함께 임할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자들로서(17:14), ‘하늘에 있는 군대(19:14),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자라는데 까지(20:6), 성경 전체에 나타난 첫째 부활의 맥을 연결하여 한 문장으로 완성할 때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1) 고린도전서 1523-24- ‘속한 자

 

① 사람 가운데 첫 번째 부활자

 

성경에 부활은 다같은 부활이지만 분명히 순서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하였다(고전15:23-24).

 

부활의 첫 열매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모든 자는 그와 같이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이 모두 한 시점에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차례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이 두 번째 부활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 다음으로 두 번째 이지만 사람가운데는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예수 재림시 함께 이 세상에 오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속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첫째부활자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가장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고린도전서 1523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에서, ‘속한 자와 데살로니가전서 416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에 대한 것이다.

 

② 고린도전서 1523- ‘속한 자

 

속한 자를 개역성경에서는 붙은 자라고 번역하였다. 이에 대한 원문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속한 자라는 뜻으로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본문만을 놓고 따진다면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첫째부활자도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한 구절뿐만 아니라 스가랴 145절부터 고린도전서 1523, 유다서 114절 그리고 요한계시록 1112, 1714, 1914절이 모두 한 맥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맥들을 묶어 하나의 해석으로 내린 것이 첫째 부활자요. 그러한 해석이 문장적해석2)이요. 이 해석을 통해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속한 자를 모든 성도로 해석한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가 함께 임한다는 말인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답변이 곤란하다고 그리스도의 강림을 상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또 성도의 휴거를 속한자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사변을 내세워서도 안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예수 재림할 때, 함께 임하는 성도들을 환난 전 휴거한 성도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세대주의 견해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이 된다.

 

③ 데살로니가전서 416-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두 번째로 데살로니가전서 416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는 전통적으로 예수 재림하실 때, 그 이전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이 모습을 상상하여 무덤을 열고 재림하시는 예수를 맞이하는 성화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속한 자에 대한 해석을 연계하여 답할 수 있다. 첫째부활자도 먼저 죽은자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역시 이 한 구절을 보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속한 자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동일한 계시가 나타난 성경 전체 구절들을 종합해서 볼 때, 죽은 자들 중 먼저 일어난 자는 첫째부활자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 말씀은 모든 죽은 자들을 포함한 것이 아니고 그 중에서 일부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부활한 첫째부활자는 7년 환난 이전의 순교자들이다. 요한계시록 204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인 것이다. 이들은 제단아래서 하나님께 피 값의 신원을 호소했던 환난 전 순교 성도들이다(6:9-10). 그 다음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첫째부활자 가운데 두 번째 부류이다. 이들은 7년 환난 중 전 3년 반에 활동 후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가 이들의 부활시점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그 수가 차기까지라고 하신 충원되어야 할 순교자들이다(6:11).

 

이들이 바로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인 것이다(‘두 선지자’, 11:3,7-11). 두 증인인 144000은 전 3년 반 예언의 사역 후 짐승에 의해 순교한다. 그리고 삼일 반 후 부활승천 하여 시온산에 가 있게 된다(14:1). 이곳에 있다가 주 재림 때에 부활하는 환난 전 전 순교자들과 함께 하늘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오게 된다(19:14, 두 증인과 144000의 관계는 다음 연구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이 두 부류는 같은 첫째부활자들이지만 이들의 순교의 시기가 다른 것처럼 이들의 부활의 시점도 다른 것이다.

 

④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 부활

 

한 가지 더 명심해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기록 목적의 차이이다. 성경에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관련 성구 모두를 한 해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중요 포인트Point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한 교훈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고린도교회 내에 있었던 여러 문제 중 부활에 관한 논란에 사도 바울이 명확히 답을 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1절부터 부활에 관한 기록의 연속으로 20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가장 첫 번째 부활한 것을 명시하고 있다.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그 다음에 성도들의 부활이 있는데 23절에 차례대로 되리니라고 하였다. 부활의 본질이 성도마다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똑같은 부활인데 부활에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23절에 강림이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고 이 본문을 강림 또는 재림에 대한 주제로 혼돈하면 안 된다. 부활을 설명하던 중 연관되어지는 예수님 재림을 언급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재림이 핵심이 아니다. 포커스Focus는 부활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3)

고린도전서 1550-52절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도 부활에 관한 기록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활의 시점이 어느 때를 두고 말하느냐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50절의 하나님 나라가 어느 곳을 묘사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견해를 갖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천국으로 보는 것이 자명하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혈과 육을 가지고 갈 수 없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는 반드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시점이 예수님 재림 때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때요. 주제는 여전히 부활에 관한 것이다.

⑤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주제 재림

 

반면에 데살로니가전서를 해석할 때는 전체 구성이 재림 신앙 즉 살아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고자 갈망하는 성도들을 위해 쓰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10, 219, 313, 415, 523절 등 전체가 강림 즉 예수의 재림에 관한 주제로 가득 기록되어 있다. 그 재림 주제 중의 주제 핵심이 417절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이다. 살아생전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고자 하는 영광을 누구보다 사모했던 데살로니가교인들을 위해 쓰인 것이다. 18절에는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다. 재림의 소망으로 당시 교회를 파하려는 세력들의 핍박을 이기라는 것이다. 16절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을 대부분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예수님 재림시 죽었던 성도들의 부활로 해석한다. 그것이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한바 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데에는 데살로니가전서 기록 목적이 부활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을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데살로니가전서는 중심이 부활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재림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부활은 상대적으로 적게 축소되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예수님 재림시 성도들의 부활에 관점을 두고 해석 하게 되면 포인트Point가 벗어나게 된다. 부활에 관한 계시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아야한다.

 

성경 한 구절을 바르게 분별하려면, 그 구절을 항상 그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문맥(Contex)이란 본문’(Tex)과 함께’(CON) 간다는 뜻입니다. 문맥이 언제나 해석을 좌우합니다. 저자의 기록 목적을 파악하면 어느 한 구절의 문맥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자가 기술하는 내용은 자신의 기록 목적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4)

 

그러므로 부활을 해석할 때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재림을 해석할 때는 데살로니가서 4장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일 저자인 사도 바울이 고린도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이 다르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24절에는 첫째부활자를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천년왕국 후에 부활한다고 기록하고, 데살로니가전서 416절에는 예수 재림시 부활한다고 기록할 리가 있겠는가? 성경을 그와 같이 모순되게 기록했다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상이한 것이 아니라 서신 중심 주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중심 주제 외의 기록들은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언급되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살짝 터치Touch하듯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중심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2) 요한계시록 1914- ‘하늘 군대

 

요한계시록 19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는 예수님 재림에 관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때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다. 14절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하였다. ‘하늘 군대와 함께 오신다고 하였다(‘The Armies Which Were in Heaven’(KJV)). 하늘 군대를 누구로 해석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흔히들 천사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하늘 군대란 표현과 유사한 구절들이 많은데 그것을 천사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32:1;왕상22:19;왕하6:17).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왕하19:35;삼하24:16;5:15;10:13;26:53). 그러나 이상에 열거된 천사란 표현과 심판은 예수 재림 때 심판자와 심판의 의미는 동일하지만, Class과 대상Target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마겟돈에서의 적그리스도의 심판은 순교자들의 피 값에 대한 보응이다(6:11).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이 심판을 담당하는 자들이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3) 스가랴 145- ‘모든 거룩한 자

 

이러한 체계 아래서 스가랴 145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모든 거룩한 자도 동일한 계시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스가랴 145절을 구약에 기록된 예수 재림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자들이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 때 함께 임할 모든 거룩한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원문에 천사로 기록했으면 그대로 천사로 번역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번역본의 한글 및 영어 성경 등을 보면 상대적으로 천사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도로 번역하고 있는 성경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KJV‘All The Saints With’이 그렇고 킹제임스흠정역성경도 성도로 번역하고 있다.

 

(4) 유다서 114- ‘수만의 거룩한 자

 

유다서 114절에도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수만의 거룩한 자는 누구인가? 이 역시도 스가랴 145절과 같이 천사로 번역하고 있는 성경이 많다. 그러나 현대인성경은 성도로 번역하고 있다. KJV‘Ten Thousands of His Saints’JB‘His Saints in Their Tens of Thousands’로 번역하고 있고, 킹제임스흠정역성경도 수만의 성도로 번역하고 있다.

 

(5) 요한계시록 1714-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요한계시록 1714절에도 동일한 계시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고 하였다. 이 말씀에 어린양이 그들(짐승과 그를 따르는 세상 임금과 그의 군대들)을 이기실 것이요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대역사의 순간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이들에 대해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144 ,5“4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와 한 계시이다. 이 말씀은 144000에 대한 자격을 기록한 것으로 바로 첫째부활자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 중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는 주의 깊게 보라. 이것은 사람 가운데 첫 번째 부활 자를 뜻한다. 요한계시록 204절의 첫째부활자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尾註>

 

1) 논문의 제한 상 첫째부활에 대한 연구를 많은 분량으로 기재할 수 없다. 첫째부활은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종말계시이다. 이재현, 『징조는 픽션보다 참혹했다』,「첫째부활」,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 pp317-368. 본서 「첫째부활」, 민병석. 『종말론시리즈(3) 첫째부활의 비밀』. 서울:도서출판 신생. 2006.을참조하라.

 

2)문장적해석에 관해서는 『징조는 픽션보다 참혹 했다』,「영적해석과 상징적해석의 폐해」,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 pp218-253. 이재현,『이어쓰는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문장적해석」 도서출판 헤이스, 2017.8.1.pp127-148.를 참조하라.

 

3) 민병석 목사는 이에 대하여 부분계시전체계시라는 용어로 구분하고 있다(민병석, 『개혁주의 전 천년설』, 도서출판 신생, 2016.9.19. p33.).

 

4) 『프리셉트성경』. 프리셉트성경 편찬위원회. 편찬책임 김경섭. 도서출판 프리셉트. 2009.4.12. p.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