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영광
하나님말씀 : 요한계시록 1:9-20
요한은 사도 중 유일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핍박자들은 요한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던져 넣었지만, 그곳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요한은 이미 그때에 이미 순교자로 인정받았다. 계시록 등장하는 순교자들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다(20:4). 요한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다고 했다(9). 이것이 요한이 순교자가 된 분명한 이유가 된다. 우리도 일생 동안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순교의 반열에 이를 수 있음을 도전주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이처럼 순교적인 사명을 이루게 하셨지만, 육신적인 생명을 거두시지 않으셨던 이유가 있다. 요한을 통해 이룬 일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주 재림, 종말에 관한 계시를 받는 것이다(1). 요한은 밧모섬에서 다른 요일이 아닌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10). ‘주의 날’의 약칭이 ‘주일’이다. 우리가 한 주의 시작인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의 마지막 권 계시록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이 시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주의 날’의 중요성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고, 예수 안에서 한 형제들로 교회 지체의 역할과 예수의 영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1. 다음 ‘주의 날’(The Lord's Day)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10).
① 성경에서 한 주의 첫 날을 ‘주의 날’로 유일하게 기록되었다.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 라, 안식 후 다음 날이다(참고/마28:1;막16:2;눅24:1;요20:1,19).
② 유대인들은 금일 저녁부터 익일 저녁까지를 하루로 한다(레23:32). 유대인들의 ‘안식 일’은 금요일 저녁부터로 우리에게 토요일부터 ‘안식일’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안식 후 다음 날이란 ‘주일’이 된다.
③ ‘주의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다(막16:1.참고/막15:42).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 어 있던 중에도 ‘주의 날’을 성별,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④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행20:7), ‘그 주간의 첫 날’이란 안 식 후 첫날인 주일을 말하며, ‘떡을’ 뗐다는 말은 성만찬을 가리킨다. 초대교인들은 이 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행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 게 하라”(고전16:2). 헌금을 뜻한다. ‘매주 첫 날’ 주일에 예배드림에 대한 증언이다.
2. 다음은 ‘주일’과 ‘안식일’에 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억인가?
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안식’의 ‘그림자’인 ‘율법의 안식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하나님의 안식’을 알아야 했다(창2:1-3;레23:24-25).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을 영 접하고, 주님이 주는 ‘참 안식’ ‘하나님의 안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 을 배척했으며,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단자로 규정 율법적으로 정조하는 악을 행했 다(요5:16-18.참고/마12:2,10;막2:24,3:4;눅6:2,7,13:14;요5:10,7:22,9:16).
② 예수님은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지상) 성소’에 올려진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땅은 짐승의 제물로 (지상) 성소에 ‘피를 흘림’으로 ‘사함’을 입었 으나, 예수님은 곧 ‘바로 그 하늘’의 성소에 드려짐으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히 9:22-24). 그러므로 율법 중에 있는 ‘안식일’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더 이상 구약의 제사나 안식일은 필요치 않다(참고/마5:17;히7:26-27;9:11-14).
③ 예수님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 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골2:14-15). 이 승리는 ‘십자가’ 로 ‘법조문으로 쓴 증서’로 나오는 모든 율법적 규제를 폐기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법조문’에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린 내용에는 ‘안식일’도 들어가 있다(골2:16).
이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거역하는 일이며, ‘그림자’ 즉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비非 신앙적인 행위로 바울에 의하여 다른 복음’으로 정죄 받 고 있다(골2:17;갈1:9). 성경을 오해하면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요8:45;요일2:21).
④ 예수님을 믿을 때, 이 땅에서 모든 수고를 마치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된다(히4:9-10.참고/계14:13). ‘안식일’이 ‘주의 날’로 대체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영원히 폐해졌다. ‘주의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이 십자가와 부활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성수’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성도들은 지금도 ‘주일예배’ 안에서 영적인 ‘참 안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별도의 ‘안식일’이 필요치 않다. 우리의 안식이 되시며, 안식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날, 그의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로 정하고, 그 분을 섬기고 있다. 요한은 ‘주의 날’을 구별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1:1). 주일 성수를 철저히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3. 다음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9).
① 요한이 ‘형제’라고 지칭한 대상은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킬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
② ‘형제’로 부른 이유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고, 성도는 예수님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 이다(골1:18;엡1:22-23,5:30).
③ 성도들은 지체들과 서로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예수의 몸으로 자라가야 한다(엡4:16.참고/롬12:5;고전12:12;엡4:4,12,16).
④ 예수님도 우리들을 형제라고 불렀다(마25:40;히2:11).
⑤ 모든 지체는 그 몸의 원활한 활동을 이루기 위해 존속한다. 한 지체가 죽으면, 그 지체 는 그 몸에 이로운 존재가 아니라, 해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는 그 지체 대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참고/고전10:22-24).
지체의 사명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요15:5.참고/롬12:5;고전12:12;엡4:4,6,12,16;약2:17). 지체의 사명은 빛을 나타내야 한다(출25:31-32;민8:2;마5:14,16). 지체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이다(마24:14,28:18-20;막1:15;눅16:16;행1:3,8;엡2:20-22).
4. 다음 ‘형제의 자격’에 대한 설명을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9).
①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자’이다. 형제는 함께 예수님을 위해 고난의 짐을 져야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한다(롬8:17.참고/갈6:8).
② ‘예수의 나라에 동참하는 자’이다. 예수의 나라 종국은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 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계11:15). 재림 주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세우실 에덴의 회 복인 천년왕국으로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 못한 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창1:28;고전15:24). 예수의 나라에 동참하는 자는 각 사람에게 예수를 전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예수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골1:28).
③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이다. 기한이 차야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다. 혼자 힘들 때 형제는 같이 인내할 수 있게 한다(히10:36;벧후3:9). 주님께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였다(벧후3:9).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 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④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은 곧 교회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 는 것이다. 예수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이다(롬12:5;고전12:12;엡4:4,6,12,16). 예수의 환 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지체가, 열매, 빛, 하나님 나라의 지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5. 사도 요한이 ‘일곱 금 촛대’를 보았을 때, 그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다 니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13). 이 분은 예수님이다. 인자 되신 예수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신다(2:1). 예수님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교회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지금 도 변함없이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엡3:10-11;5:23). 예수님이 교회들을 향한 명령을 복종할 때, 참된 교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다음 예수님의 영광에 대한 설명으로 바 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①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다(13). 장차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영광 은 만왕의 왕으로 왕복을 입고 오실 것이다.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 다(14).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낸 낸다. 성도들은 회개와 승리의 ‘흰옷’을 입어야 한다(7:4,9.참고/3:18).
② ‘눈은 불꽃 같’다고 했다(14). 예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대하 16:9;시101:6,104:35).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15). ‘주석’이란 그 어 떤 것이라도 밟아서 짓눌러 버릴 수 있는 단단한 금속을 의미한다. 재림 예수 심판의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③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다(15). 죄인을 심판하시는 엄위에 찬 음성이다. ‘입에 서는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16). 예수님은 말씀이 심판의 검이 되어 세상을 심판하신다.
④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16). 예수님의 영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악인들은 똑바로 쳐다 볼 수 없다(6:15-17). 예수님의 영광을 본 요한 은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혼절한 것처럼 되었다(17). 예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감추시고 인자의 모습으로 보이신다. 우리들이 장차 부활한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며, 함께 유리 같은 맑은 정금으로 깔린 그 영광스러운 천국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21:21,22:4). 예수님은 자신의 놀라운 영광을 보고 죽은 자 같이 된 요한에게 다가가, 그 오른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하셨다(17-18). 비록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 받을 세상에는 엄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시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자비하신 구주의 모습으로 보이시며, 위로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6. 다음 ( )에 알맞은 말을 넣고 오늘 공부를 마무리 하자.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한다. 첫 번째 ( 주 )( 일 )( 예 )( 배 )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성경의 마지막 권 계시록에서도, 주일성수가 얼마나 주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철저한 주일성수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들은 예배를 드리는 교회공동체 지체들로서 형제이다. 그러므로 함께 예수의 ( 환 )( 난 )과 ( 나 )( 라 )와 ( 참 )( 음 )에 ( 동 )( 참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것은, ( 교 )( 회 )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은 교회 일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우리들이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지체 형제들로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할 때, 즉 교회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함 할 때,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 예 )( 수 )님이 우리 교회에 거하신다. 형제들인 우리가 함께 할 때, 예수님의 관심을 받는 교회가 된다. 그리고 주 재림 때 함께 예수님의 영광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고’,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고’,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며’,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영광의 재림 주를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22:4). 그리고 그분과 함께 유리 같은 맑은 정금으로 깔린 그 영광스러운 천국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계시록은 ‘교회시대’ 택한 성도들을 ‘종말시대’까지 구원하기 위한 말씀이다. 주제는 재림(종말), 목적은 신부단장, 경종은 짐승(배교)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참된 목양의 목회자와 믿음의 성도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될 것을 축복한다(마24:45). 종말 때에 배교에 맞서 진리를 사수하고, 생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영접하여, 그분이 왕이 다스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 나라’에서, 왕권자로 참예하기를 축복한다(계11:15,20:4). 흰 보좌에서 순교자의 변화와 성도의 생명의 부활을 입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영원한 나라 천국에 입성하기를 축복한다(요5:29;고전15:52-54;계20:4-6,11,21:2).
이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교회공동체 지체들로 함께 철저한 주일성수와 지제 형제로서 함께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 바로 교회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여, 예수님이 교회에 향한 명령을 복종할 때, 우리의 지체인 형제 교회공동체 성도들 모두 주 재림 때 예수님의 영광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7. 합심 기도 제목
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일에 성령의 감동으로 받았다. 종말의 신앙에도 철저한 주일 성수이다. 주 재림하시는 날까지 철저한 주일 성수와 참된 예배자가 되자. 참된 예배자와 예배 공동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완성, 주 재림을 보게해달라고 기도하자.
②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것은, ‘교회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 즉,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없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한 성도도 빠짐없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③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교회에 예수님의 거하신다. 예수님이 교회에 향한 명령을 복종하게 하자. 우리 지체인 성도들 모두 주 재림 때,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