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 천년설

새 하늘과 새 땅 | 개혁주의 전 천년설 계시록 장별 연구(35) | 이재현목사 | 파루시아 아카데미 | 개혁주의 전 천년설(72)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4. 4. 9. 17:07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말씀 : 요한계시록 21:9-22:5

 

천년왕국이 마쳐지고 인류의 모든 역사는 종결된다. 이제 영원한 나라로 이어진다. 이 영원한 나라에 입성하기 전 거쳐야 할 곳이 있다. 보좌 앞이다. 이 보좌는 크고 희다고 하였다(20:11). 그 의미는 귄위와 거룩을 상징한다. 바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좌를 하나님이 좌정하신 흰 보좌라고 한다. 흰 보좌앞에 두 부류가 서게 된다. 하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의인들로 생명의 부활을 입게 된다(5:29). 또 하나는 예수를 거역한 악인들로 심판의 부활을 입게 된다(5:29.참고/24:5;14:10). 지난 6천 여 년의 인류 역사 가운데 단 한 명도 예외없이 이 흰 보좌에 서게 된다.

심판은 의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의인들은 흰 보좌에서, 이 세상에서 행한 선한 일에 따라, 상급이 결정되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천국에 입성하게 된다(참고/3:16;10:42,25:34;6:22-23;고후5:10;6:10,11:6;2:10,3:8,11). 그러나 악인들은 심판을 받고, 그동안 영혼만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영혼이 부활한 육체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영멸을 한다(참고/25:46;14:10;고후5:10;20:12-13). 이렇게 악인들은 첫째 사망육체적인 죽음과 함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지옥에 떨어지는 두 번째 죽음을 당하기에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20:14). 의인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20:11,21:27.참고/69:28;12:102;4:3;3:5,13:8,17:8,20:12). 악인들의 모든 죄악은 행위책들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20:12.참고/26:19;7:10;12:2). 생명책은 단수이지만, 행위책들은 복수이다.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범한 죄악이 얼마나 크고 많은 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심판이 멈춘 것이 아니라. 이 날의 최종 심판까지 악인들의 모든 죄를 쌓고 계시는 것이다(참고/2:5).

악인의 심판과 함께 사망과 음부도 둘째 사망 불 못에 던져진다고 하였다(20:14). ‘흰 보좌앞서 이 세상에 존재한 천년왕국은 에덴의 회복이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가 아니라, 천년이라는 수한이 명시되어 있는 유한한 나라이다(20:7). 천년 간 마귀가 없고 죄가 없고 죽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이 마쳐질 때쯤 무저갱에 있던 마귀가 올라와 천년왕국 2세들 중 불택자를 미혹한다(20:8). 그들은 불로 소멸을 당한다(20:9). 즉 천년왕국 끝에도 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흰 보좌에서 더 이상 사망과 음부도 필요치 않기에 둘째 사망인 지옥에 던져 버려진다. 이제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21:4).

 

1.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영원한 본향이다(21:1.참고/2:1-2,11:16).

새 하늘과 새 땅은 믿음의 경주 최종 도착지로 이 나라를 목표로 인간 역사가 진행되 어 왔다(3:24.참고/12:12;9:1;고전15:24).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새 하늘과 새 땅과 동일한 천국을 가리킨다(21:2.참고/25:34;14:2;11:13-16). 분명한 장소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성도 들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공간이 있다는 말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4). 인간들이 현세에서 살 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처음 것들이다. 처음 것은 모두 그림자이다(대상29:15;히8:5).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고전7:31;요일2:16-17). 이제 썩을 몸이 아닌 변화된 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21:4). 사망, 애통, 곡, 아픈 것은 인간의 눈물을 흘리 게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간을 이 땅에서 위협하며 옭아매려던 ‘사 망과 음부도 둘째 사망’에 떨어졌기 때문이다(20:14.참고/시90:10;마5:8;히4:10;롬8:18).

 

2. 다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외면外面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면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고 하 였다(21: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신부로 천국으로 비유하고 있다. ‘거룩 한 성 새 예루살렘’을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라고 한 것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신부인 성도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21:9-10).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천국’은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 다. 이에 대하여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최상의 형용사로 표현한 것이다(21:2).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21:11). 하나님의 영광만이 가득함을 표현하고 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크기를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 ‘성곽은 벽옥 성은 정금 유리 갖다라고 하였다(21:12,17-18). 불변과 말씀을 상징한다(참 고/겔43:10-17;11:1). 측량 도구가 ‘금 갈대 자’이다(21:15). 인간이 아닌 ‘천사의 측량’으로 구원받은 모든 백성이 거할 곳을 의미한다(21:17).

열두 천사가 있고 열 두문이며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쓰여 있다(21:12-13). 열둘이 반복되어 있는 것은, ‘천국에 입성할 모든 성도들을 상징한다.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 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다(21:14).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스라엘과 교회에는 더 이상 구별이 없다(엡2:16).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은 자들’ 모두를 말한다(엡1:4). ‘열두 기초 석’은 벽옥, 남보 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이다(21:19-20). 각 종 보석들에 어떤 해석을 하는 것보다, 구원받은 성도가 누릴 완성된 최고의 복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보석의 세상 명칭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날에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 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21:15-

17). “성곽 크기는 1 스다디온은 약 180m로 1만 2천 스다디온이란 약 2천Km의 정방형이 된다. 런던의 약 530만 배에 달하는 면적에 14조 15만 억 채의 집을 지을 수 있다. 요한이 계 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거할 규모이다”고 주석한 신학자가 있다. 물론 이것은 지 금의 측량과 동일하지 않다. ‘천사의 측량’이라고 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 이 거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상징한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21:21). 천국의 기이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모습을 계시를 통해 볼 수 있다. 언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진경珍景은 세상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다(눅17:21). 주님을 모시고 그 마음이 천국인 자 는 그 본향의 소망을 한시도 잊지 않게 될 것이다(히11:16).

 

3. 다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내면內面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어인가?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기 때문이다(21:22.참고/2:21).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소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성소가 필요하지 않다. 천국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이 친히 만나는 곳이 며, 그 성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전이요 성소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 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2:21).

② 성전이 없다는 말이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천국 생활은 예배의 계속이라는 뜻이다(참고/1:14;15:5-8). 하나님이 계시는 그의 보좌가 구심점이 되어 성 도들의 찬양과 경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속해 주 신 섭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에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찬양은 천국에서 온전히 이 루어지며 완성될 것이다(엡1:14).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기 때문이다(21:23.참고 /1:3-4). 지금 보고 있는 해와 달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것들이다. 그러나 거룩한 성 새 예 루살렘은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21:4). 해와 달이 없어도 그 곳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 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은 태양 빛과 구분된 빛이다. 이 세상에서 지금 빛을 내고 있는 해나 달은 넷째 날에 창조하신 것이지만, 천국에서 하나님 영광의 빛은 첫째 날에 비취게 하신 그 빛이다.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 더라’(창1:3-4). 이 빛은 넷째 날에 만드신 태양의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은 지금 이 세상을 비취는 빛이지만, 천국에서는 아무 구실도 할 수 없다. 그곳은 해가 필요한 물질세 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의 빛 만이 가득하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췬다는 것이다(21:23). ‘등 불’이란 표현은 빛 그 자체, 곧 빛의 발원지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빛의 조명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신다는 말씀과 하나님 영광의 빛이 비췬다는 말은 같은 뜻 의 표현이다. 예수님으로부터도 그 같은 영광의 빛이 비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때 어린 양 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이 같은 영광의 빛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비취실 때, 그 빛으 로 말미암아 천국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모습으로 더욱 찬란하게 나타날 것이다.

 

 

4. 다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내면內面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가 수정 같이 맑은 강’(22:1).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아 름다운 강임을 알게 한다. 바다는 찾아볼 수 없다(21:1). 영적으로 바다는 세상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제국들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단7:2;13:1). 천국의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에덴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네 강의 발원지이다(창2:10-14). 천국에서도 강이 흐르고 있다.

생명수의 강’(22:1).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는 생수로 죄인에게 마시게 하심으로 영생을 주시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참고/4:14,

7:37-38). 이 강물을 마셔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영생을 얻은 자들이 가는 곳이다. 천국이 영적인 세계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생명수의 강과 같이 경이로운 것이 가득한 곳임을 말씀하고 있다. 천국에 속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22:1) 강의 근원은 천상의 보좌이다. 생명수 강 외에 천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근원지인 것 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흐르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된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22:2). 이 열매를 먹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천국 자 체가 영원하기에 그 나라의 물과 나무를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생명나무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22:2). 달마다 열매가 맺고 수 학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실을 따먹어도 곧 다시 맺혀지는 신비적인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하여 범죄로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창3:3). 이제 는 먹을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죄에서 구속을 입고 영생체를 입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생명나 무 과실을 마음껏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의 열매를 마시고 먹어야 산다는 개념이 아니다. 천국에서도 먹고 마시는 기쁨을 말한다(참고/마26:29;눅22:3,24:39,42-4

3).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2). 잎사귀도 항상 풍성한 것으로 영원한 것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에 해함이나 사망이 없다(21:4).

다시 저주가 없으며’(22:3). 저주를 가져오는 죄가 없는 곳이다. 천년왕국도 종국에는 마귀 를 풀어 놓음으로 다시 저주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주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고 하였다(22:3).

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 라’(22:5).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 자체이기에 그 빛 앞에 밤에서 역사하는 마귀 가 존재할 수 없다.

 

 

5.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자.

 

천국과 지옥이 없는 복음은 복음도 아니고, 천국과 지옥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도 아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예수 믿을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는가? 우리가 받을 지옥의 심판을 예수님이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인류 역사상 최대 심판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죽게 하시고, 심판을 받도록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극을 연출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심판하셔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뿐만 아니라, 음부에서도 ’主가 되시며, 또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2:24-27;4:9;2:10;1:18).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아닌, 심판 날 부활이 약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사망 권세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6:1-14;고전15:21-50).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지옥 갈 우리들을 대신해서 지옥의 심판을 받으시고, 저와 여러분을 천국에 보내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천국에 관한 설교를 왜 들어야 하고, 이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천국 복음을 외면하는 자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우리가 왜 전도를 힘을 다해야 하는지 또한 알게 되었을 것이다.

 

 

6. 합심 기도 제목

 

① 천국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의 그 나라를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우리가 사모하는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현세에 매이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의 선조와 같이 천국을 소망하며 이기는 자가 되게 기도하자.

 

② 천국이 놀라운 영광이라면, 종말을 금기시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종말이던 우주의 종말이던 종말 후에 천국에 입성할 수 있게 된다. 종말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심판이기 때문입이다. 종말은 주 재림을 맞이하고, 천년왕국에서 지복을 누리고, 흰 보좌에서 부활과 변화를 입고, 천국에 입성하는 거룩한 날이다.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천국의 영광이 증거되게 기도하자.

 

③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예수님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화답해야 한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으로 축복해야 한다. 이 진언과 증거와 사명을 감당하게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