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하늘과 처음 땅 & 새 하늘과 새 땅:창세기 1장
1) 범죄와 저주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로 이루진 세상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다(창1:1-31;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 말씀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새 하늘과 새 땅’도 등장한다. 이 두 세계 비교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좋다는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세계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는가? 없다. 부족한 것이 있는가? 없다. 순서를 바꾸어야 할 것이 있는가? 없다. 천지창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잘못된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고, 바꾸어야 할 것도 없는데, 왜! ‘새 하늘과 새 땅’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를 범했다(창3:6).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드셔서, 행복하게 살게 하셨건만, 아담은 한 가지 명령 절대적 명령을 거역했다. 바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는 명령이었다(창2:17). 이를 범한 아담은 어떻게 되었는가?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범죄의 결과 ‘평생에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여자는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셨다(창3:16).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죽음이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 결과 인간만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고 하였고, ‘짐승도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창3:14). 인간의 범죄로 이 세상도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심판 대홍수의 결과 세상은 창조의 모습을 크게 잃었다(창8:2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아니다. 지구가 이상하다. 지진, 쓰나미, 대형 산불, 폭염, 최강 한파 등 자연재해는 기후재앙으로 불리고 있다. 인간의 죄로 저주 받은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인, 이 세상은 그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인간의 죄로 저주 받아,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저주받은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듯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각종 재난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지만, 완전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다.
2) 종말과 영존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 두 광명체를 만드셨다. 이들로 각 각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으며, 별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셨다. 그러시면서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고 하셨다(창1:14). 광명체들을 통해 두 가지를 허락하셨다. 하나는 천계에 나타나는 ‘징조’Signs이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손길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자연계시이다. 그러므로 자연계시의 움직임이 예전과 다르게 가면 갈수록 심상치 않을 때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경성해야 한다. 이것이 징조의 한 관점이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주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경각하게 하시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계절’Seasons과 ‘날’Days과 ‘해’Years로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역사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정하신 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시계침時計針이 멈출 때가 언제인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셨다(계21:1). 천지창조 이후 시작된 시간이 없어지고 영원한나라가 시작됨을 말씀하고 있다. 4절에도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반복하여 세상의 시간은 종료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재림이요 그 이후 심판의 결과인 것이다.
3) 천지창조에서 신천신지를 바라보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인 이 세상에서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는 있지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창2:1-3.참고/히4:9-11).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 다시 오셔서, 죄악으로 저주 받은 세상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만드신 뒤, 아담 범죄 이전 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 다음,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로운 세계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다(계21:2).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한다(계21:4).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하였다. 지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있는, 아담의 범죄 이후 ‘눈물, 사망,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이다. 이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한다(계21:2).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은 비유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최상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성도는 이 세상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한다(계18:4). 창세기 1장 천지창조는 소멸되고 신천신지가 도래한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미련 두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천국 메시지을 부지런히 전해야 한다. 천국 설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종말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尾註>
1) 징조는 히브리어 תוֹא(오트,’oth)로 그 뜻은 표시(Sign), 부호․기호(Mark), 표․증거(Token), 기장․표장(Enign), 기준․표준(Standard), 기적(Miracle), 기적적인 표징(Miraculous Sign), 증거(Proof), 경고(Warning)등 이다. 성경에는 다양하게 그 용례가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임을 밝힌다(저자註).
2)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를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행하실 심판의 결과라고 하였다. 그것은 본고의 전개를 용이하게 셜명하기 위함이고, 실제로 예수님의 재림, 심판 후 천년왕국까지는 지금의 시간이 진행이다(계19:11-21,20:1-10). 천년왕국 후 흰 보좌 심판 후 ‘새 하늘과 새 땅’ 영존이 시작된다(계20:11,21:1).
3)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사야에도 기록되어있다. 이 세계에 대해 ‘17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라고 하였다(사65:17-18).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는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아니다. 똑같은 천지창조를 창세기 이사야에 두 번 반복 할 이유가 없고, 창세기 천지창조와 전혀 다른 창조에 대한 예언이다(창1:1-2:3). 이 세상 심판 후 창조될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이다. 천국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서의 육적인 생활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사65:20-25). 그렇다면 계시록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는 어떤 관계인가?(계21:1). 먼저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과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은 세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창조’라고 명시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세워질 나라임을 말씀하고 있다(사65:17-18). 그러나 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씀하고 있다(계21:1).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과 다르다. 또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였다(계21:2). 똑같은 ‘새 하늘과 새 땅’임에도 천년왕국과 천국으로 구분된 또 다른 이유는 구약만을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천년왕국(메시아왕국)이 끝이다. 그들에게는 천국은 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주신 장차 될 일에 대한 예언인 계시록은 천국을 확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공생애 첫 일성이 계시록에서 완전히 실현된다(마3:2).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을 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과 연결, 천국에서도 짐승과 독사가 산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교회시대 풍성한 생활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고,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종말론적 교회라고한다. 지금 이 지상이 장차 천국이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논지는 성경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구약에 계시된 ‘영원한 나라’를 천년왕국이 아닌 천국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단7:27). 그러나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으로 에덴의 회복이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이고, 천국은 영원함을 입는 것이다. 즉 천년왕국은 천국으로 이어지는 나라이기에 ‘영원한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구약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계시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초림의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 재림의 예수님이 그들에게는 초림이고, 천국도 계시되지 않았다. 그들을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바로 천년왕국이다. 천국은 신약에 계시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천년왕국은 하나님께 천지창조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에 천년간의 제한된 기간이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유한한 나라이다. 영원한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 본향이다(히11:16;계21:1-2).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언제인가는 사라질 것들이다(히1:11). 천년왕국도 종국에는 사라져 버린다. ‘흰 보좌’에서 천년왕국의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하였다(계20:11). 천국만이 영원한 나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전혀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 주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이루고, 우리는 그의 오심을 갈망하며, 그의 나라에 입성하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목회의 목양과 성도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의 결론인 계시록이 증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