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덴동산과 천년왕국:창세기 2장
1) 명령과 거역
하나님은 완벽하고, 황홀하며, 환희 가득한 에덴동산을 사람에게 주셨다(창2:8).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모든 것은 한 가지 절대적으로 지켜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한 국가 헌법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은 인류 헌법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만 완벽하고 황홀하며 환희 가득한 에덴동산을 영위할 수 있었다.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하나님은 에덴동산 안에 생명을 보존하는데 부족함 없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과목을 가득 차게 하셨다(창2:9). 그런데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창2:9). 하나님의 명령은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게 임의로 먹되’, 한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죄요. 그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분명히 가리켜 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분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2) 범죄의 결과
(1) 죽음의 지배
하나님은 사람을 직접 땅의 흙으로 빚어 하나님의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다고 하였다(창2:7). ‘하나님의 생기를 코에 불어넣’었다는 것은 육적인 호흡과 함께 사람은 영적인 호흡을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한다. 사람이 영적인 호흡을 하는 존재라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것을 알 때 ‘생령’인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실상은 죽은 자인 것이다.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를 몰라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함으로 죽음이 온 것이다. 어느 한정된 기간 육체는 살아 있을 수 있으나,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육체적 죽음 영적인 죽음이 사람에게 닥쳐온 것이다.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 통치의 상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 중 짐승들을 아담에게도 이끄셨다. 그 목적은 그 짐승들을 아담이 보고 ‘무엇이라고 부르나’ 즉 아담이 각 종 짐승들의 작명을 어떻게 하나 보시기 위해서이다(2:19). 그것은 아담의 지혜를 알 수 있는 것이요. 모든 짐승을 아담에게 통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함으로 위임 받은 통치의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다. 아담의 시대에는 사자가 그의 앞에 와서도 해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맹수들이 인간의 목숨까지도 해하기도 한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통치 권한이 상실된 것이다.
(3) 가정의 와해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시고,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화와를 만들고, 친히 이끌어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되게 하였다(창2:22). 이를 맞이한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고 하였다(창2:23). 이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했다고 하였다(창2:25). 이 말씀은 모든 결정에서 부부가 첫 번째가 된다는 것이고, 이 세상의 어느 관계보다 그 이상이어야 하며, 육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가정을 갖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거역함으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아내에게 전가하고, 여자는 뱀에게 전가하고, ‘아내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릴 것이니라’.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가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창3:17).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가정의 와해를 가져온 것이다.
죽음의 지배, 통치의 상실, 가정의 와해. 이 세 가지는 오늘도 인간을 두렵게하고, 탐욕하게 하며, 불행하게 한다. 죽음의 지배로 인간은 죽음 앞에 벌벌 떠는 존재가 되었고, 통치의 상실로 어떻게 하던, 남의 것이라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치열한 경쟁을 하여야하고, 가정의 와해로 갈 곳을 얻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된 것이다. 즉 에덴의 뜻 기쁨,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이 되었다. 그 근본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3) 복락원Paradise Regained과 천년왕국
그러면 실낙원失樂園,Paradise Lost의 세상, 에덴동산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인가? 교회이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엡3:10).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성별하신 한 곳,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경륜을 펼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태초의 창조를 배우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사람이 완전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찾아온, 죽음의 지배, 통치의 상실, 가정의 와해를 알게 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통해서만 알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이를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사라진 에덴동산 실낙원의 세상에 있지만, 다시 회복하여 복락원復樂園,Paradise Regained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허락하신 것이다.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이름으로 죽음의 지배를 물리치고, 전도를 통하여 예수 복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의 상실을 복원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정의 와해가 화해되는 곳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에덴의 뜻 기쁨을 진정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피값으로 세우신 곳이기 때문이다(행20:28). 이상이 교회시대 관점에서 해석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 하였은즉’ ‘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종료된다(롬5:17;고전15:45).
그러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해답은 천년왕국에 있다. 이 나라를 두고 역사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은 2천년 교회사에서 아직까지도 충돌하는 주제이다. 천년설Millenarianism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 종말론 나아가 성경 전반의 해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 피력하면서 상반된 주장을 논박論駁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1)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 못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살려 주는 영이’되게 하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다(고전15:45). 그러나 하나 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아담만 아니라 땅도 저주 받았다(창3:17). 그로 인해 세상은 죄악이 창궐하고, 생태계는 훼손되고 파괴되었으며, 기후의 격변과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땅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류의 숙명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도 복원되었는가?(창3:17) ‘짐승이 받은 저주’가 풀렸는가?(창3:14)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신 적이 있는가?(계11:15,19:16) 상징적 의미 말고, 사실적 의미로 볼 때 말이다.
이 모습 이대로 끝난다면, 하나님께서 원래 천지창조를 통해 받고자 하셨던 영광을 이루어 드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죄악을 심판하시고, 훼손되고 파괴된 이 세상을 천지창조 때와 같이 만드신다. 이것이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이다. 이 나라에서, 아담에게 주었지만, 범죄로 이루지 못했던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것이다(참고/계19:16).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 된 것 곧 중간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둘이 하나가 되어,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한 왕으로 섬기게 된다(사9:6;고전15:24;엡2:14;계11:15). 실낙원을 복락원으로 ‘황금시대’The Golden Age가 완성되는 것이다.
천년왕국 계시인 이사야 11장 9절의 ‘해 됨도 상함도 없는 세상’과 천국 계시인 계시록의 21장 2-4절의 ‘눈물과 사망과 고통이 없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동일한 나라가 아니다. 천년왕국과 천국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데 신학자들 가운데는 두 나라를 구별하지 않고, 이상한 나라를 만들기도 한다. 천국에도 육초식 짐승들이 산다는 것이다. 이사야 65장 25절과 계시록 22장 1절을 믹서Mixer한 결과이다. 이러한 논지가 등장하는 이유는 역사적 천년왕국을 부인하는데 기인한다.2)
천국도 에덴의 회복이라는 성격은 갖다. 그러나 성질은 다르다. 천년왕국은 에덴이 실현되는 것이고, 천국은 에덴이 영원을 입는 것이다. 전자는 에덴 창조에 대한 약속의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후자는 에덴 창조에 대한 영원이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년왕국에서 사는 것이 ‘지복’至福, 더 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 말씀한다(단12:13).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입성하게 된다(21:2).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를 사모해야 한다. 천년왕국이 종말계시에 중대한 것은 실제 관점을 가지면, 요한계시록 전반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게 되지만, 영적 견해를 가지면, 상징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종말의 징조에도 경각하지 못하는 맹인이 될 수밖에 없다. 창세기 2장에서 초림의 예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땅의 저주는 그대로인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통해 받으시고자 했던 영광을 재림 예수님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 드린다. 종말의 나라이다.
尾註>
1) 하나님은 인류의 두 번째 시조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였다(창9:1). 아담에게 주신 복과 흡사하지만, ‘땅을 정복하라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이 없다. 아담의 범죄로 통치 능력을 상실 한 것이다. 그렇기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짐승과 평화롭게 지냈지만, 노아시대 모든 짐승이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고 하였다. 인간에 의한 수렵이 시작되어 ‘산 동물’ 양식이 된 것이다(창9:2-3). 이로 인해 짐승들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된 것이다.
2) 천년왕국 성경구절/사2:2-4,11:6-9,30:29,35:5-7,65:17-23;단2:44,7:14;욜3:10;미4:2-3;합2:14;슥8:3,14:9;마19:28;행3:21;고전15:24;벧후3:10-13;계11:15,19:6,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