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세상을 건너서:창세기 10장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들을 정리해보면, 셈, 함, 야벳의 족보에는 총 70 종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야벳의 아들들이 14종족, 함의 아들들이 30 플러스 1종족, 셈의 아들들이 26종족이다. 이들이 진출한 지역을 보면, 야벳은 그리스부터 유럽 전역으로, 가나안은 팔레스타인부터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셈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중동 지역이다. 노아의 세 아들의 이름의 뜻을 보면, 이들이 훗날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 셈은 히브리어로 그 뜻이 “이름, 명성, 명예”이라는 뜻이다. 함은 “뜨겁다, 따뜻하다”, 야벳은 “열다, 널리 퍼지다”라는 뜻이다.
야벳은 유럽의 전 지역으로 진출하여 여러 민족을 이루었는데, 오늘날 유럽지역을 보면 전체 영토는 크지 않지만, 참 많은 나라와 인종들이 국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 특별히 서유럽으로 불리는 지역의 국가들이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야벳’이란 이름의 의미, 즉 ‘열린, 널리 확장하는’이란 뜻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일이며, 오늘까지도 지구촌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노아의 예언,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창9:27). 함은 ‘뜨겁다’라는 그 이름의 뜻처럼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려와서 열대기후에서 살게 되다. 수백년간 전 세계로 흩어져 종살이를 해야 했다. 이 또한 함의 후손들은 ‘셈의 종이 되고 야벳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한 노아의 예언 그대로이다(창9:26-27). 셈족은 노아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고 한데로,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킴으로 이름의 의미처럼, ‘이름, 명예, 명성’을 떨치는 종족이 되었다(창9:26).
1) 인류의 최초 영웅 니므롯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함의 후손들은 야벳과 셈의 종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지배를 하던 중세를 넘어 근대 현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본문의 고대에서 함의 후손들은 그 규모로 보나, 차지한 영토로 보나, 배출한 인물들로 보나, 야벳과 셈의 후손들보다 특출하였다. 함의 후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니므롯’이다.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창10:8-12).
함의 손자인 니므롯에 관하여 성경은 무려 5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 70 종족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 ‘니므롯’ 한 사람에 관하여 5절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어던 이유가 있는가?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라고 하였다. ‘Mighty Warrior', ‘강력한 전사’이다. 역사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현재 알려지고 있는 고대 바벨론의 유일한 왕이다. 니므롯에 대하여 지상 최초의 권력자, 세상 최초의 영걸로 번역하고 있다. 오늘날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중동 전 지역에 해당하는 시날부터 앗수르까지 자신의 영토로 삼았기 때문에, 미가서 5장 6절에는 앗수르를 ‘니므롯의 땅’으로 불렀다.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하였다(창10:9). 그래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인정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뜻 같지만, 하나님과 맞서려는 자라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 세상에 장수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저 장수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 즉 “니므롯 같이 하나님과도 필적할 수 있는 자라야 세상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영웅을 호칭하는 대명사로 니므롯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또한 이 자는 시날 땅 바벨과 에릭과 악갓과 레겔에서 시작,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레센을 건축하였다. 모두 ‘큰 성읍’을 건축했다.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여호와를 떠난 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부를 얻고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여, 이름을 아들 에녹성이라 명하고 자신의 명성을 세상에 과시했다. 그와 똑같이 하나님을 떠나 부의 상징은 큰 성읍들을 잇따라 건축한 인물이 니므롯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니므롯을 추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니므롯은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로서, 성경 기록 그대로 ‘용사’이었다. 그러나 이 용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우리는 창세기 6장을 공부할 때 배웠다. 대홍수이 전 세상에는 ‘네피림’이 있었다. 그는 ‘장부’丈夫로 거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네피림’을 추앙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의 딸들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결혼을 해서 낳은 이세들에게서 ‘용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대에 명성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용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을 통해 얻어지게 되어 기뻐했으나. 이 ‘용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다.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입성할 때, 이를 방해하고 전쟁도 마다하지 않던 자들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통혼을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외 삶 전 영역에서 인간들의 죄악이 하늘까지 찬 것이다(창6:6). 결국 하나님은 어떤 결단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하셨다(창6:7). 홍수로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게 하셨다(창6:17).
이렇게 첫 번째 심판인 ‘물 심판’ 원인이 되는 용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용사들을 추앙하게 된 것이다. 그 용사가 본문에 ‘세상의 첫 용사’ 니므롯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하나님보다 용사 즉 영웅 찾는 심리가 있다. 그 영웅을 따라가다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한다. 한 시대의 영웅이 있을지 모르지만, ‘악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고 하였다(시1:4). 영웅들은 하나님이 불면, 사라지는 바람의 겨와 같은 존재일 뿐리다. 영웅도 잠시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사실 말이다.
성경에는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에 대한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다(사14:3). 바벨론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며, 제국을 완성해 나갔다. 기고만장한 그들의 기세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몰락을 겪게 된다.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고 하였다(사14:5). 하나님이 바벨론의 ‘규’, 지팡이를 말한다. 바벨론의 왕위를 상징하는 ‘홀’笏을 꺽어 버리셨다. 파죽지세로 세계를 정복할 것 같던 바벨론의 통치를 꺾어 버리시고, 하나님은 바벨론을 ‘스올’ 지옥에 던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요 교만한 바벨론을 ‘스올 ’ 지옥에 던질 때, 바벨론보다 ‘스올’ 지옥에 먼저 던져진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영웅’과 ‘열방의 모든 왕’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바벨론과 같이 한 때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의 인기를 끌던 세상을 주름잡던 영웅들은 모두 ‘스올’에 지옥에 던져 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용사 세상의 영웅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인류를 구할 영웅을 구하고 있다. 더 더욱 요즘 같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수선할 때,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해결할 자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게 한다.
예전에 ‘육백만물의 사나이’, ‘소머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헐크’, ‘스파이더맨’ ‘램보 시리즈’를 보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사람이 많은 대적들을 초인적인 힘으로 물리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어벤저스 시리즈'Avengers Series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토르’, ‘호크 아이’ 등은 지구의 위기를 일거一擧에 해결할 영웅들로 등장한다. 이렇게 영웅을 원하는 인류의 심리가, 본문의 창세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의 창궐, 북한의 핵 위협, 세계의 곳곳의 분쟁, 기후의 격변, 자연재해의 재앙, 자원의 임계점, 경제의 추락, 식량 부족과 식수의 고갈, 세계 대전의 고조 등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때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끝낼 수 있는 자를 원한다. 인류 최대의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다.
2) 인류의 최종 영웅 적그리스도
성경 첫 권 창세기에서는 ‘니므롯’이 인류 첫 번째 용사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 마지막 권인 계시록에는 이 니므롯과 같이 세상의 용사, 영웅이 인류 역사 종말에 등장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 자는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 ‘짐승’, ‘The Beast'로 지칭되어있다.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이자는 등장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한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계13:3-4). 아마도 반대파의 암살 사건 등 어떤 상해로 죽음의 직전에 이르게 된다. 마치 죽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후 삼일 만에 부활을 재현하듯 사람들의 미혹을 끌며 세계무대에 출현한다.
그리고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북한의 핵 위협, 세계의 곳곳의 분쟁, 기후의 격변, 자연재해의 재앙, 자원의 임계점, 경제의 추락, 식량 부족과 식수의 고갈, 세계 대전의 고조 등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구촌의 위기를 극적으로 타결할 평화의 왕으로 가장할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단9:27.참고/사9:6). 이 자는 종말인 예수님 재림 전 7년에 인류를 위기에서 타계할 언약을 체결한다(단9:27). 이를 가리켜 7년평화조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7년환난’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칭할 것이라고 하였다(단7:8,9:27;살후2:4;계11:2,계13:5). 그는 자신의 지배가 공고화된 ‘후 3년 반’,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인류들로 그 우상 앞에 경배하게 한다(계13:15). 인류들로 그 우상에게 경배케 한 후, 자신의 표를 받게 한다(계13:16). 이 자가 주도하고 배표할 표는 ‘짐승의 수’로 ‘육백육십육’이라 말씀한다(계13:18). 이 짐승표를 받은 자만이 매매가 가능하다고 하였다(계13:17). 그 의미는 외형적으로는 경제 수단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통치 수단인 것이다. 매매를 위해 이 표 ‘666’을 ‘오른손에나 이마’에 받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사항은 짐승의 손에 들어가고,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계13:16). 금번 코로나 19로 불거진 마스크 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마스크 배급제에서 신분증을 제시하여야 하고, 확진자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짐승표와 짐승에 의한 세계단일정부의 통제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서울로 심방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서 얼마 안 있어서, 내 핸드폰에 서울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문자가 발송되었다. 아니 서울에 어떻게 간 줄 알고 보내는가? 이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통제되고 있다. 이 또한 종말의 시대 적그리스도의 세계단일정부 통제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짐승, 적그리스도를 따르면 어떻게 되는가? 계시록 6장 8절에 이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하였다. 바로 이 자를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다(계14:10-11). 지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이 적그리스도를 ‘산 채로 유황불 봍는 못에 던’진다고 말씀한다(계19:20). ‘유황불 붙는 못’은 어디인가? 지옥이다. 적그리스도는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이기에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게되는지 산 채로 지옥에 던져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같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필자가 말씀드린 영웅의 시조가 오늘 본문에 세상의 첫 용사인 니므롯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영웅을 구한다. 그러다 종말의 시대 영웅으로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로 불거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대책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많은 교회들이 정부의 권고와 자체 교회별 회의를 통해 공적 예배를 온라인 등의 예배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명문과 실리 두 가지를 쫓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예배 중단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이것이 대책인가라고 하는 것이다.
코로나 19는 어쩌면 종말의 7년환난 시대에 당할 환난을 미리 경험하게 하면서, 한국교회에 기회를 주신 것으로 믿는다. 한국교회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게 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라는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재림의 신앙으로 주 오심을 고대하며, 그의 통치를 바라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들은 예수님이 오셔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부의 대책을 완전한 것을 신뢰하거나, 인간을 바라보거나, 속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다간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모 지사가 최근 대권 후보 2위로 급상승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신천지 과천본부 압수수색을 진두지휘한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그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다. 이렇게 영웅을 따르는 심리는 지금도 여전함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모든 혼돈과 혼란과 혼동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셔야 해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의 예수를 소망하는 신앙에 맞춰져야 한다. 아담의 범죄로 미완이 된 창조의 영광을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시는 것이다. 둑이 무너진 이 시대 우리의 신앙이 소중한 것은 그가 다시 오심을 믿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주 재림을 통해 확인될 것이다. 그날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절대 예배 신앙 믿음에서 물러서는 행위를 하지 않을 때, 세상의 영웅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예수님이 속히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혼돈과 혼란과 혼동을 바로 잡을 것이다. 예수님이 평강이 왕이시다. 그분만이 바로 잡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 전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자칫 적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위장할 뿐이다. 여전히 인간의 본능에는 영웅을 따르는 심리가 있기에, 우리들은 주님이 오셔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일념을 갖고, 지금 교회를 떠나지 말고, 신앙에 집중하고, 믿음에 정진해야 한다.
3) 건너온 자
셈족은 노아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고 한데로,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킴으로 이름의 뜻처럼 ‘이름, 명예, 명성’을 떨치는 종족이 되었다(창9:26). 약속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셈의 족보는 ‘셈은 에벨 자손의 조상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창10:21). 여기에 등장한 ‘에벨’은 셈이 낳은 다섯 아들 중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의 아들이다(창10:24). 즉 에벨은 셈의 증손자이다. 그런데 셈 족보의 대표적 인물로 에벨로 명시하고 있다. 에벨이 셈 자손 전체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25절에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라는 짧은 언급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10:25)
이 말씀에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는 창세기 11장에서 배우게 될 일명 바벨탑 사건이다. 이로 인해 언어가 혼잡하게 되고, 인류는 뿔뿔이 흩어지지 않는가? 바벨탑은 오늘 본문의 니므롯 같은 세상의 영웅들이 하나님과 닿고자 행한 반역 행위가 그 동기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돌아서는 바벨탑 배교 운동이 일어나던 타락의 시대에, 에벨은 이들 불경스러운 모임에 가담하지 않고, 도리어 영적 개혁과 종교적 정화운동의 기치를 치켜들었다. 이 때문에 에벨은 또 한 명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차남인 욕단의 족보와 장남인 벨렉의 족보가 각각 성경에 수록되는 복을 받게 되었다(창10:25-32,11:18-26). 뿐만 아니라 그는 아브라함의 선조가 되었다.
‘에벨’Ebel의 원뜻은 “건너온 자들"이다. 에벨의 어원인 ‘이브리’에서 ‘히브리'Hebrew라는 말이 나왔다. 오늘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히브리 민족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유래가 바로 본문의 ‘에벨’, 셈의 증손자인 ‘에벨’의 이름의 뜻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히브리라고 할 때,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을 명령을 따라, 고향을 갈대 우르를 떠나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당도하게 된다(창12:1). 이렇게 강을 건넜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건너온 자이다. 이러한 건너온 하나님의 사람의 시작이 에벨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선지지로 40여 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이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앞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이다(신32:4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기 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이 명령 후 모세는 죽고,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에 섰다.
그러나 요단강 앞에서 선 이스라엘은 쉽게 그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요단이 곡식을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고 하였다(수3:15). 년 중 대부분은 건기로 요단강이 건천이지만, 이 시기에는 우기로 사람들이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때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명하였다(수3:6).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수3:7).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언약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버렸다(수15:15-16). 마치 홍해의 기적을 보는 것과 같이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수 있게 되었다(수15:16). 이 말씀은 하나님이 건너라고 하실 때, 주저하지 말고 건너면,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곳으로 건너온 자들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은 오늘날 교회의 목사이다. 목사는 교회를 담임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세상을 건너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축복한다.
오늘날 세계 초강대국의 미국의 뿌리는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순례시조’巡禮始祖, 순례자들이다. 이들은 오직 한가지 소원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자 항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네달란드로 그리고 신대륙으로 출발을 결정하고, 1620년 9월 6일 ‘Mayflower’호에 몸을 실은 102명은 대서양 행해를 시작했다. 도중에 강한 바람과 폭풍을 만나기도 했고, 힘든 항해 끝에 선원 한 명과 승객 한 명은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을 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한 아이가 출생하는 은총도 함께 했다. 마침내 1620년 11월 9일 육지가 보였다.
약 66일 동안 열악한 환경을 인내해온 승객들은 윌리엄 브루스터의 주도로 감사의 시로서 시편 100편을 올렸다. “1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100:1-5). 그리고 메사추세츠주州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향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단들이다. 이들에 의해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 각 각 개인에게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나에게로 건너오라고 하신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찾고 건너오기를 원하시는 것을 찾기를 바란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이 건너시라는 것을 건널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시작하면서,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생활을 증거했다. 지금 코로나 19를 통해 한국교회와 우리가 겪고 있는 주일성수와 예배 앞에서, 왜! 2020년 신년의 시작과 함께 청아비전교회 강단에서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생활을 증거하게 하셨는지, 깨닫는 은혜를 기원합니다.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생활을 어렵게 하는 강을 건너야 한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어렵게 하는 강을 건너야 한다. 적극적 복음전도와 증거생활을 어렵게 하는 강을 건너야 한다.
건너는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건널 때 세상을 따르지 않고, 니므롯과 같은 세상의 영웅을 따르다가, 종말의 영웅 적그리스도가 산채로 던져질 ‘유황불 붙는 못’, 음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에벨은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영웅 니므롯을 따라 하나님을 반역할 때, 그들에게서 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에벨과 같이 영광스러운 믿음의 가문의 족보 천국 백성이 될 것이다. 창세기 10장에서 인류의 첫 번째 영웅 니므롯이 예표하고 있는 인류 마지막 영웅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말 것을 배웠다. 세상을 건너서, 오직 주가 다시 오셔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일념을 갖고, 교회를 떠나지 말고, 신앙에 집중하고, 믿음에 정진해야 한다. 종말의 도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