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니엘서 9장 칠십이레는 누구를 위한 종말 계시인가?
칠십 이레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69이레까지를 예수님의 초림으로 보는 데에는 다수가 의견을 같이 한다. 문제는 1이레인데, 이 사건이 69이레와 바로 연결된 지난 과거인가? 아니면 장차 종말인가에 대한 이견이 팽배하다. 전자로 볼 경우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한 이스라엘 침공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과연 맞는 해석인가? 지금까지 2, 7, 8장을 연구하면서, 그 맥에서 볼 때, 마지막 한 이레 또한 장차라는 미래에 있을 계시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다니엘서 전체 구성으로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칠십 이레를 해석할 때는 이 계시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다니엘은 바벨론이 메대 바사에 패망한 이후에도, 메대 바사의 총리로 다리오1) 왕의 총애를 받았다(9:1). 다리오 통치 원년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는 말씀을 깨닫는다(9:2). 동족이 이국에서 유수생활이 마침표를 찍을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칠십이레는 이스라엘의 포로 70년 생활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어서 다니엘은 민족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9:3-19).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낸 가브리엘을 통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다(9:24). 그렇다면 칠십이레는 이스라엘 포로 70년과 관계가 있고, 다니엘에게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은 유대인이요. 예루살렘이다. 이것을 이방인으로 교회로 보면 안 된다. 우리가 구약을 해석할 때, 신약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른 것이다. 그러나 구약을 신약으로 해석한 해석을 구약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이방인과 교회로 볼 수 있다. 신약으로 해석할 때 말이다. 오늘은 이방인과 교회가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롬4:10;갈6:16). 그러나 다니엘의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이방인과 교회로 바꾸면 안 된다. 그것은 그대로 유대인이며 예루살렘으로 보아야, 선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칠십이레와 포로 70년은 어떤 관계인가? 이에 대해 한 학자2)는 바벨론 70년 유수에 대한 가중加重 처벌로 해석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한 것으로 모든 것을 마친 것으로 알았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70년의 7배3)에 해당하는 형벌이 칠십이레 490년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가서야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타당한 설명이다.
유대인들은 2천 여 년 전 구원자가 오셨음에도, 메시아를 거역하고 배격했다. 지금까지 그들의 배교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는 날이 온다. 바로 칠십이레가 차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현재의 세상도 천상도 아닌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이다(9:24). 유대인들에게 2천년 교회시대는 암흑이다. 알지 못한다. ‘봉함’되었기 때문이다(12:4). 그렇기에 그들은 교회시대가 마쳐진 다음 구원의 시대가 도래 하고, 적그리스도의 잔혹한 통치에서 비로소 깨닫고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실현되는 나라인 천년왕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을 많은 이들의 예수님 초림이후로 해석하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였는가? 그렇지 않다는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 나라에서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즉 천년왕국에서 유대인도 이방인도 한 분 주님을 왕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9장 칠십이레의 기록목적이다.
칠십이레의 시발을 알리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을 느혜미야 2장 1,5절에 근거 제 3차 귀한령인 아닥다스다 왕 20년인 BC 445년 본다(9:25). ‘일곱 이레’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 며는 난해한 구절이다. 중건된 성벽의 역사는 49년이 아니라, 52일로 마쳐졌기 때문이다(9:25;느6:15). 필자는 이에 대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는 단순히 건축하라는 법령과는 달리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법을 집행할 행정관과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권까지 부여했다(스7:12-26). 관리들의 주택과 재판소, 거리와 성벽 등의 건축을 허가했다.…성경에는 7이레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성전을 완공하고 길거리가 복구되어 예루살렘성이 복원되는 데는 꼭 49년이 걸렸다.”는 해석을 따른다.4)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이레를 연도로 환산하면, 7이레가 지나고, 62이레의 도래는 곧 69이레가 온 것을 의미한다. 69이레는 햇수로 483년이다.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했을 때의 일이다(69×7=483). 그러면 이 수효에서 중건령이 내린 BC445년을 제하면 AD38년이 된다. 이 38년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으로 산출된 연대지만, 이 연대는 정확히 계산된 연대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과 유대력의 차이가 있고, 서기력 또한 4년에서 많게는 8년이 차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38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다고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남은 것은 한 이레 7년이다. 성경은 육십 구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장차’라는 시기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 ‘장차’에 대하여 원문에 기록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 단어의 기록도 중요하게 보이지만, 성경 전체의 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2, 7, 8장과 연결해 볼 때, 이 기간 역시 종말의 때임을 알 수 있다.
장차는 ‘한 왕’의 등장으로 시작된다(9:26). 이 자가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고 하였다(9:26). 이 말씀은 마치 AD70 티투스가 예루살렘에서 자행된 파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어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과연 티투스가 한 일인가? 또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는다고 했다(9:27). 이 또한 티투스가 한 일이 아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더 더욱 티투스가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한 왕을 티투스로 대입하면, 이 계시는 미래가 아닌 과거의 사건이 되고, 교회에는 종말의 계시가 닫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의문을 갖는다. 티투스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7장에서는 ‘작은 뿔’로 9장에서는 ‘한 왕’으로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누가복음 21장 20절에는 ‘예루살렘을 에워쌀 군대’의 지도자로 보는가? 그게 전부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교회시대와 이스라엘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9장의 칠십이레의 핵심은 유대인에 대한 종말 계시이다. 70년 유수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들에게 내린 7배가 더한 형벌이다. 유대인들의 구원은 장차 등장할 한 왕인 적그리스도의 핍박 속에서 깨닫고,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는 말씀과 같이 이방인과 함께 주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계1:7). 그리고 메시아왕국으로 오인한 천년왕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尾註>
1) 다리오(Darius)는 메대의 군주이자. 바사 제국(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BC585-529)의 장인이다. 두 나라가 병합 메대는 바사에 흡수되었다. 고레스는 그 이후 다리오에게 일정한 지역을 지배하게 하였다. 성경은 이에 대해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단5:31).
2) 구자수 박사는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큰빛교회 담임자이며, 메가포스원어연구소를 통해 성경 원어 사역을 펼치고 있다.
3) “17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레26:17-18)
4) 이강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말씀하신다』, 도서출판 종려가지, 2017.10.20.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