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 사람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5:10-12
오늘날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으로 불리는 ‘산에 올라가 앉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에게 ‘입을 열어 가르쳐’ 전하셨습니다(1-2). 이를 산상수훈山上垂訓,the Sermon on the Mount 또는 산상보훈山上寶訓 그리고 산에서 하신 설교라고 해서 산상설교山上說敎라고도 부릅니다. ‘기독교교의 대헌장’ 또는 ‘기독교 윤리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주옥같은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사모함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은 ‘팔복’Beatitudes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은 유 대인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복과 달랐습니다. 다음 글을 읽고 그 차이를 답하시오(마태 복음 5장 3-12절을 먼저 읽은 후, 아래 신명기 28장 3-6절을 읽으세요.).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3-6).
율법에 명시된 구약적 개념의 복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이라면, 신약적인 주님의 복은 영적이고 내적이고 이상적理想的ideal 복이다. 인간적으로 구약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얻고 싶지, 신약 마태복음의 복은 지금 당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주시기 전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이라는 전제가 있다(신28:1-,13-14.참고/레 26:3-13;신 7:12-24).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신28:15-19). 그러므로 하나님 명령과 규례를 떠난 물적 외적 현실적 복들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화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2.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명령과 규례’로 주신 율법을, 준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모든 복을 받으려면, 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 내 안에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 내 마음이 하늘나라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가진 것이 여유롭지 못해 눈물을 삼킬 때도 있지만 주님의 위로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약삭빠르지 못해 뒤처지는 것 같지만 주님의 인도를 믿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 맛난 음식, 좋은 여행, 기쁜 나날이 아니어도 주님이면 만족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을 때 주님의 돌보심을 확신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욕심을 버리고 비워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서로의 이해를 위해 노력할 때 주님의 자녀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0-12). 복음을 위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앞에서 하늘에서 면류관을 준비해 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나를 믿는 너희는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이 없을지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외적 자랑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외적 자랑이 없을지라도 마음이 빼앗기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뜻대로 될 때는 좋지만, 현실의 장벽에 막히면, 마음에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현실에서 뜻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산상수훈 첫 번째 가르침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2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막10:29-30.참고/마19:27-29;눅18:28-30).
3.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은 ‘온전’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이제는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요.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리라’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17-18). 만약 그렇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19-20).
노하지 말라. 구약의 율법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한자는 형벌을 받게 될 것리라고 하였지만, 신약의 복음은 ‘형제에게 노’를 발하고, ‘라가라’ 돌대가리야 비하하고, ‘미련한 놈이라’하여도 심판받고 공회에 잡혀가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22). 형사 처벌을 받는 범죄가 아니라도, 마음을 무너뜨리면, 격한 행동이나 극한 선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것을 살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고소인과 함께 법정으로 향하는 노중에라도 화해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 주고, 감옥에 가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5-26). 이것은 사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노를 발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마19:9;막10:11-12;눅16:18.참고/출20:14;신 5:18).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는 구약의 율법입니다(27). 신약의 복음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8). ‘음욕’을 품지 않는 또는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간음한 사람에게 돌을 던져 그가 실족하게 했다면, 실족하게 한 것이 오른손이면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29-30).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타인의 간음을 보지 말고, 자신의 음욕을 보고 겸허하라는 말씀입니다.
맹세하지 말라(33-37.참고/레19:12;민30:2;신23:21).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시면서(참고/레19:12;민 30:2;신 23:21),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 신약의 복음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면서,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34). 하늘은 하나님,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 예루살렘 큰 임금성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35).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안 어느 곳에서든지 맹세는 하나님에게한 것입니다(참고/출20:7;레19:12;민30:2).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맹세는 물론 인간 사이 맹세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맹세하지 말고, ‘예’, ‘아니오’만 하라고 하십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만 답하는 것입니다(37).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나친 것에 빠지지 말라,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참고/눅6:29-30). 구약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했지만(38), 신약 복음은 악한 자에게 대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9-42). 주님은 우리에게 내키지 않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강건한 속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엡3:16.참고/롬7:22;고후4:16).
원수를 사랑하라(참고/눅6:27-28,32-36). 구약 율법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였지만(43), 신약의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43-47). 주님은 우리에게 이방인, 세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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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48). 산상수훈의 두 번째 말씀은 온전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산상수훈 두 번째 가르침 온전은 마음을 위 두는 것입니다.
4. 산상수훈의 세 번째 말씀은 ‘빛과 소금’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3-15.참고/막9:50;눅14:34-35).
소금은 맛을 내고 빛은 밝음을 냅니다. 맛은 향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하나님에게 올려드린 제물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후2:5). 예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라(요일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행26:23). 우리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맛, 향기와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사43:2).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 찬송, 영광입니다. 창조자의 피조물인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영광이 있을 때, 누구 앞에서도 빛과 소금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명하셨습니다(창12:1). 그런데 아브라함과 아내 사래 그리고 조카 롯까지 달랑 세 명에 불과한데 ‘내가 너로 큰 민족’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12:2). 그런데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 즉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이 하나님이 그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행7:2). 갈대아 우르는 문명이 발달하고 상업이 번영하고 우상이 창궐했던 곳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영화가 가득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브라함은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가진 아브라함의 이름의 뜻이 “열국의 아버지” 모든 자의 아버지입니다(창17:5).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창17:6). 아브라함은 한 사람인데 그를 조상으로 믿는 이들은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 언약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첫 번째 아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자신들이 적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입니다(롬4:16).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 번성한 민족과 나라들이 세계에 가득합니다. 왕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향력이 빛과 소금입니다. 그럴 수 있는데에는 아브라함에게는 메소보다미아 찬란한 영광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 역사, 응답, 능력, 복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산상수훈 세 번째 가르침 빛과 소금은 마음에 영광을 가지는 것입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드립시다.
①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내세에 영생과 현세에서도 약속하신 백 배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② 두 번째 말씀 온전은 마음을 위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가르침. 노를 발하지 않아 상대가 극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 겸허히 자신의 음욕을 보는 것, 지나친 유혹에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게하는 것, 대적자가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것.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마음을 위에 두게 하옵시고,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셨사오니, 우리에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내리어 주옵소서.
③ 세 번째 말씀 빛과 소금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인 찬송, 영광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에 영광이 있게 하시고,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역사, 응답, 능력, 복을 나타내 주시옵소, 그것이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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