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천국 문으로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7:13-14
1. 산상수훈의 일곱 번째 말씀 ‘열매 : 마음에 영혼을 가져라’ 글을 읽고 의견 나누시오.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하셨습니다(16,20). 그런데 열매의 배경에 대해 ‘거짓 선지자’가 ‘양의 옷을 입고’, 위장을 해서, ‘노략질 하는 이리’처럼 본색을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15). 좋은나무로 아름다운 열매와 못된나무로 나쁜 열매 구분이 ‘노략’擄掠,Carry Off입니다(참고/삿5:30;17:3). 제 것이 아닌데, 남의 것을 제 것으로 갈취하는 행위입니다. 노략의 원조는 마귀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는 다고 하였습니다(벧전5:8.). 거짓선지자는 그 아비 마귀와 같이 노략이 목적입니다(요8:44). 처음에는 선으로 가장 하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가 ‘주여 주여’하였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선지자 노릇 하며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 ‘그때’, 마지막 때 예수님은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하셨습니다(21-23). ‘불법’(23). 양들을 노략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강도요,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는 삯꾼이기 때문입니다(요10:10-13).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1;요6:40.참고/요10:11). 이 둘은 별개가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선한선지자는 예수를 믿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갈3:19). 거짓선지자는 빼앗는 노략이지만, 선한선지자는 해산입니다. 새생명을 잉태하고, 태중에서 모든 것을 아이에게 주고, 가장 큰 기쁨인 출산을 얻는 것입니다. 영적 해산의 시작은 영혼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선지자로 하나님께 드릴 열매 가운데 첫 번째인 영혼을 품어야 합니다. 산상수훈 일곱 번째 가르침 열매는 마음에 영혼을 품는 가지는 것입니다.
2. 산상수훈의 여덟 번째 말씀 ‘간청 : 마음에 선의를 가져라’ 글을 읽고 의견 나누시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7-8) 이 반복은 간청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각 각 다른 것이 아니라, 강청의 당위성을 각도와 강조를 달리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청의 중요성 후,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10-11). 간청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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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간청의 비유로 멀리 사는 벗이 여행 중 예고 없이 한밤중에 찾아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눅11:5).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풍습 가운데 비슷한 것 가운데 손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벗에게 내어 줄 떡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네 절친 집에 찾아가, 불러 깨우고는 ‘떡 세 덩이만 꾸어주게’라며 사정을 합니다(눅11:5-6). 그러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며 거절을 합니다(눅11:7). 절친이 단호히 거절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문은 목재가 아닌 천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침이면 천막을 걷어 지붕 위에 올리고, 돌로 궤여 놓습니다. 그리고 잠자리를 들기 전 돌들을 치우고, 천막을 내린 다음 쉽게 열려지지 않도록 돌덩어리로 눌러놓습니다. 또 방 하나에 모든 식구가 함께 잠을 자다보니, 가족들 어깨가 끼일 정도로 붙어 잠을 자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밤중에 누가 찾아와 아빠가 일어나면, 온 식구가 깨어나야 하고, 천막으로 닫혀 있는 문을 열기 위해 다시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절친이 결코 야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달라고 하니, 식구가 깨어야 하고, 천막을 말아서 지붕에 올려야하고, 내일 쓸 밑 떡을 내주어야 하지만, 결국 떡 세 덩이를 주고 맙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11:8). ‘간청’입니다.
이 간청함은 벗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적용할 때 간청에 선의를 가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간청이 선의이어야 합니다. 선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간청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선의인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 밤새 심문과 매질과 채찍으로 빈사瀕死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한 말씀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눅23:34). 거반 죽은 것과 같은 몸으로 입을 열어 말할 힘도 없는데도,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간청했습니다. ‘예수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주님은 끝까지 선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청을 비유 하신 후,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눅11:10). 마음에 하나님의 뜻인 선의를 품은 자의 간청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산상수훈 여덟째 가르침 간청은 마음에 선의를 품는 것입니다.
3. 산상수훈의 아홉 번째 말씀 ‘비판: 마음에 긍휼을 가져라’ 글을 읽고 의견 나누시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 비판을 금하셨다 해도, 책망까지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못할 때면 어김없이 책망합니다. 다만 ‘형제’ 교회 안에서, 형제끼리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용납하지 못해 말로 상처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3). 이것이 비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아니라, 세상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이라는 말은 ‘목걸이’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6). ‘목걸이를 개에게 던지지 말라.’에서 개는 애완견이 아니라 사납고 더러운 들개를 말합니다(6). 그 가치를 모르는 개에게 값비싼 목걸이나 귀한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Cast Pearls Before Swine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도 같은 의미입니다(6).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 영생의 복음을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함부로 던지듯이 주어서는 안 됩니다(참고/막4:23). 천국의 가치를 모르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개와 돼지처럼 물어뜯거나, 짓밟고 변을 놓고 뭉개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거룩한 복음, 거룩한 예수, 거룩한 말씀을 전할 때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비판받아야 할 사람이 없으며, 비판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비판을 싫어합니다. 그렇기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면 그 비판으로 비판을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 그러므로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않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황금률로 불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와도 일맥상통합니다(12).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3). ‘티’, 먼지가 눈에 잘 들어가듯이 눈에 잘 보이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둑질, 간음, 살인 등 누구나 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보’란 너무 커서 아예 죄로 생각되지도 않는 너무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 있는 죄입니다. 교만이요, 불신앙이며, 외식이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죄요, 성경으로 말하면 바리새인과 같은 죄인 것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엡4:23). 예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7). 우리는 남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평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형제간의 관계는 비판하는 관계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이상 남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 아홉 번째 말씀 비판은 마음에 긍휼을 품는 것입니다.
4. 산상수훈의 열 번째 말씀 ‘비판: 마음에 생명을 가져라’ 글을 읽고 의견 나누시오.
예수님의 탄생부터(마1:23.참고/사7:14), 잡히시고 운명하시기까지,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분입니다(시22:1-21;마25:52-54;막14:48-49).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요19:30). 예수님은 이렇게 친히 말씀의 순종에 본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누구든지 이 말 (산상수훈)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시며,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24-25). 순종을 반석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반석 즉 순종에서 세워져 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문제가 쏟아지고 사고가 나고 환난이 불어와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인도하는 문’ ‘좁은 문’으로 들어섰습니다(13-14). 좁은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14). 주님의 택자가 가는 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다(13). 세상의 대중이 찾는 넓은 문을 향해서는 안됩니다. 좁은 문은 생명이고 넓은 문은 멸망입니다. 좁은 문으로 걸어가려면, 순종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을 위해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참고/대하6:13;단1:8,6:7-10). 넓은 문의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왜 너만 어려운 길을 가느냐며 본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본때 나게 살아봐야 할 것 아니냐는 충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길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순종이 마음을 덮고, 좁은 문으로 향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이끌고, 생명, 구원, 영생에 안착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이루고도, 넓은 문에 들어섰다면, 멸망, 음부, 영멸이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종국이 생명, 구원, 영생이면 가장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첫 마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심령에 새겨야 합니다(3). 천국은 생명, 구원, 영생을 가진 자가 입성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순종하는 자의 마음에는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 생명을 잃지 않습니다. 생명, 구원, 영생을 가진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28-29). 주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 열 번째 말씀 순종은 마음에 생명을 갖는 것입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산상수훈 일곱 번째 가르침 열매는 마음에 영혼을 품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못된 나무로 양을 해치고 노략하는 거짓선지자를 물리치게 하옵소서. 좋은 나무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양을 살리는 선한선지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드릴 가장 첫 번째 열매는 영혼입니다. 마음에 영혼을 품고 전도하여 구원받고 영생 얻게 하는 영적 해산을 감당하옵소서.
② 여덟 번째 가르침 간청은 마음에 선의를 가지는 것입니다. 벗을 위해 한밤중 절친을 찾아가 떡 세 덩이를 구했습니다. 선의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날마다 몸부림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인 선의를 갖고 간청하여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약속을 받게 하옵소서.
③ 아홉 번째 가르침 비판은 마음에 긍휼을 가지는 것입니다. 함께 거룩한 자녀된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심 같이 하여, 형제와 함께 세워가게 하옵소서.
④ 열 번째 가르침 순종은 마음에 생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주옥 같은 말씀에 듣고 날마다 무릎을 꿇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말씀 순종으로 넓은 문의 유혹을 이기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천국으로 이르게 하옵소서. 인생의 종국이 천국인 가장 복이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랑하고 중보하는 모든 이들도 말씀에 순종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마음에 천국가는 생명을 가지게 하옵소서.
⑤ 다니엘은 황제 앞에서도, 우상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며, ‘뜻을 정’하였고, ‘삼십일 동안에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금령’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뜻을 정하여 하나님 말씀 순종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상함받지 않고, 바벨론에 이어 바사 제국에서도 총리 중에 총리로 세움 받았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고 역사를 체험하는 다니엘 21일 기도회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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