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예레미야 29:4-10 2025.08.31. 主日禮拜
“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4-10)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수없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응답이 우리에게 내리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에도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렘29:7). 이것은 당연한 말씀인데요.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면,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나” 의아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29:7). 거기까지만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는 것인데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을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 즉 포로로 끌고간 도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자신들을 포로로 끌고 간, 적국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입니까?
지금 유대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간 자들이 누구입니까? 본문 윗절을 읽겠습니다. “1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렘29:1-3). 여기서 보면,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라는 말씀을 볼 때, 지금 유대민족이 고국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간 성읍은 바벨론인 것을 알 수 있고요. 이 바벨론 왕은 느부갓네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과 느부갓네살 왕에 대해서는 두 주전 “교만과 굴복” 제하의 다니엘 4장 28-37절 말씀, 삼 주전 “우리는 반드시 살아 남는다” 제하의 에스겔 37장 7-14절을 통해 들었던 인물이기에, 성도님들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상기 본문인 다니엘과 에스겔 그리고 오늘 본문인 예레미야는 모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끌려갈 당시 활동한 동 시대의 선지자들입니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II,재위BC604-562왕이 이끈 바벨론은 세 번에 걸쳐 남 유대를 공격하는데요. 1차는 BC 606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군, 왕족의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왕하24:1-2). BC 597년 2차 재침공 때는 유다왕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들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4:10-14). 그리고 BC 586년 3차 침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왕하25:9-12;대하3:1),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25:6;렘52:9-11).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의 직선거리는 850km이지만, 실제 이 거리를 도보로 통과하려면 약 1500km가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번의 왕복거리입니다. 그 노정은 사막을 건너고 유브라데 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사막은 40도 넘고 밤이면 영하의 기온으로 너무도 춥습니다. 그들의 무리 속에는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임식과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적어도 4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은 포로로 그 길을 따라 끌려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에 유대민족이 포로로 끌려간 ‘성읍’은 이방 나라 바벨론입니다(렘29:1-2,7).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이방 나라의 평안을 구하고, 이방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7).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을 하셨고요. 예루살렘에 있던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기록한 편지를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 민족에게 전한 것입니다(렘29:3). 하나님은 유대민족에게 지금 포로로 끌려온 이국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바벨론이 평안해야, 포로인 너희들도 평안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렘29:7).
이렇게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포로 생활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본문을 읽겠습니다. “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렘29:4-6). 이국인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거기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며, 아내를 맞이하고,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 며느리를 얻고, 너희 딸의 남편 사위를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고, 바벨론에서 번성하여, 인구가 줄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포로 신세라는 비참한 현실로 죽지 못해 살라는 말씀으로 보이세요. 포로의 신세인 이국에서도 고국에서처럼 당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으로 보이세요. 후자죠 맞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대민족에게 포로이지만, 바벨론에서 이국의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결혼을 하며, 자손을 번성하여, 자기 나라에서처럼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이국의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좋아서,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유대민족이 포로로 있는 곳이 어디에요.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평안해야 누구도 평안할 수 있어요. 맞습니다. 유대민족이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는 이국에 포로로 있는 동포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방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한 것은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과입니까? 포로의 기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본문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유대민족 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간을 정하셨습니다. 칠십 년입니다. 이 칠십 년이 차면, 다시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칠십 년 동안은 포로 생활을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칠십 년 동안은 자신들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필연인 포로생활을 이곳 바벨론에서의 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은 바벨론이 평안해야 유대 민족도 평안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예레미야가 선포했음에도, 반대자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자들은 다름 아닌 거짓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님이 부른 선지자가 아니라, 자칭 선지자인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대하여, 본문에 말씀합니다. “8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9:8-9).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대민족이 바벨론에서 칠십 년의 포로 생활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반하는 주장을 펼칠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할 것이니,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와 꿈쟁이들이 다른 말을 퍼뜨릴 것이니, 거기에 미혹되지 말고, 곧이 듣지도 말고,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외에는 다른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했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한다고 하십니다.
본문 다음 절에는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한 이후, 곧바로 거짓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스마야’입니다. ‘스마야’는 당시 제사장 ‘스바냐’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서신으로 보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26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7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렘29:26-28)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제사장 ‘스바냐’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인즉, 하나님께서 ‘스바냐’ 당신을 제사장으로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신 것은 ‘모든 미친자와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의 목에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여기서 ‘미친자와 선지자 노릇’은 누구를 지칭하는 거예요. 예레미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스마야’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이면서,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미친자, 선지자 노릇하는 자로 몰아붙이면서, 저런 자의 목에 나무 고랑과 쇠 고랑을 채워서, 선지자 노릇을 못하게 하는 것이 ‘스바냐’ 제사장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 바벨론이 망하기를 바라고, 맞서 대적해야지, 어떻게 이방 나라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태평하게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는 것입니까?” 저런 말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는 예레미야는 매국노요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들은 유대민족의 반응은 어떨까요? 예레미야보다, 그에 반하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에 미혹되는 것은 무엇을 모르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바벨론 포로 기간 칠십 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칠십 년 동안은 포로로 지내야 하고,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포로인 유대 민족도 평안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고 자손을 번성해야, 훗날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국가를 재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조국을 패망시킨 바벨론 같은 이국을 위해 평안을 구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느냐며 유대민족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앞에서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대 민족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이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뜻을 안 예레미야는, 유대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6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7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렘27:6-7). 하나님이 유대를 바벨론 손에 넘기셨으니, 그 바벨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렘27:12). 바벨론 편에 서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거짓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9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10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렘27:9-10).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을 따르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유대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릅니다.
나중에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서기관 바룩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지만, 유대 왕은 부하를 통해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가져오도록 명하고, 부하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베고 화로 불에 던져,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렘36:23).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말에 미혹된 제사장과 고관들은 왕에게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이 사람을 죽이소서’라고 간청합니다(렘38:4). 이를 받아들인 왕의 명에 따라, 예레미야는 감옥 뜰에 있는 구덩이 진창에 던져저 죽음 직전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렘38:6). 매질도 수없이 당해야 했고, 목에 나무 고랑이 씌워지는 큰 고통도 당해야 했습니다(렘20:2)
하나님을 떠난 유대를 징계하시기 위해 바벨론에 넘겨주었으니, 바벨론 편에 서서 목숨을 건지라는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도 이렇게 큰 고초를 예레미야야가 당했는데요. 오늘 본문에 그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말에는 얼마나 분개했겠습니까? 그러니 유대의 왕을 비롯하여, 고관과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까지도, 모두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에 미혹 당합니다. 이들은 무엇을 몰랐기 때문이라고요. 하나님의 정하신 징벌의 기간인 칠십 년을 모르고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까? 오늘 설교 제목은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이 듣고 들었고, 앞으로도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기도 가운데, 우리를 본문의 유대 민족으로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이국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 때, 기도할 수 있는가 입니다. 즉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세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칠십 년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칠십 년은 하고 싶지 않아도 포로로 지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압제한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때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실 때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기간 동안 기도 하면,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시면, 기도할 수 있는 데까지,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에서 우리가 다짐하고 실천하여야 할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할 때,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즉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려고 할 때, 우리 주변에는 “뭐 그것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말을 귀에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또 하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결과를 보자고요. 결과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포로 중인 유대 민족이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바벨론의 종국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눈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51:24).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51: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의 성벽은 훼파되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렘51:58).
지금까지 합독한 이 말씀들은 유대를 패망시키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 바벨론의 최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유대민족을 침략한 것은 누구를 공격한 것이요. 하나님을 공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훗날 바벨론을 철저히 파괴시켰습니다. 바벨론은 단지 하나님을 떠난, 유대민족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채찍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포로 생활을 통해, 유대민족이 깨닫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도구인 바벨론은 멸망 받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기도인 것이에요. 예! 맞습니다. 유대민족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큰 틀에서 볼 때, 포로 기간 동안, 바벨론은 유대 민족이 번성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기도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결국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제국, 바사를 통해 바벨론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유대민족의 포로생활의 칠십 년이 찼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한 날 칙령을 선포합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스1:1-2). 이 말씀에 보면, 유대민족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도록 고레스가 선포를 합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감동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기 위해 고레스를 감동시키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칠십 년 전, 오늘 본문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렘29:10).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포로로 압제하는 자들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하는 것입니까? 결국은 유대민족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 때, 우리는 순종하여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여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려고 할 때, 우리 주변에는 “뭐 그것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말을 귀에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러한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선지자요 점쟁이요 꿈쟁이 그리고 복술가, 술사, 요술가들이라고 예레미야 27장 9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기도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이제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기도는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바벨론 세상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이 세계는 이국입니다. ‘본본향’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히11:15). 본향은 우리들의 고국을 말합니다. 그러나 다음절에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니, 우리를 위하여 이 ‘성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합니다(히11:6). 즉 우리의 고국은 대한민국 이 세계가 아니라 ‘더 낳은 본향’ 천국이 진정한 고국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지금 고국인 천국이 아닌 이국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 대하여, 야곱은 구약에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창47:9) . 베드로도 신약에 ‘나그네’라고 말씀합니다(벧전1:1). 우리의 신분은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지금 이 땅인 이국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분이 나그네라고 한, 베드로는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2:13-14). 이 말씀에 ‘왕’과 ‘총독’이 나옵니다. 이들은 국가의 권력을 잡은 자들입니다. 왕과 총독은 곧 세상 나라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권력가 즉 ‘국가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과 동의합니다.
왕과 총독 즉 국가를 사랑해서만, 국가의 제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제도를 따르는 것은 사회의 질서가 되고, 그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불의해도,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대한민국이 평안해야 누가 평안하기 때문입니까? 내가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라는 말씀이 나옵니다(계14:8). 바벨론이 오늘 본문에서는 과거 바벨론 제국을 말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성 바벨론 모든 나라’ 지구 전체를 상징합니다. 창세기에서 바벨탑은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습니다. 본문의 바벨론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장차 큰 성 바벨론, 이 지구 전체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은 죄악의 도성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달갑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평안해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갈 때, 여객기를 이용합니다. 이륙한 후 비행을 시작하고, 안전하게 착륙을 마치면, 저는 가끔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이 비행기에 있는 분들은 모두 나 때문에 살았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위해 저를 살리셨고, 저와 함께 한 분들도 살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부단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에 죄수로 이송될 때, 큰 태풍에서도 승선한 이들 가운데, 한 명도 해함 받지 않고 모두 생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행27:24).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기로 계획하셨고, 그렇기에 풍랑과 난파 중에도, 바울을 살리셨고, 그로 인해 바울과 승선한 사람들도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살리시기 위해 대한민국을 살리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 위해 지난 5천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키신 것닙니다. 이것이 우리릐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세상이지만, 그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하는 짓을 보면, 당장이라도 번개가 그들 위에 쏟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가 성민의 나라가 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미국을 실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8월 25일 정상회담 3시간 전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서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숙청Purge이나 혁명 같다”며,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는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미군기지와 교회를 압수 수색했다는 사실을 정보원으로부터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내란 특검의 활동에 대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께서 차분하게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이 오해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이전에 회담장에 들어가지 전에 몰려있는 기자가운데 한 명이 “지금 한국에서는 교회가 숙청되도 있다는 맞습니까?”라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의 귀에 대고 살짝 “저런 것을 fake news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트럼프는 외국 정상과 회담을 할 때 상대의 약점을 끄집어내어서, 자기에게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네트워크에 그와 같은 글을 올렸을 때, 국내에서 환호하건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그러한 일에 교회가 관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달 전 쯤 특검에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두 분 목사님의 사무실, 자택을 압수 수색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경찰이 광화문에서 정치 활동 주도하는 한 목사님의 교회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목회자인 저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애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에 대항하여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파투破鬪 내려는 행위에 목사와 성도가 개입하는 것은 성경적 자세가 아닙니다. 예전에 자녀가 많은 가정에서는 형제끼리 사소한 것으로 치고받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학교나 동네에서 내 동생이 누구에게 맞았다는 말을 들으면, 형들이 당장에 쫓아가서 동생은 팬 놈을 작살을 내놓습니다. 이게 형제입니다. 집안에서는 서로 싸울 수 있으나, 밖에서는 자기 형제 편을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목회자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자국의 대통령을 폄하는 것은 자신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성도님들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어느 대통령이 되었건 힘을 다해 기도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결국 누가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교회가 살고, 믿음의 성도가 살고, 내 가정과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바벨론 세상, 불의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 뜻과 의를 이루는 통로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벨론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
두 번째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이지만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바벨론교회라고 지칭합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하여 한 번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입니다. 진리를 여러 형태로 변질되어 성도들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WCC, 로잔 그리고 최근에는 WEA로 큰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지지하는 교회들 가운데는 교회라는 간판은 달았지만 강단에서 예수님의 유일성은 거부되고, 종교다원주의가 설파되는 교회들입니다. 이러한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이 시대가 배교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 종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종교를 통합하는 종교다원주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바벨론 교회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6:43).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전11:1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5:37)
우리는 이러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교회들이 우리 교회와 같은 교회가 아니지만, 이 바벨론 교회들이 배교를 버리고, 진리 오직 예수 신앙으로 돌아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성도이건, 우리가 기도하는 어떤 영혼이건, 이러한 배교의 교회로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배교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막아서고, 음해하고, 옥에 가두도록 한 것이 불신자이었습니까? 같은 선지자였습니까? 거짓 선지자이지만, 엄연히 선지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스마야 선지자, 거짓 선지자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한 거짓 선지자에 유대의 왕과 고관과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까지도 미혹이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그래도 교회에 다니잖아”하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다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 교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교회 문제로 열외 시켜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한국교회가 바벨론교회, 배교에 빠지지 않고 유일한 구원자 예수만을 진리로 믿도록 기도하는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바벨론 교인을 위해 기도하라
세 번째로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또한 오늘 본문의 바벨론이 아닙니다. 또한 마지막시대 세상을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도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관점에서 성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성도라고 할 때,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공동체 가족들만 성도가 아닙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고 말씀합니다(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고린도 지역에 속한 고린도교회의 성도만 아니라, ‘각 처’ 즉 지구촌 어느 곳이든지,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만 성도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저와 여러분과 같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자는 모두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전 세계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동안도 전 세계의 성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관점에서,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평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을 따른 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떻게 고국을 패망시키고, 자신을 들을 포로로 끌고 온 자들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성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여과하는 성도들을 저는 바벨론 교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교회 전체의 어려움이 됩니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을 뜻을 모른 것은 무엇을 몰랐기 때문입니까? 칠십 년이라는 하나님이 정한 포로의 기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칠십 년 동안은 하고 싶지 않아도, 이국에서 포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국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평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여과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내 안에 장착되어 있는 여과 장치를 떼어 내어야 합니다. 어떤 여과 장치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변환시키는 여과 장치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변화시키는 여과 장치가 각 처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서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싫어하는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성도라 할 때,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공동체 가족만이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부르는 모든 성도가 다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 성도는 그럴 이가 없을 것이고요.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 가운데, 나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 어느 성도 소리만 들어도, 싫은 것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의 동역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보하는 것을 저의 은사로 알고, 중보시간이면 잊지 않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수가 상당히 많은데요. 구체적으로 숫자를 말하는 것을 아내가 듣고는 그렇게 중보 하는 영혼들 수를 얘기하면, 인간의 자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분을 위해 기도하는지, 그 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요. 그 많은 분을 기도할 때, 그 대상 중에 저를 좋아하는 분만 기도하겠어요. 제 가슴에 못 박은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어요. 예! 등에 비수를 꼽은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전에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임시처소에서, 지금 건물로 정식계약을 하고 공사할 때입니다. 가까스로 마련한 보증금을 건물주에 주고, 계약을 마치고, 공사를 시작하는데요. 저와 친지들이 무료로 봉사를 했기에 인건비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루 필요한 자재를 사와야 하는데, 물질이 부족 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중보를 하는 분이 계신데요. 멀리 안산에서 사시는 분이에요. 한창 공사로 바쁜 중에 중보는 그분의 아들이 찾아 왔습니다. 물론 그 아들도 제가 애정을 갖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수요일이었는데요. 예고 없이 찾아와 수요예배를 드리러 왔다는 거예요. 그날 공사를 정리하고, 예배를 같이 드렸는데요. 어머니가 드리라고 했다며, 예물을 강단에 올리는 것입니다. 예배 후 식사를 대접하고, 배웅을 한 후, 교회에 와서, 예물을 보니, 다음 날 사용할 재료비였습니다. 그 예물을 드린 분, 제가 중보를 하는 분이 저를 좋아하신 분이었겠어요. 제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하신 분이겠어요. 예!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저를 몹시도 공격했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항상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교회에 재정이 꼭 필요한 때, 예물을 보내오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3-44).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없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서 벗어난 바벨론 교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공격하는 성도들이 있더라도 기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더욱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나를 공격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것만이 될 뿐 아니라, 그분도 저와 교회에 협력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그분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이같이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전환 시키는 여과 장치를 떼어 내도록 기도해야 되고요. 그 가운데는 나를 공격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그를 위한 것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십니까?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9:11-14). 이 응답이 우리의 복이 된 줄 믿습니다.
정리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께 성도가 기도드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을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 하십니다(렘29:7). 어떻게 자신들을 포로로 끌고 간, 적국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II,재위BC604-562왕이 이끈 바벨론은 세 번에 걸쳐 남 유대를 공격하는데요. 1차는 BC 606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군, 왕족의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왕하24:1-2). BC 597년 2차 재침공 때는 유다왕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들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4:10-14). 그리고 BC 586년 3차 침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왕하25:9-12;대하3:1),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25:6;렘52:9-11).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의 직선거리는 850km이지만, 실제 이 거리를 도보로 통과하려면 약 1500km가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번의 왕복거리입니다. 그 노정은 사막을 건너고 유브라데 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길은 한 잦에는 40도가 넘고 밤이되면 영하로 무척 춥습니다. 무리에는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4개월을 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성읍’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렘29:1-2,7).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편지로 써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 민족에게 전하며, 그 이유에 대하여 바벨론이 평안해야 포로인 너희들도 평안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렘29:3,7). 이렇게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포로 생활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계신데요. 포로의 신세인 이국에서도 고국에서처럼 당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으로 보이세요. 후자죠 맞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대민족에게 포로이지만, 바벨론에서 이국의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결혼을 하며, 자손을 번성하여, 자기 나라에서처럼 살라고 하십니다(렘29:4-6). 그리고 이 이국의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좋아서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평안해야 포로로 잡혀간 유대 민족도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는 이국에 포로로 있는 동포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방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한 것은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 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간을 칠십 년으로 정하시고, 다시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렘29:10). 그렇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칠십 년 동안은 포로 생활을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칠십 년 동안은 자신들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필연인 포로 생활을 이곳 바벨론에서의 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은 바벨론이 평안해야 유대 민족도 평안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와 꿈쟁이들로 다른 말을 퍼뜨릴 것이니, 거기에 미혹되지 말고, 곧이듣지도 믿지 말라며, 예레미야 외에는 다른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했다고 하시며,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28:8-9). 거짓 선지자 ‘스마야’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 하나님께서 당신을 제사장으로 삼아 성전 감독자로 세우신 것은, ‘미친자와 선지자 노릇’하는 에례미야의 목에 ‘나무’와 ‘쇠 고랑’을 채워서, 선지자 노릇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이방 나라 바벨론이 망하기를 바라고, 맞서 대적해야지, 이방 나라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태평하게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는 것입니까?”라며, 예레미야는 매국노요 거짓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렘29:26-28). 유대민족은 예레미야의 예언보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벨론 포로 칠십 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동안은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유대 민족도 평안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고 자손을 번성해야, 훗날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국가를 재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조국을 패망시킨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느냐며 유대민족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대 민족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이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뜻을 안 예레미야는 유대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이 유대를 바벨론 손에 넘기셨으니, 그 바벨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렘27:6-7). 바벨론 편에 서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렘27:12). 그러나 이때도 거짓 선지자가 등장해서 바벨론을 따르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유대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릅니다(렘27:9-10). 그리고 예레미야는 감옥 뜰에 있는 구덩이 진창에 던져저 죽음 직전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렘38:6). 매질도 수없이 당해야 했고, 목에 나무 고랑이 씌워지는 큰 고통도 당해야 했습니다(렘20:2).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난 유대를 징계하시기 위해 바벨론에 넘겨주었으니, 바벨론 편에 서서 목숨을 건지라는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도 이렇게 큰 고초를 당했는데요. 그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는 말에는 얼마나 분개했겠습니까? 그러니 유대의 왕을 비롯하여, 고관과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까지도, 모두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에 미혹 당합니다. 이들은 무엇을 몰랐기 때문이라고요. 하나님의 정하신 징벌의 기간인 칠십 년을 모르고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칠십 년입니다. 그 기간은 내가 하고 있지 않아도 포로로 지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압제자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고 싶지 않아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실 때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시면, 기도할 수 있는 데까지,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짐하고 실천하여야 할 핵심입니다. 또한 지금도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뭐 그것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유대를 패망시키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 바벨론의 마지막을 예언하셨습니다(렘51:24,56,58). 바벨론은 단지 하나님을 떠난, 유대민족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채찍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포로 생활을 통해, 유대민족이 깨닫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결국 유대민족을 위한 기도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큰 틀에서 볼 때, 포로 기간 동안, 바벨론은 유대 민족이 번성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기도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결국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제국, 바사를 통해 바벨론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유대민족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도록 고레스가 선포를 합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감동시키셨습니다(스1:1-2). 바로 칠십 년 전, 본문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이곳(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렘29:10). 그러므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 때, 우리는 순종하여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여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자들은 스마야 같이 거짓 선지자요 점쟁이요 꿈쟁이들이요. 그것을 분별하지 스바냐 같은 어용 제사장입니다.
내가 기도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이제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기도는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베벨론 세상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의 고국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이 세계는 이국입니다. 우리는 고국 ‘본향’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히11:15).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나그네’라고 한 베드로는 ‘왕’과 ‘총독’, 권력가로 상징할 수 있는 ‘국가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했습니다(벧전2:13-14.참고/창47:9;벧전1:1). 이 말씀은 본문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과 동의합니다. 왕과 총독 즉 국가를 사랑해서만아니라. 국가의 제도를 따르는 것은 사회의 질서가 되고, 그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불의해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대한민국이 평안해야 우리가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달갑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평안해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 3시간 전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서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숙청Purge이나 혁명 같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는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또한 “미군기지와 교회를 압수 수색했다는 사실을 정보원으로부터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내란 특검의 활동에 대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께서 차분하게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이 오해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소셜에 글을 올렸을 때, 국내에서 환호하건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그러한 일에 교회가 관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검에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두 분 목사님의 사무실, 자택을 압수 수색한 적이 있고, 경찰에서도 한 목사님의 교회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목회자인 저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애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에 대항하여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파투破鬪 내려는 행위에 목사와 성도가 개입하는 것은 성경적 자세가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목회자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자국의 대통령을 폄하는 것은 자신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어느 대통령이 되었건 힘을 다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결국 누가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교회가 살고, 믿음의 성도가 살고, 내 가정과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불의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 뜻과 의를 이루는 통로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벨론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 두 번째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본문의 바벨론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이지만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교회를 바벨론 교회라고 지잋합니다. 한국교회는 WCC, 로잔 그리고 최근에는 WEA로 큰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지지하는 교회들 가운데는 교회라는 간판은 달았지만, 강단에서 예수님의 유일성은 거부되고, 종교다원주의가 설파되는 교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배교의 시대입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 종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종교를 통합하는 종교다원주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교회인 바벨론 교회들이 배교를 버리고, 진리 오직 예수 신앙으로 돌아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성도이건, 우리가 기도하는 어떤 영혼이건, 이러한 배교의 교회로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배교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막아서고, 음해하고, 옥에 가두도록 한 것이 불신자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이지만, 엄연히 선지자라고 불리는 스마야이었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에 유대의 왕과 고관과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까지도 미혹이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그래도 교회에 다니잖아”하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다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교회 문제로 열외 시켜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한국교회가 바벨론 교회가 되어 배교에 빠지지 않고 유일한 구원자 예수만을 진리로 믿도록 기도하는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바벨론 교인을 위해 기도하라. 세 번째로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본문의 바벨론이 아닙니다. 성도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공동체 가족들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저와 여러분과 같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자는 모두 성도인 것입니다(고전1:2).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전 세계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동안도 전 세계의 성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관점에서,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평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말을 따른 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여과하는 성도들을 저는 바벨론 교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교회 전체의 어려움이 됩니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을 뜻을 모른 것은 칠십 년이라는 하나님이 정한 포로의 기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이국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평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으로 여과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을 알지 못해습니다. 우리와 각 처에 있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변화시키는 여과 장치가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 가운데, 우리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 어느 성도 소리만 들어도, 싫은 것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의 동역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중보 대상자 가운데는 저를 좋아하는 분만 아니라, 제 가슴에 못 박은 분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예배당을 정식계약을 하고 공사할 때, 가까스로 마련한 보증금을 지불하고, 공사를 시작하는데요. 무료 봉사하는 분들이 있어 인건비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루 필요한 자재를 사와야 하는데, 물질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보를 하는 분 가운데 안산에 사시는 분이 있는데요. 그 아들도 제가 애정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고 없이 수요예배를 드리러 찾아 왔다면서, 어머니가 드리라고 했다며, 예물을 강단에 올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금액을 보니, 다음 날 사용할 재료비였습니다. 그 예물을 드린 분은 저를 좋아하시기 보다, 제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하신 분이었어요. 그럼에도 항상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교회에 재정이 꼭 필요한 때, 예물을 보내오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없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전환 시키는 여과 장치를 떼어 내도록 기도해야 되고요. 그 가운데는 진리에서 벗어난 바벨론 교인들로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그를 위한 것이 때문입니다. 원수가 어디에 있어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습니다(마10:36). 가정 안에서 믿음으로 충돌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배우자고 밉고, 자녀가 속상하게 해도, 가족들과 사는 동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최종 정리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대민족이 자신들을 포로로 끌고 온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그것이 곧 유대민족이 평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벨론 포로 생활 칠십 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 동안은 허고 싶지 않아도, 바벨론에 거주하며 포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바벨론이 평온해야 유대민족도 평온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적국들의 평온을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할 수 있냐며, 반대한 거짓 선지자 스마냐가 등장했습니다. 유대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 오늘로 말하면 목회자인 제사장도 그의 말에 미혹 당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기도는 이런 것까지도 기도해야되는가는 생각이 들 때도, 하나님이 기도하라면 기도하는데까지,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의 되어야 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먼저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불의하지만, 세상이 성민의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야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가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바벨론이 요한계시록에는 큰 성 모든 나라로 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둡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왕과 총독 즉 국가의 제도를 순복해야 합니다. 국가가 바른 일을 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의 질서이고, 곧 나를 위한 것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염세주의厭世主義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낙천주의樂天主義가 되라는 말도 아니고, 세상을 사랑하라는 말도 아니고,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세상을 위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본문의 바벨론도 마지막 시대 세상을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교회는 교회인데, 강단에서 진리를 전하지 않는 배교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벨론 교회로 지칭합니다. 진리란 우리의 구원자는 예수님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교회를 다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배교에 빠진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니라고 안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배교에 빠지지 않고,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합니다. 혹 내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교회라도, 성도가 다니는 교회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와 우리가 기도하는 영혼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공동체 가족들만 성도가 아닙니다. 지구촌 각 처에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분들이 모두 성도입니다. 그들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말씀에 반한 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전환시키는 바벨론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여과 장치가 떼어 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나를 공격하는 성도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싫어한다고, 잘되든지 말든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나의 동역자로 세우고, 그로 인해 나도 그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전환시키고, 하나님의 뜻 그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를 싫어하고, 공격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을 드렸지 않습니까? “기도를 멈추지 마라 저들(대적)의 힘이 우리를 압도해도 바로 역전되리라.” 기도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입니다. 만 백성에게 성도들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도록, 기도는 모든 여건을 역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려고 할 때, “뭐 그런 것 까지 기도해야 하는 가”라는 말하는 본문의 거짓 선지자, 점쟁이, 꿈쟁이와 같은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의 정한 기간까지 기도하라면, 즉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사명이면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기도는 이런 것까지도, 기도해야 되는가는 생각이 들 때도, 하나님이 기도하라면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그렇게 하여야 한다고요. 기도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하나님이 하라시는 기도를 드릴 때, “뭐 그런 것까지 기도해야 하는 가”라는 말하는 거짓 선지자, 점쟁이, 꿈쟁이와 같은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의 정한 기간까지 기도하라면, 즉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명령이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런 것까지도, 기도해야 되는가는 생각이 들 때도, 하나님이 기도하라면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 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왜! 그렇게 하여야 합니까? 도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①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끌고간 바벨론을 위해 평화를 구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여 그것은 따를 수 없다며, 유대 민족을 동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시간까지 포로 생활을 해야 하고, 그동안은 바벨론이 평화해야 유대 민족도 평안하고, 훗날 돌아가 나라를 재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② 바벨론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기에 대한민국도 이국입니다. 그럼에도 위해 기도해야하는 것은, 나라가 평안해야 우리가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건 위해 중보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③ 바벨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이지만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교회인 바벨론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배교에 빠지지 않고, 오직 예수 진리를 사수하게 하옵소서.
④ 바벨론 교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여과하는 바벨론 교인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로 인해 한국교회 전체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 어느 성도 소리만 들어도, 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아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동역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⑤ 기도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는 줄 믿습니다. 이런 것까지도, 기도해야 되는가는 생각이 들 때도, 하나님이 기도하라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 기도의 능력자, 기도의 체험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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