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끝까지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로마서 8:28-30) 이재현목사(25.11.30)

이재현목사 2025. 12. 7. 16:18

끝까지 善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말씀 : 로마서 8:28∼30 2025.11.30 主日아침禮拜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구원 목적 예수를 맏아들(영광)되게 하려 하심이다

오늘 본문은 불과 세 구절에 지나지 않는 짧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청사진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원계획을 어떻게 세웠으며 어떠한 단계를 밟아 그것을 완성하고 계시는가를 감히 우리 죄인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이 말씀에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금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종일관 겸손한 마음으로 이 말씀 앞에 설 때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진리를 깨닫는 은혜를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먼저 본문 28절을 주목해 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으니까?’ 우로 가나 좌로 가나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소지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소위 통속적通俗的인 낙관론樂觀論을 가르쳐주는 근거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통속적인란 말은 세속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낙관론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이치의 낙관론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신앙적인 낙관론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통속적인 낙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가 저절로 굴러가면서 선한 것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보면 안됩니다. 누군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이 말씀의 골자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까? 자기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29, 30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9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요,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위치를 혈통적인 의미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둘째 셋째 넷째…아들로 비유하여 말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을 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은 17장 1-5절에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들 뜻을 이루시고, 아들로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렸고,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한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 모든 족속으로부터 세세무궁토록 영광받으시도록 하는 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다(빌2:10-11).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5:12-13).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려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동생이 늘어나면 우리 예수님이 동생을 많이 거느린 맏아들로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많을수록 그 왕은 더 위대하게 보이고 그 왕권은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전도하는 것을 싫어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항상 마음에 깊이 새기고 세상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목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직접 해당되는 구원 목적이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28)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본받는다’는 말은 본래 같은 모양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모만 아니라 내면까지 닮은 것을 말합니다. 어떤 단순한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닮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은 이 본문을 가장 잘 해석해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17절의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도 가지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 23절에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느니라’ 역시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0절 끝에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게 됩니다만, 이것도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대로 닮은 자기 자녀로 만드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이유요 목적입니다.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입니까? 꿈을 꾸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같이 비천한 죄인이 주님과 영화로운 몸을 입는 다니 말입니다.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

29, 30절을 보면 이러한 구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가 순서적으로 나옵니다.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29-30).’ 즉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단계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이런 구원의 단계조차 모르고 살면 죄송한 표현이지만 약간 무식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다 알아도 바르게 정립되지 못해서 이단 사이비자들의 훼괴한 논리에 넘어 가기도 합니다. 여기 이재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바로 가리켜 드렸으니 우리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무식하지도 말고 이단 사이비에 넘어가지도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즉흥적으로, 내키는 대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거쳐 순서적으로 그 일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내가 어쩌다 믿게 되었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청아비전교회에 오게되었다는 생각도 삭제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왜 그런지 확실하게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미리 아신다’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떤 것을 미리 아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착한 데가 있을 것이라든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 등을 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그런 것을 모르실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미리아셨다는 것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조건으로 나의 선이나 공로가 될 만한 무엇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구원은 아무 조건 없이 무상으로 받습니다. 만일 나에게 착한 데가 있어서 그것을 미리 알고 구원하셨다면 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나의 공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절대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셨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자기 자녀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전지전능입니다. 언제 우리를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을 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벌써 우리 개개인을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아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정하신다’

 

그 다음으로 미리 ‘정하신다’는 것은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자녀다’하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자녀로 아셨고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못나고,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왜 나를 선택하셨습니까?” 하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 이것이 그분께서 들려주시는 유일한 대답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다음과 같이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선택의 교리를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이는 자비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절대로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을 무조건 좋아서 선택하셨습니다. 왜 무조건 선택하셨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택의 은혜를 두고 단지 기뻐하고 영광드리며 감사할 뿐입니다.

 

“‘부르신다’, ‘의롭게 하신다’, ‘영화롭게 하신다’”

 

다음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예수 믿도록 이끄신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시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과 함께 그분을 직접 보며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가지 오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죽은 몸은 땅에 묻혀 썩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하늘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시고, 아담이 범죄로 이루지 못한 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흰 보좌 심판에서, 우리의 썩은 몸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하여 우리 영혼과 결합하게 됩니다(‘혈과 육’,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고전15:50-54). 우리 몸이 속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자신은 완전무결한 새 인격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새사람으로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다섯 단계는 이미 이루어졌다

 

본문 내용은 우리의 구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진리가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는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일은 중도에 수정되거나 좌절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설혹 방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신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대로 이루십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헬라어 원문을 보면 29, 30절에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나라 문장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주어를 생략하는 예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말 번역에는 몇 번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을 놓고 우리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부분을 확인해 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하나님이 의롭다하셨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다”. 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자꾸 반복해서 말할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시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섯 개의 동사가 전부 과거 동사로 쓰여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성경의 독특한 어법입니다. 우리 말 성경은 마지막 것만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어법상 그렇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아셨다’, ‘정하셨다’, ‘부르셨다’, ‘의롭게 하셨다’. ‘영화롭게 하셨다’, 이렇게 이 모든 일은 이미 성사된 일입니다. 앞으로 될 일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다 끝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로 확실하게 해놓으신 일을 가지고 우리가 의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지금 예수 믿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미리 아신 것, 미리 정하신 것, 부르신 것, 외롭다 하신 것은 모두 과거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어떤 사람을 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어느 부인이 남편의 구원을 위해 밤낮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사람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남편이 아직 믿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이 내 남편을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모순이 있다고 생각됩니까? 아닙니다. 절대 모순이 아닙니다. 남편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아내에게는 남편을 위해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안 믿는 남편을 놓고도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계획하신 그 시점에서 볼 때 남편의 구원은 이미 성취된 과거지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5가지 단계 가운데서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전부 다 과거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이후 반드시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곧 완성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하나님

 

다시 28절로 되돌아가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털끝만큼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그 일을 빈틈없이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 중에서 흔히 사람들이 잘못 남용하기 쉬운 말씀으로 이 로마서 8장 28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서론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 구절을 가지고 무엇을 해도 만사형통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으니까 잘 될 것이다.’ 라고 잘못 적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본문을 과연 그렇게 해석해도 될까요?

 

이 말씀에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은 잘되는 것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좋은 일, 나쁜 일, 형통, 고난, 복, 불행, 스스로 행한 일, 살고 죽는 일 등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善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는 선은 우리가 몸의 속량 예수님과 같이 영화로운 몸을 입는 그 시간까지 ‘도움’이 되고 ‘관계’가 맺어지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 ‘터득한 교훈’,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온갖 경험을 통틀어서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작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만족스럽고 좋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유익한 것이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내가 병을 앓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를 잘 믿게 되었다면 그 병은 물론이고 병을 앓게 됨으로 생긴 모든 결과를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받도록 구원을 놓치지 않도록 구원의 완성하기까지,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작업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수로서 크게 성공하고 현재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많은 연예인을 양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 임명된 박 모 씨는 누가 보아도 큰게 출세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재혼한 부인이 이단으로 판명된 단체의 실질적 지도의 실형의 자녀입니다. 그 결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의 만남은 각 각의 결정입니다.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영향으로 성경에 반하는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가 믿는 예수와 다른 예수를 전하게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수많은 이성 가운데 정통교회가 금지하는 분을 만나게 된 걸까요? 반면 믿음과 전혀 관계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냥 그렇게 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의도적인 개입니다. 우리에게 초등학교부터 대학 청년까지 자녀들이 있는데요. 그들의 진로와 함께 배우자를 놓고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가 이성과 교제 중에 만약 구원에 이탈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녀의 감정과 관계 없이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이 되도록 작업하십니다.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하나님이 손을 써서 선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작업을 우리가 전부 다 경험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아신 것과 택하신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 편에서 전적으로 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부르심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겪으면서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부르셨다’는 말은 단순히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중생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효과적인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를 안 믿을 수 없도록 불러 놓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머리로 찬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드나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부르심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으면 그 사람이 근본부터 바뀝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28절에서 한 가지 우리에게 암시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 바꾸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은 입는 자들’이라고 해야 논리가 맞습니다. 그러나 왜 ‘믿는 자’라는 말 대신에 ‘사랑하는 자’로 말을 바꾸어 썼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를 테스트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하는가를 가지고 논해야 합니다. 단순히 입으로 믿는다고 하는 말은 신용하기 어렵습니다. 야고보는 이 사실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귀신도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정도는 다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참 믿음이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라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순수하고 참된 것은 속이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숨겨 놓을 수 없는 묘한 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학시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어머니가 그를 불러 세우고 하는 말씀이 애야 너 참 이상하구나. 사랑이도 빠진 게 아니냐?” 너무 놀란 아들이 뭘 보고 그러느냐고 했더니 어머니 대답이 전에 없이 집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녀서 그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못 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한다’는 것에는 우리의 감정, 지식, 행동, 이 밖에도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표출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그에게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직접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 하는 것을 보면 부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제로 믿게 하는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에 대해 자기를 간섭하고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싫어합니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1).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기를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 대신에 나를 높이기를 원하는 아주 못되고 고약한 본성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나의 생활을 간섭하신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한사코 하나님을 떠나 머리 도망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 성도, 교회의 권면을 간섭으로 여깁니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작가 존 번연John Bunya,1628-1688은 하나님의 목소리가 계속 따라 다니며 그를 괴롭힌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쳐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강제성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미리 알고 택하신 자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부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꽉 잡힌 사람은 도망을 다니면서도 그의 마음속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과거에 범했던 죄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또 가책을 받게 됩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성경책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왜 그의 마음속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강제로 그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믿는 자에서 사랑하는 자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머리로 ‘믿는 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으로 꺽어 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가지고 다루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허무감을 가지고 고민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을 통해서 괴롭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생활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낯선 한경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예수 믿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예수 믿게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작업이요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많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진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날까지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길입니다. 제가 여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의 짧은 인생을 간증한 것만 해도 며칠이 걸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목표를 두고 우리를 다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곁눈 팔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다 이용해서 다루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짓는 죄까지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범한 그 죄를 돌려서 영화롭게 되는 자리에 이르는 데 유익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까지도 통제하고 사용하셔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자리가지 인도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얻기까지 이처럼 의미 있게 다루고 계십니다. 좋은 일을 통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만을 소망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어느 것 하나 손해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다루실까요? 왜 사사건건 우리를 간섭하시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뒤에서 작업하고 계실까요? 그 이유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28절과 29절 사이에 중요한 접속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접속사를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냐하면’으로 시작됩니다. 곧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미리 아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나를 영화롭게 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쏟아 부르신 자녀가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그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그날까지 매사마다 간섭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구원을 얻는 데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당하고 겪는 일들을 우연한 일로, 무의미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바라지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괴로워합니다. 26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잘 모를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탄식하며 고통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앞에 닥친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잘 아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28절에 ‘알거니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가까운 일은 잘 몰라도 멀리 있는 것은 잘 압니다. 멀리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잘 모르는 가까운 것만 보면 안 됩니다. 잘 아는 먼 훗날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지난날을 한번 돌이켜 봅니다. 아니 올해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기대와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을까? 왜 그때 나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들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기 위해서, 나의 믿음을 연단하사 영화를 누리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곁눈 팔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작업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꽉 잡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빗나가지 않도록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닮은 자가 되기까지 철저하게 간섭하시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눈물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성공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실패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아픔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부르시기 위한 손길이었고, 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손길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것을 창세전에 아시고 끝가지 간섭을 하시는지 우리는 말 모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대신 나를 끌어안으셨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무엇이 아쉬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 계힉 앞에서 나를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안겨주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정리

 

하나님의 구원 목적 예수를 맏아들(영광)되게 하려 하심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원계획을 어떻게 세웠으며 어떠한 단계를 밟아 그것을 완성하고 계시는가를 감히 우리 죄인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경건함과 두려움 겸손한 마음으로 이 말씀 앞에 설 때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진리를 깨닫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이 말씀을 예수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으니까?’ 우로 가나 좌로 가나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이구나!”하고 생각해서, 믿는 사람은 만사가 저절로 굴러가면서 선한 것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보면 안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주관자가 계시다. 그 분이 하남이시다는 것이 이 말씀의 골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부르신 자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29). 하나님 구원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맏아들이란 교회의 머리요,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위치를 혈통적인 의미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째 셋째 넷째…아들로 비유하여 말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2:9).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들 뜻을 이루시고, 아들로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렸고,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한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17:1-5). 가장 높은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 모든 족속으로부터 세세무궁토록 영광받으시도록 하는 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10-11).

 

우리가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참고/5:12-13). 그것이 하나님이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려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동생이 늘어나면, 예수님이 동생을 많이 거느린 맏아들로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많을수록 그 왕은 더 위대하게 보이고 그 왕권은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전도에 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항상 마음에 깊이 새기고 세상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목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다

 

우리 자신에게 직접 해당되는 구원 목적이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28)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모만 아니라 내면까지, 본질적으로 닮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21).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17).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23).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30). 모두 주님의 형상을 그대로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대로 닮은 자기 자녀로 만드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이유요 목적입니다.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

이러한 구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단계가 순서적으로 나옵니다(29-30).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착한 데가 있을 것이라든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 등을 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그런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미리 아셨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자기 자녀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1:4).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벌써 우리 개개인을 자녀로 미리 아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정하신다것은 너는 내 자녀다하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못나고,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1509-1564우리가 이 선택의 교리를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절대로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의 은혜를 두고 단지 기뻐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부르신다’, ‘의롭게 하신다’,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 믿도록 이끄신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영화롭게 하시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시고, 아담이 범죄로 이루지 못한 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흰 보좌 심판에서, 우리의 썩은 몸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하여 우리 영혼과 결합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 속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자신은 완전무결한 새 인격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새사람으로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다섯 단계는 이미 이루어졌다. 워필드Benjamin B. Warfield,1851-1921 박사는 구원의 다섯 가지 단계를 놓고 끊을 수 없는 다섯 개의 고리로 만든 금사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 본문 내용은 우리의 구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진리가 됩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헬라어 원문에는 29, 30절에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우리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부분을 확인해 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하나님이 의롭다하셨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을 반족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다섯 가지 모두 과거 동사라는 점입니다.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성경의 독특한 어법입니다. 개역 개정에는 마지막 것만 과거이지만, 어법상 표현일 뿐이거, 본 의미는 아셨다, 정하셨다, 부르셨다, 의롭게 하셨다. 영화롭게 하셨다로 이미 성사된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앞으로 될 일로 보여도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다 끝낸 일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의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마지막 영화롭게 하셨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과거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한 부인이 하나님이 내 남편을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아내에게는 남편을 위해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안 믿는 남편을 놓고도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계획하신 그 시점에서 볼 때 남편의 구원은 이미 성취된 과거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더 믿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다섯 가지 단계 가운데서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전부 다 과거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이후 반드시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곧 완성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말씀에서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좋은 일, 나쁜 일, 형통, 고난, , 불행, 스스로 행한 일, 살고 죽는 일 등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영화롭게 하는 것’, 완전한 구원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우리가 몸의 속량, 예수님과 같이 영화로운 몸을 입는 것, 구원이 완성이 선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그 시간까지 도움이 되고, ‘관계가 맺어지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 ‘터득한 교훈’,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전체를 통틀어서 결국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작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만족스럽고 좋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유익한 것이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과 전혀 관계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이성과 결혼하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냥 그렇게 된 것인가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손을 써서 선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28), 로 그 근본이 바뀌게 됩니다.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를 테스트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하는가를 가지고 논해야 합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제로 믿게 하는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기를 싫어하는 존재입니다(1:21).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나의 생활을 간섭하신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작가 존 번연John Bunya,1628-1688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계속 따라 다니며 그를 괴롭힌다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꽉 잡힌 사람은 도망을 다니면서도 그의 마음속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과거에 범했던 죄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또 가책을 받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강제성입니다.

 

많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진리

 

우리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날까지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목표를 두고 우리를 다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곁눈 팔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다 이용해서 다루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짓는 죄까지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징계를 하시는가 하면 상처를 싸매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한 그 죄를 돌려서 이전보다도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악까지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얻기까지 이처럼 의미 있게 다루십니다. 좋은 일을 통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만을 소망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어느 것 하나 손해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사사건건 우리를 간섭하시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뒤에서 작업하고 계실까요? 28절과 29절 사이에 원문에는 접속사 왜냐하면으로 시작됩니다. 곧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나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까지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구원을 얻는 데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당하고 겪는 일들을 우연한 일로, 무의미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못할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눈앞에 닥친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26). 그러나 알거니와입니다(28). 우리는 가까운 일은 잘 몰라도 멀리 있는 것은 잘 압니다. 멀리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잘 모르는 가까운 것만 보면 안 됩니다. 잘 아는 먼 훗날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한번 돌이켜 봅니다. 아니 올해만 돌아보아도,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때 나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들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기 위해서, 나의 믿음을 연단하사 영화를 누리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곁눈 팔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작업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꽉 잡힌 사람들입니다.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빗나가지 않도록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닮은 자가 되기까지 철저하게 간섭하시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눈물도 감사해야 합니다. 성공도 감사해야 합니다. 실패도 감사해야 합니다. 기쁨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픔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부르시기 위한 손길이었고, 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손길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대신 나를 끌어안으셨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무엇이 아쉬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 계힉 앞에서 나를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안겨주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최정 정리

 

끝까지 선善으로 인도하신느 하나님

•로마서 8장 28-39절

 

구원의 목적 예수님이 맏아들로서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우리가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으니까?’ 우로 가나 좌로 가나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소지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소위 통속적通俗的인 낙관론樂觀論을 가르쳐주는 근거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만사가 저절로 굴러가면서 선한 것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보면 안됩니다. 누군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이 말씀의 골자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까? 자기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29, 30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9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높은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 모든 족속으로부터 세세무궁토록 영광받으시도록 하는 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목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직접 해당되는 구원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본 받는다’는 말은 본래 같은 모양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모만 아니라 내면까지 닮은 것을 말합니다. 어떤 단순한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닮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은 이 본문을 가장 잘 해석해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

29, 30절을 보면 이러한 구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 다섯 가지 단계가 순서적으로 나옵니다. 즉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단계입니다.

 

‘미리 아신다.’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떤 것을 미리 아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착한 데가 있을 것이라든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 등을 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미리 아셨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자기 자녀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전지전능입니다. 언제 우리를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벌써 우리 개개인을 미리 아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정하신다.’

그 다음으로 미리 ‘정하신다’는 것은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자녀다’하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못나고, 선학 악하고를 떠나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왜 무조건 선택하셨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택의 은혜를 두고 단지 기뻐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부르신다.’, ‘의롭게 하신다.’, ‘영화롭게 하신다’”

다음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예수 믿도록 이끄신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시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과 함께 그분을 직접 보며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가지 오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죽은 몸은 땅에 묻혀 썩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하늘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의 석은 몸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하여 우리 영혼과 결합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 구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자신은 완전무결한 새 인격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새사람으로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다섯 단계는 이미 이루어졌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미리 아신 것, 미리 정하신 것, 부르신 것, 외롭다 하신 것은 모두 과거지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가지 단계 가운데서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창세전에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전부 다 과거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이후 반드시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하나님

 

다시 28절로 되돌아가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털끝만큼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그 일을 빈틈없이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좋은 일, 나쁜 일, 형통, 고난, 복, 불행, 스스로 행한 일, 살고 죽는 일 등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善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는 선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영화롭게 하는 것’, 즉 ‘완전한 구원’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자리까지 이르도록 ‘도움’이 되고 ‘관계’를 맺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과 ‘터득한 교훈’과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온갖 경험을 통틀어서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작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만족스럽고 좋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데 유익한 것이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내가 병을 앓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를 잘 믿게 되었다면 그 병은 물론이고 병을 앓게 됨으로 생긴 모든 결과를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라야 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작업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이 되도록 작업하십니다.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하나님이 손을 써서 선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많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진리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다루실까요? 왜 사사건건 우리를 간섭하시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뒤에서 작업하고 계실까요? 그 이유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28절과 29절 사이에 중요한 접속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접속사를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냐하면’으로 시작됩니다. 곧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미리 아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나를 영화롭게 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쏟아 부르신 자녀가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그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그날까지 매사마다 간섭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구원을 얻는 데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하십니다.

 

 

결론

 

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장 높은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 모든 족속으로부터 세세 무궁토록 영광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통하여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맏아들인 예수님의 형제가 되게 하옵소서.

 

②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 자리에 모두 들어가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은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창세 전부터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단계를 이미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성입니다. 우리의 장차 영화롭게 될 것도 하나님에게는 과거지사입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에게 이미 이 다섯 가지 단계에 이루어짐을 믿고, 구하오니 구원하여 주옵소서.

 

④ 하나님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자리까지 도움이 되고 관계를 맺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터득한 교훈경험의 결과등 우리 삶 전체를 통틀어서, 결국 구원받게 하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지금 내가 겪는 좋은 일, 나쁜 일, 형통, 고난, , 불행, 스스로 행한 일, 살고 죽는 일 등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손을 쓰셔서,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⑤ 하나님이 사사건건 우리를 개입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미리 아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르시고 의롭게하신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 까지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영광의몸을 입고 구원을 이루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간섭을 벗으려하지 않고, 절대로 실패하게 하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받게 하옵소서.